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최고기술의 1등 패스트팔로어에 머물것인가

by양희동 기자
2017.01.08 10:36:36

[라스베이거스(미국)=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5~8일(현지시간) 열린 ‘CES 2017’에서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인 인텔 부스는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인 인텔의 부스에 관람객이 몰리는 상황은 현장을 보지 않고서는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실제 부스에는 ‘인텔 인사이드’를 강조하며 자사의 시스템 반도체를 탑재한 AR(증강현실) 야구 게임장과 운동 상황을 다양한 데이터와 함께 대형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실내자전거 등이 인기를 끌었다. 또 인텔 반도체가 두뇌 역할을 하는 커넥티드카(양방향 소통 가능한 차량)와 관람객의 초상화를 직접 그려주는 AI(인공지능) 컴퓨터까지 체험 공간의 다양성에선 다른 부스를 압도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70~80%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005930) 등 한국업체들은 관련 기술을 활용한 체험 공간이나 제품을 전혀 내놓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또 인텔과 마찬가지로 반도체에 집중하고 있는 B2B 중심 기업인 SK하이닉스(000660)는 CES에 부스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이번 CES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066570) 등 국내 양대 가전업체는 ‘QLED TV’와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W’ 등 화질면에서는 세계 최강인 신제품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또 세탁기와 냉장고, 주방 가전 등 여러 제품을 하나로 묶어 연결성을 강조한 사물인터넷(IoT) 스마트홈 기능을 완벽히 구축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인수한 미국의 AI(인공지능) 기업 ‘비브랩스’를 통해 확보한 음성인식 기능을 QLED TV와 ‘패밀리허브 2.0’ 냉장고 등에 적용했고 LG전자도 아마존의 ‘알렉사’와 협업해 음성 인식 기능을 추가하고 딥러닝 기술도 가전에 탑재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 이번 CES에서 선보인 신제품에서 자신만의 ‘혁신’은 안타깝게도 찾아볼 수 없었다. 패스트팔로어 전략으로 세계 1위에 올랐고 여전히 최고의 기술력을 유지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새로운 10년의 비전을 제시할 퍼스트무버로서의 혁신 기술은 내놓지 못한 것이다.

반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현재 시장에선 점유율이 뒤처진 기업들이 오히려 과거 퍼스트무버 DNA를 되살린 혁신 제품을 속속 선보여 한국 전자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특히 우리 기업에 뒤처져 시장에서 소외됐던 일본 업체들의 약진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소니는 지난 2007년 이후 사실상 포기했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를 이번 CES에서 ‘브라비아 OLED TV’란 이름으로 새롭게 내놓으며 권토중래를 선언했다. 또 화질 면에서는 이론적으로 한계가 없는 미래형 상업용 디스플레이인 ‘클레디스’(CLEDIS)를 선보여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파라소닉은 단순한 음성인식에서 한발 더 나간 동시통역 AI 기기를 선보였고 IoT 를 스타디움과 비행기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한 제품도 내놨다.

삼성전자 생활가전(CE)을 총괄하는 윤부근 사장은 이번 CES에서 삼성의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이끌던 ‘TV 화질’ 경쟁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제는 우리 기업이 진정한 세계 1등인 퍼스트무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