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결정적장면]미성년자 성폭행범서 무죄로…진술 신빙성이 갈랐다

by남궁민관 기자
2020.06.13 10:00:00

미성년 학원생 2명 성폭행한 혐의로 1심 징역 10년
피해자들의 진술 신빙성 높다고 판단한 결과
다만 항소심, 진료기록 근거로 강한 의심 "무죄"
대법 역시 오히려 "진술 신빙성 의심된다" 확정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미성년자 성 착취물 제작·유포 등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사건으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최근이다.

이런 와중 미성년자 남학생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던 한 30대 여자 학원강사 A씨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으며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이 강사는 항소심 과정에서 반성문을 통해 “이 정도 장난쯤은 괜찮겠지라며 살았다. 격 없던 장난이 선을 넘으면 누군가에게 상처로도 남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며 평소 학원 학생들에게 종종 스킨십을 했던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항소심은 물론 대법원까지 1심의 선고를 깨고 무죄를 판단한 이유, 이번 주 서초동 결정적 장면이다.

서울 모처 학원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사진=연합뉴스)


◇피해 학생들의 구체적 진술…1심은 믿었다

A씨는 2016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B군을 상대로 여러 차례 추행하고 또 두 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이어 2017년 당시 중학생이었던 C군을 또 다시 여러 차례 추행한 혐의도 함께 받았다. A씨는 B군과 C군이 다니는 보습학원의 강사였다.

통상 성범죄는 구체적 물증이 없는 경우가 많은 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의 주요 근거로 삼는다. 이 사건 역시 두 남학생의 진술이 판결의 핵심 근거로 작용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는데, 1심은 이들의 진술의 신빙성을 상당히 높게 평가해 A씨가 유죄라고 봤다.

1심 재판부는 “범행 당시와 전후의 상황, A씨의 범행 방법 및 범행의 주요 부분 등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진술했다”며 “특히 피해자들의 연령을 감안 할 때 피해자들의 일부 진술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할 수 없는 세부적인 상황 묘사, 사건·사물·A씨에 대한 특징적인 부분에 관한 묘사, A씨와 주고받은 상호작용, 정형화된 사건 이상의 정보 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 진술 깨뜨린 진료기록

다만 항소심에서는 “A씨 혐의가 반대로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증명됐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 정반대의 판단의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가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B군의 진료기록이었다.

B군이 처음으로 A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일시는 2016년 9월 9일 경으로 추정됐다.

B군은 해바라기센터에서 “(9월에) 그냥 제가 학교를 가기 싫어 가지고. 이유는 없어요. 이제 학교를 안 간다고 하니까 다른 애들이 없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학원 내일 미리 일찍 가 있을 테니까 11시까지 오래요”라고 진술했다. 즉 학교를 결석한 그날, 아무도 없는 학원에서 범행이 벌어졌다는 취지였다.



학교 출결현황 조사 결과 실제로 B군은 그해 9월 9일 결석했던 것으로 나타났는데, 문제는 결석 사유였다. 이유 없이 결석했다는 B군의 진술과 달리 당시 B군은 모 병원의 진료기록에 비춰 전날 다리를 다쳐 병원을 다녀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진술의 신빙성이 무너져 내린 결정적 대목이었다.

같은 해 10월 말 벌어졌다는 두 번째 성폭행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의구심을 가졌다.

B군은 해바라기센터에서 “학교에서 수업 중 ‘조퇴하고 학원으로 오라’는 A씨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고 3, 4교시쯤 조퇴해 학원으로 갔고 학원에 있는 창고방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는데, 법원의 사실조회 결과 그해 B군의 조퇴 내역은 발견되지 않았다. 같은 반 학생은 ‘학생 수가 적어 선생님 몰래 조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이데일리DB)


◇진술로 내려진 징역 10년, 진술로 무죄 ‘대반전’

두 번의 성폭행에 대한 B군 진술의 신빙성이 무너지면서 B군에 대한 다른 여러 추행 주장 역시 믿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B군이 해바라기센터에서 결석 사유를 착오해 잘못 진술했을 가능성을 고려해 보더라도 앞서 본 B군의 부상정도에 비춰 첫 번째 성폭행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도 다리를 다친 상태였다는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경험칙상 이해하기 어렵다”며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할 때에도 기억을 되살려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거의 모든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대답으로 일관해 과연 진실하게 신고한 것이 맞는지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B군에 대한 의심은 그 다음 해 벌어진 C군에 대한 여러 추행 주장에도 합리적 의심을 들게 했다.

C군은 해바라기센터에서 ‘2018년 2월 B군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하던 중 서로 A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털어놓게 됐으며, 함께 의논하다가 신고하기로 결정했다’고 진술했던 터, 이번 사건의 신고 과정에서 B군과 C군 간 사전 논의가 이뤄졌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앞서 본 바와 같이 B군이 과연 A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는지 상당한 의심이 드는 이상, 피해자들이 서로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고민을 나누다가 학교에 알리게 된 것이 사실인지도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건은 대법원 상고심에 이르렀지만, 대법원의 판단 역시 항소심과 다르지 않았다.

대법원은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피해자들의 진술은 신빙성이 의심되고 그 외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며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없다”고 무죄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