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18.내 집 마련, 얼마나 걸릴까
by이준기 기자
2017.12.11 08:30:00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영국 런던은 언제나 공사 중입니다. 어딜 가더라도 한창 건물을 지어 올리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런던 중심가인 시티 지역이나 킹스크로스 근처에는 상업용 고층 건물들이 지어 올라가고 있고, 주거 지역에서도 옛 주택들을 허물고 새 단장하거나 저개발 낙후 지역이었던 곳에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런던 교통의 중심지 복스홀에서 조금 떨어진 나인 엘름스 지역은 럭셔리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서는 곳으로 한창 각광받고 있죠.
이렇게 끊임없이 런던에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공급량이 늘어나는데도 상업용 건물이나 주택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런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동산 가격이 비싼 곳으로 손에 꼽힙니다. 주거용 건물을 예로 들어볼까요. 비교적 시내 중심가에 있고 그럭저럭 깔끔한 신식 1베드룸 아파트 15평이 주당 300파운드, 한 달 렌트비는 약 1500 파운드(약 225만원) 정도 합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영국 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2만8200파운드(약 4176만원), 한 달로 치면 약 348만원을 법니다. 아주 단순한 계산이긴 하지만 한 달에 348만원을 벌어 225만원의 월세를 내고 살기는 아주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직장은 런던 시내에 있더라도 거주지는 런던 시내에서 멀리 떨어지고, 더 저렴한 가격의 주택을 찾아 교외로 나갑니다. 이 정도만 놓고 보면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죠. 한국에도 서울 근교지역에 넓고 저렴한 터전을 마련해놓고 서울 시내로 출근하는 많은 직장인이 있는 것처럼 런던 상황도 비슷합니다.
런던의 상업용 건물, 주택 가격은 왜 천정부지로 치솟을까요. 단순한 시장 논리라면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죠. 그러나 인기 있는 글로벌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수요를 가장한 투기세력이 런던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영국 런던의 24층 임대 아파트 그렌펠 타워 화재로 80명이 사망하고 25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영국 정부가 이들을 수용할 아파트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그렌펠 타워 근처 1652개의 고급 주택이 부동산 큰 손들이 투자용으로 사들인 후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빈집으로 놀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샀었죠. 빈집 가운데는 미국 뉴욕 전 시장이자 미디어 거물인 마이클 블룸버그가 사들인 방 7개의 1600만파운드짜리 고급 주택도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요.
영국 서민들은 특히 영국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한 것이 투기자본이 런던을 중심으로 영국 부동산 시장에 급격하게 흘러들어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야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비지니스 공용어인 영어권이자 EU 단일 시장 접근성도 확보한 영국에 유럽 사무실을 내려고 몰려든 글로벌 기업들, 투자은행들, 이 기업들의 임원들, 직원들, 이민자들 등 몰려드는 수요에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발 빠르게 대응해 건물을 올리고, 덩달아 늘어나는 수요 기대에 부동산 투기 세력도 활개를 치면서 부동산 가격이 뛰는 것이죠. 중국 부자들도 런던 부동산의 신흥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돈 많은 중국인이 런던에 호화 주택이나 건물을 투자나 별장용으로 사들이면서 시세를 올리는데 거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런던의 집값은 런던 시민의 가계 소득보다 한참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싱크탱크 레졸루션파운데이션이 영국중앙은행 데이터를 인용해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런던을 포함해 영국에 사는 중저소득자들이 내 집 마련을 위해 매년 5%의 가계 소득을 모아 집 보증금을 만들기까지 약 24년이 넘게 걸린다고 하네요. 내 집 마련은 만국 공통의 난제인 것 같습니다.
런던 시민들은 영국의 EU 가입 이후 런던에 투기성 자본이 밀려와 서민들이 살던 집을 헐어버리고, 거기에 신식 빌딩을 지어 가격을 더욱 올리고, 그러면서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비록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로 많은 불확실성을 안게 됐지만 적어도 서민들은 부동산 가격은 좀 내려가고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실제 영국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전국 평균 집 가격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만 파운드 상승에 그쳤다고 합니다. 전국 평균 집값은 22만3000파운드로 조사됐고요. 작년 6월 브렉시트 결정 국민 투표 이후 연간 집 가격 상승폭이 둔화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물론 집 가격 상승폭이 물가상승률과 실질 소득 상승폭보다는 높지만요. 브렉시트로 직격탄을 맞은 런던은 심지어 올 6월 집 가격이 전달에 비해 평균 3000파운드정도 떨어졌고, 작년 6월과 비교해서는 1년 사이 약 2.9% 증가에 그쳤습니다. 그럼에도, 런던에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약 48만2000파운드(약 7억908만원)가 든다고 합니다. 서민들은 꿈도 못 꿀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