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맛보기] 네거티브 홍수 속에 모두 허경영이 되었다
by김성곤 기자
2017.05.08 06:00:00
조기대선 정책대결 실종 속 각 후보 네거티브 치열
대선후보 검증 명분으로 막장 진흙탕 네거티브 난무
각 후보 대선공약 허경영 황당공약과 ‘오십보백보’ 수준
재원조달 방안 없다면 공약(公約) 아닌 공약(空約) 불과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19대 대선은 참 비정상적인 대선입니다. 일단 따뜻한 5월에 대선이 있다는 게 어색합니다. 무릇 대선이라 함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일주일 이전에 실시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조기 대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 따른 것입니다. 만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2월초에 이뤄졌다면 벚꽃 만발한 4월초에 대선이 열릴 수도 있었습니다. 말그대로 ‘벚꽃대선’입니다. 헌재의 탄핵 심판이 3월 10일에 열렸기 때문에 정확하게 60일 뒤인 5월 9일 열리게 되면서 장미대선이 됐습니다.
내일은 투표일입니다.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등 주요 5당 후보들은 두 달 동안 격렬한 공방을 벌여왔습니다. TV토론은 물론 전국 각지의 유세전에서 창과 방패의 대결이 이어졌습니다. 대선 D-1일인 8일에도 각 후보들은 전국을 종으로 횡으로 가로지르면서 막판 총력 유세전에 나섭니다. 특히 대선 공식선거운동이 종료되는 8일 밤 12시 직전까지 마지막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강행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5당 후보들은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적임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기억에 남으시나요?
이번 대선을 거칠게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네거티브의 홍수와 정책대결의 완전 실종입니다. ‘대선후보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네거티브는 대선판을 막장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었습니다. 각 대선후보 캠프와 대변인단이 쏟아낸 논평을 보면 네거티브가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책대결도 참담한 수준입니다. 각 후보간 차별성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십보백보’ 수준입니다. 백화점식으로 줄 수 있는 건 다 주겠다는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허경영의 황당 공약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국민이 가장 고통받고 있는 것은 집값과 교육비입니다. 이왕이면 반값아파트, 반값사교육비 공약은 왜 없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막장 네거티브’ 후보도 캠프도 다같이 뛰어들었다
이번 대선의 네거티브를 보면 정말 대통령 선거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분명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데 온갖 잡다하고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넘쳐납니다. 장관 인사청문회가 생각납니다. 능력과 전문성 검증은 온데 간 데 없고 신변잡기식의 도덕성 공방이 넘쳐나는 수준 이하의 인사청문회말입니다. 여당은 무조건 장관 후보자를 방어하고 야당은 무조건 끌어내리는데 혈안이 된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치러지는 대선입니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을 겪은 이후 치러지는 대선이라면 뭐가 달라도 달라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교훈은 없었습니다. 네거티브의 유혹에 각 후보와 캠프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히려 똘똘 뭉쳐 한몸이 돼서 뛰어들었습니다. 과거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었던 명품 TV토론은 유승민·남경필이 맞붙었던 바른정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습니다.
5자대결이라는 유례없는 다자구도로 대선이 치러지다보니 네거티브의 전선도 복잡다단했습니다. 문재인 vs 안철수의 맞대결 중 기억나는 정책공방이 있습니까? 문재인의 아들 취업 특혜의혹 등을 제기한 국민의당과 안철수 부인 특혜채용 의혹 등을 제기한 민주당의 공방이 모든 것이었습니다. 우스운 것은 두 사안의 경우 2012년 대선과정에서 두 사람이 단일화 주도권을 놓고 다툴 때 거의 대부분 다룬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재탕입니다. 홍준표 vs 유승민의 맞대결 중 기억나는 정책공방이 있습니까? ‘용서할 수 없는 배신자 vs 출마자격조차 없는 무자격 후보’라는 낙인찍기밖에 없었습니다. 최순실 사태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보수진영이 처한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보수의 미래를 위한 치열한 담론과 토론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심상정만이 네거티브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지만 이는 심상정이 당선권에 근접한 후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역설이었습니다. 아울러 문재인 vs 홍준표, 홍준표 vs 안철수 공방전 역시 정책과 비전에 기반한 논쟁이었다기보다는 케케묵은 과거만을 끄집어내면서 감정의 생채기만을 키웠습니다.
◇‘허본좌 공약’ 재평가? vs ‘허경영 혁명공약 33 실현 가능성은?
네거티브가 선거전을 지배하면서 정책대결은 사실 황당공약 경연장입니다. 허경영의 재림 수준입니다. 각 후보들의 공약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허경영의 황당공약과 ‘오십보백보’ 수준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사실 돈 나올 곳은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한계 탓에 안보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북유럽 수준의 복지는 사실 쉬운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백화점식 장밋빛 공약이 넘쳐납니다. 이는 모든 부담을 미래세대에게 떠넘겨 착취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각 후보는 나만은 다를 수 있다고 하지만 아전인수에 지나지 않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입니다.
