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원석 기자
2009.04.02 08:55:14
[이데일리 정원석기자] 3월 무역수지가 46억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적으로 반기는 분위기만은 아니다.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이기 때문이다. 수출이 전년동기 대비 21%나 줄었지만, 수입이 그보다 큰 36%나 줄었기 때문에 발생한 흑자다.
무역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한 데에는 환율 상승 영향이 컸다. 환율이 큰 큰 폭으로 오르면서 수출 가격 경쟁력이 어느정도 확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입이 큰 폭으로 줄어들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무역수지 흑자는 외환시장에는 분명 호재다. 그만큼 달러 유입이 커지고, 이는 환율 하락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채권시장 입장에서는 다각도로 뜯어볼만한 요인이다.
우선 기조적으로는 경기회복 속도에 대한 의심을 해볼 수 있는 요인이다. 수출 증가세가 전년동기대비 여전히 큰 폭의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다는 것은 기업의 생산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월대비 반등으로 `반색`하기엔 하락의 깊이가 너무 깊다.
수입 감소의 내용을 살펴봐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 석유제품, 가스, 철강 등에서의 원자재 수입 감소가 전체 수입급감으로 나타난 것. 기업들이 원자재를 사서 제품을 만들어 수출을 해서 돈을 버는 매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인 셈이다.
경기 회복이 더딜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시중 금리에는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기업들의 수지 회복이 더디다는 측면에서는 크레딧 리스크를 커지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같은 점이 작동했다면 안전자산인 국채 금리는 내리고 크레딧 채권의 금리는 오르는 게 정석일 수 있다.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만 봐도 그렇다. 2008사업연도 기준으로 48개 대기업집단의 부채총액은 691조9000억원으로 1년 사이 190조원 늘었다. 최근 회사채 발행이 폭증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기업 부채는 최근까지는 계속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의 차입이 늘어난 것이 호경기로 설비와 생산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최근의 증가세는 불황과 자금경색을 대비하기 위한 사전자금확보 차원이라는 점에서 이 역시 불황의 단상일 뿐이다.
그러나 전날 시장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공사채와 은행채 금리가 큰 폭으로 내린 것이 시장의 강세 분위기를 증폭하는 요인이 됐다. 일부 공기업의 경우 민간평가금리보다 무려 15~20bp 가량 낮은 금리 수준에서 채권을 발행했다.
이는 최근 채권시장에서 `경기 펀더멘털`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제한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수급과 유동성이 지배하는 장세로 분석된다. 2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나타나는 회사채 매입 관련 언급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다.
추경용 국채발행을 앞둔 국채시장은 잔뜩 움추리고 있는 반면, 은행채와 공사채 등 크레딧 채권은 국채시장에서 이탈한 기관 자금이 계속 유입되고 있다. 게다가 한동안 발행이 없었던 은행채는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회사채는 고금리 이득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금융상품이라는 인식 덕분에 개인투자자들의 수요가 빗발치고 있다.
펀더멘털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 투자의 정석이지만, 속내를 한꺼풀 벗겨보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수급`이다. 시장은 `돈의 힘`이 지배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수급의 힘을 과신했을 때 생기는 리스크가 간과될 경우 이는 결국에 큰 화(禍)를 부르는 불씨가 됐었다는 점도 의식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크레딧 강세에 대해서도 이런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시장이 기대하는 한은의 양적완화도 결국 2월초 불안한 금융시장 상황에서 나온 방안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2월과 4월의 금융시장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이 기사는 2일 오전 8시43분 이데일리 유료 서비스인 `마켓 프리미엄`에 출고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