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정민 기자
2025.06.08 11:30:00
현행 자동차세는 1991년 정한 배기량 기준으로 과세
전기·수소차 등 배기량 '0'인 차는 정액 10만원만 납부
터보엔진 다운사이징에 '고배기량=고가차' 공식 깨져
15년간 3차례 개편 논의, 한미 FTA·산업계 반발 무산
"가격+환경요인' 혼합형 과세모델 도입해야"
[김정민 이데일리 경제전문기자]가솔린, 디젤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는 배기량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한다. 1000cc이하는 cc당 80원, 1600cc이하는 140원, 그 이상부터는 cc당 200원이다.
반면 전기차는 자동차세 과세 대상 차량 분류상 ‘그 밖의 승용자동차’에 포함돼 정액 10만원만 부과한다. ‘그밖에 승용자동차’에 부과하는 자동차세는 1991년 6만 7000원에서 10만원으로 인상된 이후 34년째 그대로다. 당시에는 전기차도, 수소차도, 하이브리드차도 없었다.당연히 과세 기준의 형평성을 두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기차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2017년 처음 집계를 시작할 당시 2만5108대였던 전기차 등록대수는 2020년 13만 4962대로 처음 10만대를 넘어선데 이어 지난해말 기준 71만1891대로 급증했다. 수소차(3만 8000대)까지 합하면 75만대가 배기량 ‘0’인 차다.
게다가 내연기관차 역시 소형 터보차저 엔진을 통해 출력을 높이는 엔진 다운사이징 기술이 발달하면서 ‘고배기량 차량 = 고가 차량’이라는 공식은 이미 깨졌다.
현재의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로는 ‘재산세 + 환경비용’이라는 과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자동차세 문제를 방관한 것은 아니다. 지난 15년간 세 차례 개편을 추진했지만, 산업계 반발과 외교적 마찰 우려라는 현실의 벽에 막혀 모두 무산됐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배기량 중심 세제를 연비나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고배기량 대형차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의도였지만, 한·미 FTA가 발목을 잡았다.
한미 FTA 협정에는 “차종 간 세율의 차이를 확대하기 위해 배기량에 기반한 새로운 조세를 도입하거나 기존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대형 SUV나 고배기량 차량에 불리한 구조가 될 경우, 미국 측이 이의를 제기할 공산이 컸다. 결국 이 계획은 추진 초기 단계에서 중단됐다.
2015년에는 환경부 주도로 CO₂ 배출량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차등 부과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했으나.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세수 안정성과 산업계 반발을 우려했고, 부처 간 이견으로 무산됐다. 자동차업계가 저효율 차량에 대한 증세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개편 동력이 꺾였다.
가장 최근 시도는 2023년이다. 대통령실이 주도해 ‘국민참여토론’을 열고 자동차세 기준을 배기량에서 차량 가격 중심으로 바꾸는 방안을 공식적으로 논의했다. 토론 당시 국민 86%가 배기량 기준 개선에 찬성했다. 특히 테슬라 등 고가 전기차에 대한 과세 형평성 문제가 여론을 자극했다.
그러나 자동차세를 가격 기준 전환할 경우 고가 차량 보유자에 대한 ‘부자 증세’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더구나 테슬라 모델S와 같은 미국산 고가 전기차에 불리한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할 경우, 한·미 통상 마찰로 비화할 수 있다는 외교적 부담이 이번에도 발목을 잡아 결국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공론화 수준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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