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 발목잡는 국가계약법…"특수성 반영한 별도 계약법 절실"

by김관용 기자
2020.09.23 06:00:00

[K-방산, 21대 국회에 바란다]③방산계약특례법
첨단 무기 체계 연구개발 사업에
TV·냉장고와 같은 국가계약법 적용
일정·비용 조정 불가피한 방산엔 부적합
입찰참가제한 등 부정당 제재 완화 절실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방위력 개선 사업은 새로운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구매하는 획득 제도인데, 계약에 TV나 냉장고 등 일반 상용품 구매와 동일하게 국가계약법을 적용하다 보니 부정당 제재와 대규모 지체상금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

왕정홍 방위사업청장이 과거 기자와 만나 한 얘기다. 방위산업은 장기간의 연구개발과 기술력이 투입된 첨단무기체계를 생산하는 산업이다. 그러나 일반 상용품 구매에 관한 국가계약법을 적용하다 보니 불필요한 행정소송이 다수 발생한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방위산업은 일반 물자와는 다르게 정부와 방산업체 간 협상에 의해 계약이 이뤄진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무기체계의 경우 적정 가격과 연구개발 기간을 설정하기 어려워 정부와 업체는 어림잡아 사업을 진행한다. 게다가 정부가 유일한 수요자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장의 수요·공급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일반 상용품이야 정부가 아닌 다른 시장이 존재하지만 방위산업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연구개발의 특성상 개발 진행 중 요구조건과 규격 등을 끊임없이 최적화하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일정 및 비용도 변경될 수밖에 없다.

LIG넥스원 직원들이 육군의 대포병탐지레이더-II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현재 양산이 진행되고 있는 대포병탐지레이더-II 체계는 날아오는 포탄을 탐지·역추적해 화포 위치를 아군 포병부대에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LIG넥스원]
그러나 현재 한국의 방위산업은 이같은 특수성을 무시하고 국가계약법을 적용하고 있다. 계약으로 규정되면 이행 범위의 조정이 어려워 위반시 ‘징벌적’ 규제에 직면하게 된다. 실제로 불가피한 개발 일정 지연에도 대규모 지체상금이 발생한다. 하루 지체상금은 계약금의 0.075%로, 1년이면 27%까지 불어난다. 이같은 지체상금 부과는 무기체계 특성이나 난이도와 무관하다. 일반 무기체계나 첨단기술 및 다양한 업체가 참여하는 복합 무기체계나 동일하다는 얘기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준 설계대로 업체는 체계 통합만을 담당했어도 성능 미달에 따른 납기 지연 책임은 업체에 있다. 군에서 운용 중인 무기체계에서 사고가 나면 전력화가 중단되는데, 이 책임 역시 업체 몫이다. 이같은 이유로 기존에 발생했거나 향후 발생할 지체상금 규모는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특히 국가계약법에 따른 부정당 업자 제재는 방위산업체에게는 사망선고와 마찬가지다. 입찰참가 제한 뿐만 아니라 착·중도금 지급 제한, 부당이득금 환수 및 가산금 부과, 이윤 삭감 등 뒤따르는 제재가 10여 개에 달한다. 사업장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에까지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이에 따라 방위산업계는 기존 국가계약법에서 탈피한 이른바 ‘방위산업계약특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는 법무법인과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한 이후 업체들 의견을 수렴했다. 국방부 및 방위사업청과 입법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입찰참가자격 제한, 착중도금 지급 제한 등 부정당 업자 제재 관련 완화 방안이 담겨 있다. 또 지체상금과 관련해 정부(ADD)와 업체 책임을 구분하는 귀책주의 원칙을 규정하고, 지체상금률 완화와 상한액을 규정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무기체계 및 핵심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성실수행 인정제’도 반영됐다.

방위산업체 한 임원은 “개발 과정에서 불가피한 각종 기술 변경이나 성능 보완, 단순 실수나 착오까지도 비리라고 처벌하는 현재의 국가계약법 아래에서는 국내 방위산업 생태계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며 “방위사업 계약의 체결과 이행, 제재 전 과정에 방위산업 특수성을 반영한 특례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