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쟁 가능한 국가 꿈꾸는 일본 돕는 국방부

by김관용 기자
2016.11.22 06:30:00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내건 전쟁 명분이 ‘정명가도’(征明假道)다. 명나라를 치려하니 길을 빌려달라는 의미였다. 조선은 이를 거부했고 일본은 조선을 침략했다.

지난 2012년 당시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두고 ‘21세기판 정명가도’라는 비판이 일었다.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는 것은 군사대국화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현재 일본은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가 되기 위한 헌법 수정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당시 협정을 추진하며 가서명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해당 안건은 차관회의도 건너뛰고 국무회의에 기습 상정됐다. 협정 명칭에도 민감할 수 있는 ‘군사’(military)라는 단어가 빠졌다. 하지만 들끓는 여론에 결국 해당 협정은 무산됐다.

18일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관계자들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관련 국방부 장관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년간 정부는 협정의 재추진을 위해서는 국내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지난 달 27일 돌연 협상 재개를 발표하고는 초고속으로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한 달도 안돼 벌써 협정 서명 직전이다. 국방부도 인정했듯 이 과정에서 국민 공감대를 얻기 위한 노력은 없었다. 야당이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해임안까지 꺼내들었지만 정부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북한의 위협을 감안하면 한·일 간 군사 협력은 필요하다. 일본은 우리보다 우수한 정보자산을 갖고 있다. 미국을 경유할 필요없이 신속하게 대북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문제는 왜 지금이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 지지율은 5%까지 추락했다. ‘식물정부’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촛불민심’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마당이다. 국민들이 정권을 불신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감한 사안을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한·일간 협정 체결 논의는 한·미·일 동맹 강화를 원하는 미국 측 요구로 재개됐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한·미·일 관계가 새롭게 논의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한국이 이를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시간을 두고 국익을 따져가며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