[여성파워]거들먹 男, 무시해도 돼.."실력으로 보여줘"
by김미경 기자
2013.11.08 09:00:28
(인터뷰)인터컨티넨탈호텔 첫 여성 총지배인 김연선씨
고졸 입사 25년만에 ‘禁女의 벽’ 허물다
불만 해결의 여왕 "민원에 귀 기울여"
"타종 시끄럽다" 불만..이벤트로 바꿔 호평 받아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왕년에 알아봤다” “역시 물건이었어” “예전부터 싹수를 봤다니까”. 지난달 11일. 김연선 인터컨티넨탈호텔 서울 코엑스 총지배인(53·사진)의 휴대전화 벨이 끊임 없이 울려댔다. 동료들부터 이직한 선·후배들까지 약 30~40여분 간격 차를 두고 축하 문자메시지가 빗발쳤다. 이 호텔이 국내 개관 25년 만에 처음으로 내국인 여성 총지배인 선임됐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라 나온 직후였다. 그 후 약 한달 남짓. 하루 24시간을 깨알 같이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요 근래에 많은 분들로부터 과분한 칭찬과 축하를 받고 있다”는 그는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김연선 총지배인이 입사할 당시만 하더라도 호텔은 여관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호텔 입사를 화류계 진출로 오해하던 시절이었다. 김씨 역시 임원 면접에서 ‘GRO(Guest Relations Office: VIP 전담 부서)’를 ‘지하’로 잘못 이해해 “지상 층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답했을 정도다.
| 김연선 총지배인에겐 ‘최초’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다. 인터컨티넨탈호텔 개관 멤버인 김 총지배인은 2004년 국내 특급호텔 사상 처음으로 객실부문 여성 촐괄책임자가 됐다. 25년을 한결같이 같은 자리를 지키다 최근에 총지배인 자리에 올랐다. 인터컨티넨탈호텔 사상 첫 여성, 내국인 여성이 총지배인이 된 것도 김연선, 그녀가 처음이다. (사진=이데일리 권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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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총지배인은 “어렵게 부모님을 설득해 이력서를 내고 임원 면접을 봤는데 호텔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전무했다”며 “기타와 팝송에 꽂혀 무작정 외국인이 자주 드나드는 곳에서 일 해야겠다는 다짐이 벌써 25년째가 됐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여행사 등에서 근무하다 1988년 인터컨티넨탈호텔이 창립할 때 입사했다. 고객 입실과 퇴실을 담당하는 프런트 데스크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이후 VIP 손님을 맡아왔다. 이후 객실운영팀장, 인재육성팀장 등을 차례로 지냈다.
말단 사원에서 사장이 된 셈이다. 호텔업계 관행상 직급이나 연봉을 올리기 위해 이직이 잦은 것을 감안하면 개관 멤버인 김씨가 호텔 총책임자 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는 “일이 좋았고 회사가 좋았다. 입사 후 늦게 공부한 터라 중간에 유학을 떠나고 싶었던 적도 있었으나 방향을 틀어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민간외교관 역할이라 자부할 수 있는 이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씨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될 성싶은 나무’라고 불린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고객 민원 듣는 일을 한시도 게을리한 적이 없어서다. 민원을 제기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컴플레인(불만)’인 경우가 많다. 상식적으로 꺼리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만의 표현도 애증이라는 게 김연선 총지배인의 생각이다. 그는 “현장에 있다 보면 보통 고객들은 서비스나 호텔에 불만을 갖더라도 언급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시간을 내어 컴플레인을 주는 고객들 덕분에 문제를 빨리 개선하게 되고, 불만을 듣는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능숙하게 해결하는 법도 터득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바쁜 비즈니스 투숙객 대신 딸 선물 골라주기도
불평 늘어놓는 고객..‘최고 손님’
‘불만 해결의 여왕’ 별명 얻기도
이 때문에 ‘불만 해결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고객들의 불편 사항을 해결하는데 힘을 쏟았다. 호텔 맞은 편에 위치한 ‘봉은사 타종 행사’도 그런 사례다. 새해인 1월1일 새벽 4시면 울리는 봉은사 타종은 외국인 투숙 고객들로부터 종종 듣는 불만 중 하나였다.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다’는 불평이 많았다.
그는 오히려 그것을 ‘이벤트’로 만들었다. 1월1일 숙박을 예약한 고객들에게 미리 봉은사 타종에 관한 유례 등을 적은 초대장 형식의 편지를 보내 ‘이날의 특별한 행사를 함께하자’고 제안한 것이 시작이 됐다. 그러자 일부러 ‘봉은사 타종 행사’를 경험하러 인터컨티넨탈호텔을 찾는 투숙객도 생겼다.
바쁜 일정으로 짬을 내지 못한 비즈니스 투숙객을 대신해 딸에게 줄 선물을 골라준 일도 한 예다. 김 총지배인은 “모든 걸 고객 입장에서 이해하고 생각하다 보면 답이 보인다”며 “결국 피드백 과정에서 곧 해답을 찾게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호텔에 근무하며 호텔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할 당시엔 업무를 가리지 않고 처리하다보니 ‘멀티 플레이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트레이닝 매니저’로 발령을 받았을 땐 신입직원 450명, 경력 지원자 200명 모두를 혼자 교육하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20명씩을 불러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9시간, 두 달을 꼬박 쉬지 않고 교육했다.
학생 때도 남달랐다. 팝송을 즐겨 부르다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현재는 원어민 수준이 됐다. 그는 “지금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내외부 고객들이 좋은 선생님이 되고 있다”고 웃음지었다.
“배울 건 배우되 무시하라”. 마초적 남성을 대하는 그의 방법이다. 그는 “사고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대화는 어렵다”며 “실력으로 이겨주겠다는 다짐, 그리고 자신에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객 입장에서 최대한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온 것이 총지배인 자리까지 오르게 된 비결 같다”며 “쟁쟁한 동료들 사이에서 되레 역차별을 받은 느낌”이라며 겸손해했다.
인터컨티넨탈호텔은 창립 뒤 25년 동안 줄곧 외국인 남성만 총지배인을 맡아 왔다. 현재 국내 특급호텔 여성 임원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쉐라톤그랜드워커힐의 배선경 운영총괄사장 겸 총지배인 정도다.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 그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그는 “서비스를 직역하면 봉사다. 봉사의 마음가짐이 탁월하면 호텔리어로서 적격일 테지만 천부적이지 않다면 자기 단련으로 내제화시켜야 한다”며 “중국어 등 제2 외국어를 공략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꼽았다. 이어 “남들보다 많은 무기를 갖고 있다면 땡큐지만 이 모두를 갖고 있어도 열정이 없으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연선 총지배인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후배들의 앞길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겁다”면서도 “회사의 매출 향상은 물론이고 직원들이 꿈이 실현되고 새로운 꿈을 키워갈 수 있는 호텔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또 “한국인 시키니 외국인 보다 낫다는 소리를 꼭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