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지각 변동]韓기업 '반도체 지도' 다시 그린다
by양희동 기자
2017.05.29 06:59:09
D램·낸드플래시 1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승격…체질 개선
34년만에 반도체종합 1위 넘봐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글로벌 반도체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이후 PC의 두뇌에 해당하는 CPU(중앙처리장치) 시장을 석권하며 20년 넘게 반도체 왕좌를 지켜온 미국 인텔은 메모리시장 ‘슈퍼 사이클’로 호황을 맞은 삼성전자(005930)의 거센 추격에 1위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또 메모리시장에선 낸드플래시를 처음 개발했던 일본 도시바가 몰락하며 인수전에 나선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SK하이닉스(000660) 등이 업계 1위 삼성전자와 양강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반도체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업계 지도를 그리기 위해 각각 비(非)메모리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강화와 낸드플래시 시장 확대란 승부수를 던졌다.
시스템반도체 강자인 인텔은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25년간 반도체종합 1위 자리를 단 한번도 놓친 적이 없다. 그러나 얼마 전 미국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가 올 2분기 매출에서 삼성전자(149억 4000만 달러·17조원)가 처음으로 인텔(144억 달러)을 제칠 것이란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시장 판도 변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텔은 시스템반도체인 CPU분야에선 여전히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기업. 하지만 시장 흐름이 급격하게 PC에서 스마트폰 등 모바일로 넘어가는데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메모리 호황을 맞은 삼성전자에 역전을 허용하게 생겼다.
메모리 강자 삼성전자는 비메모리인 파운드리 사업 강화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최근 단행한 삼성전자 DS(디바이스 솔루션)부문 조직 개편에서 권오현 부회장은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 독립시켜 메모리에 치중된 반도체 사업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이번 결정은 슈퍼 사이클 이후까지 내다보고 간신히 빼앗은 승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파운드리 사업은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의 10%에 불과하지만 시장 확대 가능성은 압도적 세계 1위인 메모리에 비해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는 양쪽 모두 세계 시장 점유율이 40~50%에 달해 사업 확장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파운드리 사업은 지난해 기준(IHS마켓 자료) 매출이 업계 4위인 45억 1800만 달러(시장점유율 8.4%)로 선두인 대만 TSMC(285억 달러·52.7%)와는 격차가 크지만, 2위인 미국 글로벌파운드리(56억 달러·10.4%), 3위 대만 UMC(47억 달러·8.7%) 등과는 근소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확실한 반도체종합 1위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미세공정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겠다는 포석이다. 이를 통해 가격 변동에 민감한 메모리 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도시바 인수전 결과에 따라 메모리반도체 시장도 완전히 재편될 수 있다. 도시바를 가져가는 기업이 업계 1위인 삼성전자와 양강 구도를 형성할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할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인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도시바는 17.4%의 점유율로 삼성전자(36.1%)에 이어 2위다.
두 회사간 격차는 있지만, 인수전에 뛰어든 3위 웨스턴디지털(15.7%)이나 5위 SK하이닉스(10.3%) 중 한 곳이 승자가 될 경우 낸드 점유율이 30% 안팎으로 치솟아 삼성전자와 양강구도를 이루게 된다. 특히 낸드플래시는 3D 적층(쌓아올림) 기술 발전과 함께 SSD(솔리드스테이트디스트) 등 고용양·고사양 저장장치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D램보다 성장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낸드플래시 선두자리를 위협받게 되면 향후 메모리시장 지배력에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인수를 통해 D램에 치중된 매출 구조를 개선하고 낸드플래시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현재 도시바 인수전은 SK하이닉스와 대만 폭스콘, 미국 브로드컴과 웨스턴디지털 등 4파전으로 압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의 중심이 D램에서 낸드플래시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에 도시바 인수전 결과가 업계 판도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며 “일각에선 ‘승자의 저주’를 우려도 있지만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품게 되면 D램에 이어 낸드까지 한국이 석권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