올초 인터넷공간에서 만년 대통령후보 허경영 전 민주공화당 총재의 2007년 대선 출마 당시 공약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10년 전에는 비현실성 때문에 황당공약으로 여겼습니다. “말도 안된다” , “정치가 코미디냐” 쓴소리가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 그렇지 않다는 게 핵심입니다. △모병제 실시 △국회의원 정수 100명으로 축소 △노인수당 지급 △결혼수당 지급 등이 대표적입니다. 실제 모병제는 남경필이 바른정당 대선경선 과정에서 주장했습니다. 또 국회의원 정수 축소는 지난 2012년 대선과정에서 안철수가 제안했던 내용입니다. 노인수당은 물론 결혼·출산수당 역시 액수의 차이만 있을 뿐 정부와 주요 지자체에서 실시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허본좌’로 유명세를 누린 허경영의 대선출마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피선거권 박탈로 불가능했습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허경은 이후 “19대 대선에 내가 나왔으면 무조건 당선이었다. 못나가서 죄송하다. 대통령 빨리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20대 대통령이 되면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허경영은 2007년 대선 때 내걸었던 공약을 업그레이드한 허경영 혁명공약 33선을 발표했습니다. 강력범을 제외한 모든 범죄의 재산비례 벌금형 부과 등 혁신적인 세수마련책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허탈감이 묻어납니다. △국회의원 100명 축소와 무보수 명예직화 △정당지원금 및 지자체선거 폐지 △결혼수당 1억 지원·주택자금 2억원 무이자 지원 △출산수당 3000만원·주부수당 100만원·노인수당 부부합산 최대 140만원 지급 △국가예산 절반인 200조원의 20세 이상 전국민 배당제 실시 △1300조 가계부채 무이자융자 전환 △금융실명제 완전 폐지 △중소기업 청년 취업자에 월100만원씩 3년간 지원 등등. 한마디로 귀가 솔깃한 획기적 제안입니다. 그러나 굳이 경제학의 ABC를 꺼낼 필요도 없습니다. 현 시점에서 실현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허경영 불출마에도 황당공약은 여전히 살아있다
‘기초연금 20만원’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의 대표 공약이었습니다. 이명박정부 레임덕 아래 치러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박근혜가 승리할 수 있었던 대표 정책이었습니다. 핵심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공약 파기 논란이 일었습니다. 재원부담 탓에 국민연금과 연계해서 소득 하위 70%에 월 최대 2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을 지내며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던 진영 의원이 강력 반발하면서 큰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진영 의원은 장관직에서 자진사퇴했고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을 탈당,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습니다.
분명한 것은 허경영은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허황된 공약들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기초연금 인상입니다. 기초연금은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가만히 있어도 자연증가하면서 재정에 부담을 줍니다. 5당 후보들은 시기와 대상의 차이만 있을 뿐 기초연금을 현행 20만원에서 월 30만원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특히 일부 후보는 국민연금 연계 없이 일률적으로 기초연금을 모두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경우 더 많은 돈이 듭니다.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참고로 여야가 20대 총선에서 쏟아냈던 장밋빛 복지공약 중 1년이 지나도록 현실화된 것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추가 부담 없이도 복지도 늘려주고 철도와 다리도 놓아주겠다는 정치권의 태도는 사탕발림 공약을 늘어놓으며 거짓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대선후보들 대부분이 선거공약을 사회적 약속이 아닌 선물보따리처럼 풀어놓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대통령 한 명이 바뀐다고 해서 갑자기 국가재정 상황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공약이 현실성을 가지려면 재원조달 방안이 분명해야 합니다. 각 후보들의 재원조달 방안은 세출조정과 더불어 필요하면 증세를 고려하겠다는 정도입니다. 사실상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의 “증세없이 복지가 가능하다”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초연금 문제만이 아닙니다. 아동수당, 육아휴직수당, 최저임금, 사병급여 인상, 대학 반값등록금 실현 등등. 조 단위의 돈이 드는데 재원마련은 깜깜이 수준입니다. 아무리 표가 유혹한다 해도 이건 정말 아닙니다. 공짜점심은 없습니다. 한때 우리사회는 대학생 반값등록금을 금방이라도 해결할 것처럼 여야 정치권 모두가 나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야무야된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돈은 어디서 구해야 할까요? 미래세대에게 떠넘기거나 세금을 걷거나 국가가 빚을 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유권자들은 세금을 싫어합니다. 본인의 가처분 소득이 줄기 때문입니다. 과거 종합부동산세 논란이나 연말정산 파동, 담뱃값 인상 과정만 돌이켜봐도 분명해집니다.
차라리 조금 더 솔직해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모든 후보들이 짠 것처럼 기초연금 월 30만원 지급을 약속했습니다. 차라리 한국경제의 전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월 25만원 정도가 현 단계에서 최선이라고 용기있게 이야기하면서 유권자들을 설득한다면 표가 우수수 떨어져 나갈까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조기 대선을 만들어낸 우리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사전투표를 하지 않고 내일 투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국민들은 누가 무분별한 포퓰리즘 공약을 내걸었는지를 심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