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의 월가브리핑]美경제 숨은 뇌관…77조원 연체폭탄이 불러올 재앙
by김정남 기자
2020.12.28 07:29:17
월가는 내년 미국 경제 낙관론 우위인데
''뇌관'' 부동산…미납 집세 77조원 어쩌나
미국 1000만 넘는 가구 길거리 나앉을판
집세 못 받는 집주인, 연체율 ''심각 수준''
다양한 경제 부작용 유발할 퇴거 공포감
''퇴거 한달 유예'' 코로나...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은 연말 연휴 모드입니다. 예년 이맘때쯤이면 통상 증시는 한산하고요. 새해 기대감에 강세 탄력을 받았던 게 경험칙이지요.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매우 복잡합니다.
내년 미국 경제를 보는 월가의 시각부터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밝은데, 전제는 올해를 비교 대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블룸버그가 투자은행(IB) 76개의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집계해보니, 그 중간값이 3.8%로 나왔습니다. 올해(-3.6% 예상) 마이너스 성장을 넘어 얼추 지난해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이지요. 국제통화기금(IMF·3.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3.2%), IHS마킷(3.1%), 옥스퍼드경제연구소(3.6%) 등의 시각 역시 비슷합니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백신 보급과 각종 경제정책 지원으로 소비와 투자를 중심으로 경제 회복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특히 JP모건(3.2%), 골드만삭스(5.3%), 모건스탠리(5.2%), 웰스파고(4.6%) 등 월가를 주름 잡는 이들이 내놓은 내년 기업투자 전망은 ‘장밋빛’입니다.
지난주 <월가브리핑>에서 소개했듯 연방준비제도(Fed)는 내년 실질금리를 마이너스로 통제하면서, 경제 성장의 기반을 만들 겁니다. 월가에서 증시 낙관론 전망이 다소 우위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이번주는 미국 경제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뇌관을 소개할까 합니다. 낙관론 우위의 시장에도 늘 비관론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바로 미국 부동산 리스크, 정확히 말하면 미국 주택담보대출(모기지) 부실화 우려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팬데믹 이후 일자리를 잃어 집세를 낼 여력이 없는 임차인들은 연방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임차인들의 집세 납부를 올해 말까지 유예해준 것이지요.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올해 말까지 밀린 집세를 700억달러(약 77조원)로 추정했습니다. 1280만가구가 5400달러(약 600만원)를 내지 못했다는 겁니다. 미국 임대차시장은 전세가 없고 월세가 비쌉니다. 이 정도 집세라면 주로 저소득층이라고 봐야 합니다. 가난한 임차인들이 직장을 잃어 길거리로 나앉을 위기일 때, 정부가 나서 이들을 보호하는 건 사회정의 측면에서 옳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임차인들이 집세를 못 내니 집주인들이 은행에서 빌린 주담대 원리금을 갚지 못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요. 세입자를 상대로 집세 납부를 요구하는 소송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임차인들은 집에서 강제로 내쫓지 말아달라는 항의 시위를 곳곳에서 벌이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조사업체 코어로직에 따르면 지난 9월 미국 모기지 연체율은 6.3%로 나타났습니다. 모기지를 받은 이들 중 30일 이상 연체하거나, 아니면 90일 이상 연체해 압류 절차를 밟고 있는 비중이 100명 중 6명이 넘는다는 겁니다. 지난해 9월보다 2.5%포인트 더 높은 겁니다. 이는 팬데믹 직후인 올해 4월부터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 정도면 2016년 초 이후 거의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지요.
더 큰 문제는 모기지 연체의 ‘속살’입니다. 코어로직은 30~59일, 즉 2개월가량 은행 빚을 못 갚는 걸 ‘초기 연체(early-stage delinquency)’라고 부르는데요. 9월 그 비중은 1.5%로 집계됐습니다. 팬데믹 이후 최고치를 찍었던 4월(4.2%)보다 한참 낮고요. 심지어 지난해 같은달(1.9%)보다 아래입니다. 그러나 90일 이상 ‘심각 연체(serious delinquency)’부터 얘기가 달라집니다. 9월의 경우 4.2%로 1년 전(1.3%)보다 2.9%포인트 높았습니다. 8월 심각 연체율이 4.3%로 2014년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를 그대로 유지한 겁니다. 90일 이상 연체하면 은행으로부터 압류 절차를 밟게 됩니다. 180일 이상 연체율은 1.6%를 기록했습니다. 1년 전보다 5배 이상 높습니다. 2014년 이후 최고치이고요.
코어로직의 통계를 들여다보면 섬뜩한 느낌이 듭니다. 30일 이하 연체율(신규 연체·new delinquency)이 갑자기 치솟은 건 4월(3.4%)입니다. 3월 팬데믹이 본격화했기 때문입니다. 9월 신규 연체는 0.8%에 불과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기지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달이 많게는 6개월 이상 길어지는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겁니다. 이미 부실이 진행 중인 이른바 ‘질 나쁜 부채’입니다. 10월 이후 이같은 흐름이 심화했을 건 분명해 보입니다.
