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로또는 딱 1000원만 사볼까[가계부 쓰다가]
by김형욱 기자
2023.01.14 16:40:00
기대이익률 절반 안돼…많이 쓸수록 손해
당첨 꿈 꾸는 건 즐겁지만…몰입은 ‘금물’
8년째 가계부 쓰고 있는 월급쟁이 글쟁이의 소소한 경제이야기. 제 기사를 가장 많이 보는 ‘40대’, 특히 저와 같은 ‘보통의 급여생활자’를 중심으로 많은 독자와 돈 관리 관련 고민과 의견을 틈틈이 공유하려 합니다. 댓글, 이메일 등 통한 소통 환영합니다. <글쓴이>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오늘 로또 당첨은 (내 댓글에) 추천 누른 당신.’
지난주 새해 시작한 연재물을 올린 후 포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입니다. 로또 당첨숫자 발표일인 토요일에 올린 글이기도 했고, 그만큼 많은 사람이 매주 주말 로또 당첨을 기원하고 있다는 얘기겠죠.
실제 로또 많이들 삽니다. 로또 관련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62.8%가 최근 1년 이내에 로또를 사봤다고 합니다. 매월(26.0%), 매주(23.9%) 사는 사람도 넷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한 번 살 때 평균 9255원을 산다고 했습니다. 지난주 총 판매액이 1084억원이라고 하니, 평균 9000원으로 계산하면 대략 1200만명이 샀습니다. 즉, 성인 기준 전 국민의 4분의 1은 ‘로또인’인 겁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대부분 알면서도 사는 거겠지만, 사실 로또는 무조건 손해입니다. 많이 살수록 손해가 커집니다. 애초에 기대이익률이 50%도 안 되거든요.
정부(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는 2002년 로또를 만들 때 수익의 절반만 당첨금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절반은 ‘좋은 일’에 씁니다.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7%는 사업비, 43%는 정부의 각종 복지사업에 쓰입니다. 재작년 수치를 보니 정부는 복권사업으로 연 7조원을 벌어 약 3조5000억원을 당첨금 지급 등에 쓰고, 나머지는 서민 주거안정이나 취약계층 지원, 문화예술 진흥 사업에 썼습니다.
당첨자가 받는 돈은 절반보다 더 적습니다. 당첨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1~2등은 세금도 떼거든요. 3억원까지 22%, 그 이상부턴 33%를 뗍니다. 정부가 올해부터 1인당 보통 백수십만원, 40억여원에 이르는 3등(200만원 이내 기준)은 세금 안 떼기로 했지만, 그래도 전체의 7%는 다시 세금으로 거둬갑니다.
즉, 로또를 사는 사람의 기대이익은 1000원당 430원밖에 안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가령 로또 1등 당첨확률에 맞춰 로또를 814만5060개, 즉 81억4050만6000원어치 산다면 100% 당첨되겠지만, 내게 돌아오는 돈은 35억원 정도밖에 안 됩니다. 완전 손해죠.
| 2023년 1월7일 추첨한 로또 1049회 당첨 결과. (표=동행복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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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이번주 당첨되면 앞선 계산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어차피 로또란 게 서민끼리 돈 몰아주기 하는 거고, 매주 누군가는 당첨됩니다.
그런데 그 확률이 대단히 희박합니다.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060만분의 1, 2~3등도 각각 135만7510만분의 1, 3만5724분의 1입니다. 가위바위보로 치면 내가 누군가를 23번 연속 이길 가능성(839만분의 1)과 비슷한 천운이 따라줘야 합니다. 4등(733분의 1), 5등(45분의 1)은 그나마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가능성이 낮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5등 당첨돼 5000원 벌자고 4만5000원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확률로 따져보면 내가 지금껏 평생 로또를 그렇게 열심히 샀는데도 한번 당첨 안 된 건 사실 당연한 일입니다. 20년 동안의 1등 당첨자를 다 더해도 7877명밖에 안 됩니다. 본인 당첨 여부를 떠나 당첨자를 마주칠 확률도 5000만 국내 인구를 고려하면 1만분의 1 정도밖에 안 됩니다. 마주치저라도 그 사람들이 ‘나 1등 당첨됐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것도 아닐 테고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토요일마다 로또 매장에 줄을 서는 건 소액으로 평생 만져보기 어려운 거액을 만져볼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일 겁니다. 지난주 로또 당첨금 17억원에서 세금을 떼고 나면 약 11억7000만원이 남습니다. 20억원을 넘는 강남 아파트값을 생각하면 ‘인생역전’까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월 300만원 직장인이 30년치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야 하는 돈입니다. 사업·투자로 말도 안 되는 큰 성공을 거둔다면 모를까, 이 정도 돈을 한번에 만져보긴 어려울 겁니다.
|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31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한 복권판매점 앞에서 시민들이 로또 구매를 위해 대기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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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로또 1등 당첨의 꿈을 꾸고 싶다면 매주 1000원씩만 사보는 건 어떨까요.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월 4000~5000원, 연 5만2000원 정도는 꿈꾸는 비용으로 부담 없습니다. 통신비 1년에 한 달치 더 내는 셈 치면 됩니다.
그런데 매주 1만원, 월 4만~5만원, 연 52만원은 꽤 크게 느껴집니다. 현실에서도 뭔가 유의미하게 쓸 수 있는 액수입니다. 매주 1만원씩 20년을 저축하면 이자 없이도 원금만 1040만원입니다. 본인이 월 1000만원 이상 버는 고소득자라면 모르겠지만, 저 같은 보통의 급여생활자에겐 이 역시 쉽게 만져보기 어려운 큰돈입니다.
로또 몇만원어치를 더 산다고 당첨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1000원을 샀을 때의 1등 당첨 확률(814만분의 1)이나 1만원을 샀을 때의 확률(81만4000분의 1)이나 현실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10만원을 샀대도 8만1400분의 1의 확률은 여전히 현실 속에선 큰 의미 없습니다.
과몰입은 백해무익입니다. 로또 명당은 확률상의 착시효과일 뿐입니다. 확률상 로또를 81억원어치 팔면 1등 당첨 명당이 될 수 있습니다. 벌써 20년 지났으니 로또가 잘 팔리는 목 좋은 판매점은 ‘명당’이 됐을 겁니다. 로또 당첨번호를 예측해준다는 것도 사기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업체가 성행하다가 검거됐다는 소식이 나올 때마다 답답합니다. 내가 당첨 번호를 예측할 수 있다면 내가 그 번호를 여러 개 사서 부자가 되면 되지, 뭐하러 남 알려줍니까.
그저 오늘도, 다음 주 토요일도, 내 가계부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당첨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상상과 함께 즐기는 게 가장 좋은 로또 활용법 같습니다. 물론 모두가 제 말에 공감해서 로또 구입비를 팍 줄인다면 1등 당첨금도 확 줄어들겠지만 그럴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모두가 절 구독하고 제 글을 보고 있지 않으니까요. ‘저희’끼리만 좀 더 적은 비용으로 로또를 활용해보자고 제안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