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새해 첫 타종 `1230만원`..中 떠들썩한 14억의 춘절

by윤도진 기자
2012.01.24 14:54:30

한해 번돈 10분의 1 폭죽놀이에.."그만큼 더 벌죠"
세뱃돈도 몇년새 `세 배` 부담..가짜 신랑감 소개도

[상하이(上海)·저장(浙江) 항저우(杭州)=이데일리 윤도진 특파원] 설 연휴는 끝났지만 14억 중국인들의 춘절(春節, 음력 설)은 아직 진행중이다. 대륙 안에서 연인원 32억명이 고향 등지로 이동해 가족 친지들과 보내는 중국의 새해맞이는 짧게 잡아도 공식 연휴기간인 1주일(22~28일), 길게는 음력 12월23일부터 이듬해 1월15일까지 3주나 이어진다.

한국에서는 설날 휴일이 "주말을 더해서 나흘"이라고 하면 현지인들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대륙 밖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떠들썩한 중국인들의 명절 풍경을 현지에서 들여다봤다.

▲ 중국인들은 음력 12월29일 조상신을 모시는 차례를 지낸다. 사진은 저장성 해안가 저우산(舟山) 지역 민가의 차례상.


음력 섣달 그믐이었던 지난 22일 저녁 저장성 부자 도시 항저우의 관광명소 시후(西湖)에는 새해맞이 인파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이 지역 춘절 행사 중 가장 유명한 풍속이 자정에 시후 류허타(六和塔)의 새해 첫 종소리를 듣고 향을 피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근에서 기념품을 파는 쑹링(宋玲.여) 씨는 "매년 10만명씩은 모인다"고 했다.

▲ 항저우 류화타에서 임진년 첫 종을 치는 시후자산경영그룹 정쥔 총경리(사진: 인민망)
첫 타종 인사 뽑는 절차도 요란하다. 유명인사나 관료, 사찰 승려들이 종을 치는 것이 아니다. `첫 타종(頭鐘)` 자격을 두고 매년 경매가 벌어진다. 888위안에 시작하는 경매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짝수 특히 `6`이나 `8`을 포함한 숫자 위주로 가격이 올라 금세 수만위안을 호가한다. 올해는 6만8000위안, 우리돈 1230만여원을 써낸 시후자산경영그룹 사장이 첫 종을 울렸다.

중국 경제의 활황세를 보여주듯 경매 낙찰가가 매년 뛰는 것도 흥미롭다. 2007년 2만위안이었던 게 2008년엔 3만6800위안으로 오르더니 2010년에는 4만2010위안, 작년에는 6만1800위안으로 수직상승했다. 올해까지 5년새 3.4배나 뛴 것이다. 사찰에서는 경매 수익을 불우이웃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이날 경매 몇 시간만에 모인 돈은 약 42만위안(7600여만원)으로 집계됐다.




곳곳에서 터지는 폭발음이 시가전을 방불케하는 춘절맞이 폭죽놀이도 어김없이 반복된다. 중국인들은 큰 소리로 액운을 쫓는다는 의미로 특별한 날마다 폭죽을 터뜨리는 데 춘절에는 거의 빠짐없이 이 행렬에 동참한다. 설날을 맞는 자정 무렵에는 거리는 물론 아파트 입구, 심지어 베란다에서도 폭죽이 터진다.

폭죽을 많이 터뜨려야 재물복도 크다는 속설로 중국인들은 한해 버는 돈의 10분의 1을 새해 폭죽놀이에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이 고향인 장진뱌오(張金標)씨는 "올 춘절 동안 쓸 폭죽을 3000위안어치 샀다"고 했다. 그의 한달 월급과 비슷한 금액이다. 불꽃놀이는 춘절 당일 뿐 아니라 재물신이 온다고 믿는 음력 1월5일, 춘절 행사가 마무리되는 위안샤오절(元宵節, 정월대보름)까지 계속된다.
▲ 22일 밤 상하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불꽃놀이(사진: 동방조보)

하지만 수없이 터뜨린 폭죽 탓에 설날 아침 거리는 폭죽 잔해들이 넘쳐나고 남아있는 화약 연기로 공기 오염도 극심해진다. 상하이시 당국은 올해 설날 새벽 수거한 폭죽 쓰레기가 1000톤에 육박했다고 밝혔다. 시 환경감측센터에 따르면 대기 속 미세먼지(PM2.5)가 설 자정 직후 평소의 십수배가 넘는 245㎍/㎥를 기록했다.


하지만 중국인 모두에게 춘절이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반가운 명절만은 아니다. 중국 미혼 젊은이들도 고향집에 가면 `시집(장가)가라`는 어른들 말이 부담스럽다. 이렇다보니 `가짜 배우자감`을 친지들에게 소개시키기도 한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왕(淘寶网)에는 `춘절 기간 남자(여자)친구 대행 서비스` 광고가 800여건이 올라와 있다.

▲ 중국에서는 세뱃돈을 붉은 봉투(홍바오)에 넣어준다.(사진: 바이두)
23일 상하이에서 만난 택시 기사 린하이선(林海深)는 아이들에게 주는 세뱃돈인 `홍바오(紅包)` 때문에 연휴중에도 일을 놓지 못했다. 그는 "몇년 전까지만해도 조카들에게 200위안정도 주면 됐는데 올해는 봉투에 600위안은 넣어야 한다더라"고 씁쓸해 했다. 보통 짝수 단위로 홍바오에 돈을 넣는데 `4`는 `죽을 사(死)`자와 발음이 비슷해 건너뛰면서 세뱃돈 부담이 확 커졌다는 설명이다.

연휴 전 중국사회공작(社會工作)협회가 베이징(北京), 상하이, 광저우(廣州) 등 대도시 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70%가 "연휴에 고향으로 가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이유(복수응답)로는 `교통편이 힘들어서`(83%), `거주 환경이 불편해서`(75%), `경제적 이유`(71%), `가정 또는 연애 문제`(35%) 등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