또다른 시장조사업체 트렙의 분석 역시 ‘연체 폭탄’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지난달 20일 기준 한달간 미국 상업용 모기지 연체율은 8.17%에 달했습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멈추면서 소매점 등의 경영이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세입자들이 임대료를 내지 못하자 상가를 담보로 대출 받은 건물주들이 빚을 갚지 못하는 겁니다. 이 수치는 5월 7.15%, 6월 10.32%까지 치솟은 후 8~9%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직전 2% 초반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그 내용이 심각합니다. 90일 이상 연체 비중이 3.22%에 이릅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숙박(lodging)입니다. 지난달 연체율이 19.66%입니다. 그 이유는 긴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소매점(retail·14.21%)은 숙박업계에 버금갈 정도로 붕괴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밀리는 임대료와 높아지는 연체율은 부동산 가치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요.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은행, 보험, 연기금 등 상업용 부동산저당증권(CMBS·상업용 부동산을 담보로 빌려준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증권)에 들어와 있는 기관투자자들에게 연쇄적으로 손실을 안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기댈 곳은 정부뿐입니다. 지금 미국 내에서는 코로나19 추가 부양책을 두고 시끄러운데요. 당초 의회는 부양책을 처리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송부했습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사인하지 않아 난리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요.
엄밀히 말해 집세를 내지 못하는 저소득층에 대한 퇴거 유예 조치는 별 영향이 없어 보입니다. 의회가 가결한 부양책은 올해 12월 말에서 내년 1월 말로 한 달 더 유예해주겠다고 명시해서입니다. 6개월 이상 집세를 밀린 실직자가 집세를 한꺼번에 갚을 만큼 큰 돈을 벌어올 가능성은 낮겠지요. 그래서 미국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든 풀어야만 합니다. 블룸버그는 퇴거 대란을 둘러싼 부동산 위기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초기 뇌관으로 꼽았습니다.
부동산 우려가 큰 건 12년 전의 끔찍한 기억이 한몫할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러 규제들이 나오며 서브프라임 같은 매우 낮은 신용등급의 모기지 비율은 12년 전 당시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실물경제 전체가 엎어지는 우려는 낮은 게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장기 연체자가 늘고 있고 주택 압류가 급증하고 있는 데다 정부가 마냥 집세 납부를 유예해줄 수 없다는 현실은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연준이 금리를 낮게 통제한다고 해서 집세를 못 받는 집주인이 원리금을 갚을 수 있는 건 아니지요.
미국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부동산시장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18% 정도입니다. 월가의 내년 경제 낙관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힘은 가졌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전례없는 전염병 위기에도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증시의 숨은 뇌관이지요. 잘 거론하지는 않지만 경제를 흔들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습니다.
퇴거 이슈는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합니다. 특히 눈여겨볼 건 월가의 주요 은행들, 특히 대출 비중이 높은 은행들입니다. 12년 전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월가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올해 대규모 보너스를 기대하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JP모건 주가(주당 139.40달러→124.52달러)는 올해 들어 10.67% 하락했습니다.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역시 비슷합니다. 다이먼 회장의 경고는 올해 예상 밖 실적이 좋다고 하더라도 잠재적인 손실 위험이 크니 대손충당금을 쌓을 여력을 남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최근 두 달 가량 대형 은행주 주가가 오르는 분위기인데요. 아직 안심하기는 이를 것 같습니다.
금융권 내에서도 각자 사정은 약간 다르지요. 대출 비중이 작은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올해 주가(229.80달러→256.16달러)는 11.47% 올랐습니다. 모건스탠리 주가(51.12달러→68.09달러, 33.20%↑)는 더 상승했지요.
생각지 못한 다른 악재도 있습니다. 미국 각지에는 노숙자들이 있는 데요. 기자가 자주 나가는 뉴욕 맨해튼의 포트 오소리티 터미널 근처 등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노숙자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갑자기 1000천만가구가 길거리에 쏟아진다면 어떻겠습니다. 변종 바이러스까지 등장한 마당에 코로나19 재확산은 거세질 걸로 확신합니다. 경제는 다시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지요.
| 미국 부동산 시장조사기관 트렙이 집계한 최근 상업용 모기지 연체율 추이. (출처=트렙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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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증시는 퇴거 유예 조치가 포함된 부양책 추이가 중요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9000억달러 규모의 부양책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서명하지 않고 버틸 경우 정부 셧다운(일시 업무 정지)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만 해도 증시는 이를 중대한 위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요. 연말 느닷없이 정부가 멈춘다면 증시가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5000만 이상의 가구가 집에서 쫓겨나는 퇴거 대란이 새해부터 일어나겠지요.
다음달 5일 조지아주 상원의원 결선 투표에 대한 부담 역시 작지 않습니다. 결선 투표에서 민주당이 2석을 모두 석권하면 민주당이 대통령에 이어 상원까지 장악하는 ‘블루웨이브’가 현실화합니다. 의석수는 공화당과 같지만 부통령이 캐스팅보트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시가 이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는 건 어렵습니다. 다만 월가가 두려워 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규제 강화가 수월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은 커질 수 있겠지요.
오는 31일 나오는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주목할 만합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지난주(이번달 13일~19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80만3000건으로 전주(89만2000건) 대비 8만9000건 줄었습니다. 3주 만의 감소입니다. 그러나 지난주는 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예상치는 83만5000건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실업난이 역사상 최악이라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팬데믹 이전 주간 신규 실업자는 통상 20만명 남짓에 불과했고요. 올해 이전의 최대치는 2차 오일쇼크 때인 1982년 10월 첫째주 당시 69만5000건이었습니다. 실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퇴거 대란 같은 미처 생각지 못한 악재가 계속 나올 수 있습니다.
이번주 금요일인 내년 1월1일은 신년 휴일로 증시는 휴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