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쓰레기 소각장, BTS가 찾은 문화 명소가 되다

by김명상 기자
2023.08.04 09:00:21

쓰레기 소각장이 예술공간으로 재탄생
''아트벙커 B39'' 방탄소년단 촬영장소로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부천아트센터''
추억의 캐릭터 총집합 ''한국만화박물관''
벌집 모양 돔 구조 실내 식물원 ''수피아''
‘물길 ...

한국만화박물관 내부 전시장 모습. 사진은 만화가의 작업 공간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공간 ‘만화가의 머릿속’ (사진=김명상 기자)
[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부천에도 여행지가 있어?” ‘부천 관광’을 이야기하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말한다. 오랜 기간 경기도 부천은 관광의 불모지였으니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로 시 승격 50주년을 맞아 부천시는 시내 유명 관광 명소를 묶은 ‘부천 8경’을 발표하며 관광객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이젠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등의 대형 이벤트와 ‘부천 8경’의 매력을 더해 종합 문화·관광도시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다. 복숭아꽃이 많이 피는 마을이란 의미의 ‘복사골’로 불리던 부천은 앞으로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부천이 시 승격 50년을 기념해 명소를 모아 ‘8경’을 최근 발표했다. △부천아트벙커 B39 △부천아트센터 △한국만화박물관 △상동호수공원·수피아 △부천둘레길 △백만송이 장미원 △부천자연생태공원 △진달래동산 등이다. 후보지 29곳 중 시민의 투표를 거쳐 뽑힌 부천의 명소 중 명소다.

부천아트벙커 B39의 외관 (사진=김명상 기자)
그 중 ‘부천아트벙커 B39’는 가장 극적으로 운명이 바뀐 시설이다. 1995년부터 사용하던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을 철거하는 대신 재생 사업을 거쳐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꿔 개관했다. 하루 200톤의 쓰레기를 태우던 소각장답게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특유의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 때문에 뮤직비디오, 광고, 영화 및 TV 시리즈 촬영 장소로 주목받았다. 특히 2021년 방탄소년단(BTS)이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남성 컬렉션 패션쇼 영상 촬영을 위해 다녀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과거 쓰레기 저장조로 쓰인 높이 39m의 콘크리트 구조물 ‘벙커’. 왼쪽의 문은 쓰레기를 쏟아내던 거대한 투입구 (사진=김명상 기자)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내부는 구석구석 흥미롭다. 이곳의 상징적인 장소는 과거 쓰레기 저장조로 쓰인 높이 39m의 콘크리트 벽 구조물 ‘벙커’다. ‘B39’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벙커는 SF영화의 세트장 같은 음침한 분위기로 방문객들을 사로잡는다.

쓰레기 저장조로 쓰이던 ‘벙커’ 위를 가로지르는 ‘벙커 브릿지’에서는 전시 영상을 볼 수 있다 (사진=김명상 기자)
벙커에 놓인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 대형 스크린을 통해 전시나 공연을 볼 수 있는 멀티미디어홀이 나타난다. 과거 쓰레기 반입실이었던 곳이다. 도심의 온갖 쓰레기를 쏟아내던 거대한 투입구가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쓰레기를 태우던 소각로의 벽면을 없앤 공간 ‘에어갤러리’ (사진=김명상 기자)
‘에어갤러리’도 인상적이다. 쓰레기를 태우던 소각로가 있던 곳의 벽면을 없애고 탁 트인 다용도 야외공간으로 만들었다. 매캐한 연기를 내뿜던 장소에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소각장을 철거 대신 재생으로 선택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부천아트벙커 B39’의 옥외 이벤트 공간으로 쓰이는 ‘응축수탱크지역’ (사진=김명상 기자)
이 밖에도 소각장의 모든 설비를 통제하던 ‘중앙제어실’, 전기 설비들이 밀집했던 ‘배기가스 처리장’, 태운 재를 퍼 올려 매립장으로 반출하는 크레인을 조종하던 ‘재벙커·크레인 조종실’, 공장지대를 압축한 듯한 풍경의 ‘응축수탱크지역’ 등 흥미로운 공간이 여럿 자리하고 있다.

