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플레이션’ 우려, 우유가격 어떻게 결정하길래[정책하우스]

by이명철 기자
2022.08.20 14:00:00

원유 차등가격제 도입 추진 중, 생산자단체 반발 지속
협동조합 형태 서울우유, 사실상 독자 원유가격 인상 결정
유업체들 가격 인상 우려…조속한 정책 개편·대안 필요해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이란 용어가 요즘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마시는 흰우유나 치즈 같은 가공품 등 우유와 관련된 제품 가격 인상이 물가 상승세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업체 관계자가 우유를 정리하고 있다. 서울우유는 최근 소속 낙농가들에게 리터(L)당 58원의 지원자금을 지급키로 하면서 사실상 원유가격을 인상했다. (사진=연합뉴스)


우유가격에 대한 논쟁은 정부의 차등가격제를 골자로 한 낙농제도 개편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여기에 반발한 낙농가들이 정부와 대립각을 이어가고, 업계 1위 유업체인 서울우유가 원유가격을 사실상 인상하면서 우유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낙농제도 개편이 뭐길래 논란일까요?

낙농제도를 알아보려면 우선 우유의 유통 구조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낙농가가 젖소에서 짠 원유는 낙농진흥회가 납품해 유업체에게 돌아가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원유가격은 생산자단체(7명)·유업체대표(4명)·소비자대표(1명)·학계(1명)·정부(1명)으로 구성된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통상 8월 1일마다 결정합니다. 낙농진흥가 정한 가격에 따라 유업체가 원유를 구매하는 겁니다.

원유는 정해진 할당물량(쿼터)에 따라 생산합니다. 현재 쿼터는 연간 222만t인데 해당 범위에선 시장에서 얼마나 소비할지와 무관하게 정상가격으로 전량 유업체에 납품이 보장됩니다. 2020년 기준 낙농가(쿼터이력제 등록 기준)는 4929호로 원유 생산량은 약 209만t인데 모두 유업체에 납품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국내·외 원유가격 변화 추이. 한국과 해외 국가와의 가격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생산비에 연동해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 때문이라는 게 정부 분석이다. (사진=농식품부)


2020년 기준 원유가격은 리터(L)당 1083원입니다. 이는 미국(491원), 유럽(470원)보다 크게 높은 수준입니다. 물론 대규모 낙농산업을 벌이는 이들 국가와 비교하긴 어렵지만 우리나라는 원유가격을 생산비 증감에 연동하는 방식이 특징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생산비 증감액이 ±4% 이상이면 같은해, 미만이면 2년마다 생산비 증감액을 반영해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생산비가 크게 늘어나면 원유가격도 올리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원유에 쿼터를 적용해 가격을 보장하는 이유는 국내 낙농가의 자립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값싼 수입산에 밀려 국산 낙농산업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과거 국산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 비중은 한국 영화를 상영하게 했던 ‘스크린 쿼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국산 원유가 품질이 좋다고 하더라도 수입산보다 가격이 비싼 상황에서 유업체들이 살 이유가 있을까요? 이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는 유업체 구입가격의 일부를 보조하는 차액보전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0년 지원 총액은 336억원입니다. 농가당 지원 금액으로 보면 약 700만원 꼴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 같은 할당제, 생산비연동제, 차액보전제가 결국 국내 낙농산업 경쟁력을 떨어트리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마시는 우유(음용유)대신 유제품 소비가 늘고 있는 추세에서 우리 농가는 흰우유 중심의 높은 가격으로 일정량을 계속 생산해 수급이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국내 마시는 우유(음용유) 소비량은 175만t입니다. 국민 1인당 기준으로는 2001년 36.5kg에서 2020년 31.8kg으로 줄었습니다. 반면 유제품 소비는 같은기간 63.9kg에서 83.9kg으로 늘었습니다.



2020년 국내 농가가 생산한 원유 209만t에서 백색시유(흰우유) 사용량은 103만7000t에 그쳤고 가공시유 15만3000t, 기타유제품 56만6000t에 사용됐습니다. 우리가 직접 마시는 흰우유는 국산 선호도가 높다고 하더라도 가공용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수입산 원유가 있는데도 가격이 높은 70만t 정도의 국산 원유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유업체들도 점차 수입을 늘리고 있습니다. 원유로 한산한 유제품 수입량은 2001년 65만3000t에서 2020년 243만4000t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20년간 우유 생산·소비의 변화. 마시는 우유는 점차 줄어드는 반면 치즈 등 유제품 소비는 증가하는 추세다. (이미지=농식품부)


앞으로 이 같은 수요 불균형이 계속된다면 국산 낙농산업은 정부 지원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에 가공용 생산을 활성화해 소비형태 변화에 대응하자는 게 낙농제도 개편의 주 내용입니다.

개편안은 우유 할당량은 유지하되 음용유는 L당 1100원, 가공유는 L당 900원을 적용해 각각 187만t, 31만t을 생산키로 했습니다. 소비가 줄어드는 음용유는 줄이면서 가격을 낮춘 국산 가공유 생산을 늘린다는 취지입니다.

낙농가가 개편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가격이 낮은 가공유 생산이 늘어나면 결국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생산자단체가 주도하던 원유가격 결정에 정부가 간섭하는 것도 마뜩잖아 보입니다. 최근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생산비가 높아지는데 정부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니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지난달 25일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 앞 공원에서 열린 ‘낙농 말살 정부·유업체 규탄! 강원도 낙농가 총궐기대회’에서 도내 낙농인들이 항의의 의미로 원유를 큰 통에 쏟아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낙농육우협회 중심으로 반대를 이어가던 낙농가는 이번에는 유업체들에게 “원유가격 협상에 임하라”며 촉구에 나섰습니다. 보통 낙농진흥회가 가격을 결정하면 유업체들이 이에 따라 원유를 구매하는데 지금 제도 개편 지연으로 가격이 오르지 않으니 개별 유업체들이 먼저 올리라는 것입니다.

원유가격 인상의 ‘총대’는 서울우유가 멨습니다. 최근 소속 낙농가들에게 L당 58원의 목장경영안정자금을 지원했는데 사실상 원유가격을 이만큼 인상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서울우유는 협동조합 형태로 낙농진흥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각 조합(낙농가)에게 직접 우유를 납품받습니다. 지금까진 낙농진흥회 가격 결정을 준용했지만 꼭 그래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각 지자체에도 이러한 형태의 중소 협동조합들이 있는데 서울우유는 흰우유 기준 시장점우율 41%대의 1위 사업자입니다.

원유가격을 올린 서울우유가 앞으로 우유가격도 올린다면 다른 유업체들도 잇따라 가격을 인상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정부의 제도 개편안은 결국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농식품부는 앞으로 제도 개편은 서울우유 외 유업체들과 진행하겠다며 사실상 배제를 선언했습니다. 차액 보전 같은 정부 지원을 무기로 서울우유에 ‘패널티’를 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서울우유는 즉각 “우유가격 인상 계획은 없다”며 한걸음 물러섰지만 인상 요인은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우유가격에는 꼭 원유뿐 아니라 인건비 등 다른 요소도 있기 때문입니다. 낙농가 중심으로 유업체들이 선제 가격 인상에 나가기 전에 제도 개편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원유가격 결정 방식을 떠나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격’입니다. 질 좋으면서도 가격이 비싸지 않은 우유와 유제품을 만나볼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정책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국가 구성원인 낙농가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을 내놓는 것도 정부의 책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