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년]1700만 촛불이 남긴 것들

by유현욱 기자
2017.10.27 08:05:18

촛불시민, 3만→232만…누적 1685만명
사상 최초 청와대 100m 앞 행진·포위 시위
정권교체와 함께 촛불집회 역사 한 페이지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3월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주문을 낭독하고 있다. (서울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연인원 약 1700만명 참가,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 사상 첫 청와대 100m 앞 행진….

독일 공익 단체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촛불집회에 참여한 대한민국 국민을 ‘2017 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국제사회 역시 ‘촛불 집회’의 의미를 그만큼 높이 평가했다는 방증이다.

국정 농단 사태로 촉발된 들끓는 민심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일궈내기까지 촛불집회가 남긴 기록과 발자취를 정리했다.

지난해 12월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제6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주최 측 추산 232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서울 청계광장에서 첫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것은 지난해 10월 29일. 5만명이었던 촛불집회 참가자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공식 출범 직후인 3차 촛불집회(11월 12일)에서 처음 100만을 넘어섰다.

박영수 특별검사 임명 직전인 5차 촛불집회 참가자는 200만명에 육박했다.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와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표결 직전인 6차 촛불집회에는 정부 수립 이래 최대 규모인 232만명이 운집했다.

누적 참가자는 10차(12월 31일) 만에 1000만명을 돌파, 최종적(23차)으로 1685만명에 이른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지난 3월 6일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에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찰은 관행적으로 청와대 인근 행진을 금지했지만, 퇴진행동은 촛불 집회를 거듭할수록 청와대와 거리를 좁혔다. 초기엔 청와대 행진 자체가 가로막혔으나 12월엔 법이 허용하는 최단 거리(100m)까지 다다갔고 이후 청와대를 에워싸기도 했다.



국회의사당 인근(12월 9일)과 헌법재판소 인근(12월 31일)에서 행진도 이뤄졌다. 한결 같이 ‘평화’ 기조를 유지한 게 원동력이 됐다.

탄핵 외 세월호 인양 등의 결과물도 촛불 집회에 모인 열망 덕분이다.

촛불집회마다 앞장선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염원인 선체 인양이 사고 1073일 만인 3월 23일 돌입해 4월 11일 육상 거치에 성공했다. 9명의 미수습자도 하나 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다.

세월호 생존자 학생이 새해 첫 주말 11차 촛불집회(1월 7일) 본무대에 올라 처음 공식 발언을 했고, 22차 촛불집회(4월 15일)는 세월호 3주기를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는 분위기에서 엄숙하게 진행됐다.

마지막 촛불집회가 열린 4월 29일 이후 치러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촛불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기회가 닿을 때면 촛불을 언급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는 지난 7월 19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촛불 정신을 구현한다’고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도 “대한민국의 새 정부는 ‘촛불 혁명’이 만든 정부”라고 평가했다.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의 첫 공판 다음 날인 5월 24일 공식 해산한 퇴진행동은 지난 10월 16일 대한민국 국민이 독일 에버트재단의 인권상을 수상한다는 소식과 함께 촛불집회 1주년을 자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