‘부천아트벙커 B39’의 ‘응축수탱크지역’ 벽면 장치 (사진=김명상 기자)
1층에는 주말마다 긴 줄이 늘어서는 부천의 유명 카페 ‘스페이스 작’의 지점이 있다. 오랜 대기가 기본인 본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서 아는 사람들이 쉬쉬하며 즐겨 찾는 숨은 명소다.

부천아트센터의 메인 무대인 ‘콘서트홀’ 내부. 무대 뒤에는 오르간, 위에는 위치 조절이 가능한 음향반사판이 매달려 있다 (사진=김명상 기자)
지난 5월 개관한 ‘부천아트센터’가 공개됐을 때 국내 음악계는 깜짝 놀랐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음향 시설을 갖춘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어서다. 그 울림이 컸던 탓인지 부천아트센터는 신생 건축물임에도 시민 투표를 거쳐 당당하게 ‘부천 8경’에 이름을 올렸다.

보통의 지자체는 다양한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다목적 공연장’을 선호하지만 부천시는 오직 클래식 하나에 진심을 담았다. 1988년 창단한 국내 정상급 교향악단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존재도 이러한 결정의 배경이 됐다. 투입된 예산만 1000억원이 넘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등을 담당한 영국의 애럽사가 음향 설계를 맡아 세계적 수준의 시설을 만들었다.

부천아트센터의 콘서트홀 내부에 있는 오르간 (사진=김명상 기자)
심혈을 기울인 메인 무대 ‘콘서트홀’은 가히 초일류를 지향한다. 국내 지자체 건립 공연장으로는 처음으로 ‘악기의 제왕’이라 불리는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됐다. 무대 후면에 있는 오르간은 4576개의 파이프와 63개의 스톱(음색과 음높이를 바꾸는 버튼), 2대의 연주 콘솔로 구성됐다. 웅장한 규모와 다채로운 소리를 내는 이 오르간은 제작 기간이 2년에 달하고, 외국 전문가들이 직접 부천아트센터에 상주하며 설치할 만큼 정성을 기울여 배치했다.

부천아트센터의 메인 무대인 ‘콘서트홀’ 내부 객석 모습 (사진=김명상 기자)
1445석 규모의 콘서트홀은 최고 수준의 음향 시설을 자랑한다. 공연장 벽에는 음향조절용 배너 커튼을 설치해 다양한 연주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무대 천장에 매달린 은빛 음향반사판도 범상치 않다. 6개의 대형 음향반사판 아래 여러 개의 소형 반사판의 위치를 조절해 장르에 따라 최적화된 음향을 들려주는 것이 가능하다.



내부 안내를 담당한 서채우 부천아트센터 무대기술팀장은 “음향반사판은 규모가 큰 공연을 하면 반사판이 조금 더 올라가고, 솔로 공연의 경우 반사판이 조금 더 오므라드는 형태로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며 “공간의 잔향시간을 조절해 최상의 음향을 전달하기 위해서인데 이렇게 움직여서 사용하는 것은 국내 유명 공연장에서도 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천아트센터에 잇는 국내 정상급 교향악단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습실 (부천아트센터 제공)
개관 후 소프라노 조수미, 피아니스트 조성진, 지휘자로 변신한 장한나 등 화려한 면면을 자랑하는 음악가들이 부천아트센터를 찾아 공연을 펼쳤다. 이제 예술의 향기를 찾아 부천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한국만화박물관’ 내부에 있는 ‘아기공룡 둘리’ 조형물(왼쪽)과 윤승운 화백 작품 ‘요철발명왕’의 주인공 요철이 (사진=김명상 기자)
부천은 일찍부터 만화산업에도 관심을 쏟았다. 인기 캐릭터 ‘아기공룡 둘리’의 가치를 제일 먼저 알아본 것도 부천이다. 부천시는 2003년 4월 둘리를 명예시민으로 위촉하면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송내역 주변 광장과 거리를 둘리 거리로 지정한 바 있다. 원작에서 둘리는 고길동과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거주했지만, 부천보다 늦은 2007년에야 명예 호적등본이 나왔다. 도봉구가 집 떠난 둘리를 붙잡느라 꽤 애를 먹었던 것이다. 둘리의 거주지 논란에 대해 원작자인 김수정 화백은 “본적지와 현주소의 개념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만화박물관’의 근대기 만화 전시물 (사진=김명상 기자)
1990년대부터 만화산업 육성에 꾸준히 공을 들여온 부천시에는 ‘한국만화박물관’이 있다. 100년이 넘는 한국만화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한국 최초의 만화부터 체험전시관, 3D 입체상영관, 만화열람실 등을 만날 수 있다. 3층 상설전시관에는 수많은 만화가의 손때가 묻은 펜이 전시돼 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오직 열정 하나로 만화를 그렸던 작가들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

1960년대 만화가게 모습을 재현한 ‘땡이네 만화가게’ (사진=김명상 기자)
또한 추억의 만화방, 골목 등을 재현해 놓은 것도 재미를 더한다. 이곳을 찾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둘러보다 흘러간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4층 만화 체험 전시관에서는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웹툰을 소개하며 세계로 무대를 옮긴 한국만화의 현재를 볼 수 있도록 꾸몄다.

약 26만권이 소장된 만화도서관도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만화전문도서관으로 다양한 만화 단행본을 비롯해 디지털자료실을 운영 중이다. 만화와 함께 더위를 잊고 흥미로운 세계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

부천 상동호수공원의 식물원 ‘수피아 (사진=김명상 기자)
‘부천 8경’ 중에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축물도 있다. ‘상동호수공원의 수피아’는 벌집 모양의 커다란 돔 형태로 만든 실내 식물원이다. 지상 2층 규모로 푸릇푸릇한 식물의 향연을 감상하고 싶을 때 언제든 들러볼 만한 곳이다.

부천 상동호수공원의 식물원 ‘수피아’ 내부 전경 (사진=김명상 기자)
안에 들어가면 이국적인 각종 식물로 가득한 신세계가 펼쳐진다. 관엽원과 화목원, 수생원, 식충식물원 등 9개 구역에 430여 종(2만 8000본)에 이르는 식물이 있는데 바나나나무, 파파야나무, 소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밥나무까지 볼 수 있다.

부천 상동호수공원의 식물원 ‘수피아’의 스카이워크 (사진=김명상 기자)
초록으로 가득한 식물원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스카이워크가 설치돼 있는데 하늘 위를 걷는 듯 키 높은 나무들을 내려다보면서 산책하는 특별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내부 카페에 앉아 커다란 유리창 너머 식물원을 보면 동남아의 정글 속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부천둘레길 3코스 ‘물길 따라 걷는 길’ 코스에 있는 원천공원 (사진=김명상 기자)
도보로 부천을 여행하고 싶다면 산과 공원, 들판과 하천을 연결한 ‘부천둘레길’이 최적이다. 총 48㎞ 길이의 둘레길은 6개 코스로 나뉘는데 특히 송내역에서 가까운 제3코스 ‘물길 따라 걷는 길’은 평지에 가까워 누구나 쉽게 다닐 수 있고 여름에는 시원한 것이 장점이다. 3코스는 여러 공원과 도심을 관통하는 만큼 걷는 도중 언제든 카페나 식당에 들를 수 있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발길 가는 대로 걷고 쉬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상동호수공원에 있는 풍차 (사진=김명상 기자)
시 공무원들은 이번에 발표한 부천 8경에 축제나 계절 변화가 결합하면 1년도 금방 지나간다고 설명했다. 이점숙 부천시 관광진흥과 과장은 “4월에는 진달래동산, 5월에는 백만송이장미원, 6~7월에는 부천판타스틱영화제와 부천세계비보이대회(BBIC)를, 8월에는 만화박물관에서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9월에는 부천국제만화축제를 즐길 수 있다”며 “연중 풍성한 축제가 끊이지 않는 것이 부천 관광의 매력”이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