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란의 컬러인문학]⑫단오(端午)의 색

by박철근 기자
2016.06.10 07:00:00

[김향란 삼화페인트 컬러디자인센터장]

음력 5월 5일, 바로 어제 6월 9일은 우리 민족의 4대 명절 중 하나인 단오였다. 단(端)은 첫 번째를 오(午)는 다섯이란 뜻으로 5월의 초닷새를 뜻하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도 명절로 지내고 있다.

중국에서는 기수(奇數:홀수)의 달과 날이 같은 수로 겹치는 것을 중요시 여겨 명절로 삼았다. 단오는 신이 오시는 태양의 날로 일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해 이때 부적을 사용하면 그 어느 때보다 효과가 크다고 믿었다. 음양오행사상에 따르면 세상에 모든 만물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태양은 양의 기운을 달은 음의 기운을 가지고 서로가 상생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한국세시풍속사전(국립민속박물관)에 의하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단옷날 산에서 자라는 수리취(戌衣翠)라는 나물을 뜯어 떡을 해먹기도 하고 쑥으로 떡을 해서 먹는데, 그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처럼 둥글기 때문에 수릿날이라는 명절 이름이 생겼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수뢰(水瀨)에 밥을 던져 굴원을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단오는 한해 동안 무탈하게 지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신께 예를 다해 제를 지내는 기원이 바탕이 된다.

단오에 먹던 수리취는 대표적인 세시음식으로 보통 떡으로 색과 향을 즐기기 때문에 떡취라고도 불렀는데 어린잎은 떡으로 만들어 먹고, 성숙한 잎은 불에 볶아 곱게 비벼 부싯깃(부싯돌을 칠때 불똥이 박혀 불이 붙도록 부싯돌에 대는 것)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단오에는 이런 세시음식 외에 지역의 특성을 가미한 축제들이 많다. 여전히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풍속인 그네를 타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것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여러 지자체에서 해마다 행하고 있다.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의 ‘단오풍정’을 보면 단옷날 그네타기를 놀러온 여인들이 시냇가에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으며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붉은 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은 여인은 하얀 속바지를 드러내며 그네타기를 하려고 한쪽 발을 올려 놓고, 뒤편으로 푸른색 치마를 입은 여인은 양갈레로 딴 머리를 늘어뜨려 매무새를 다듬고 있다.



구도상으로 보았을때 냇가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여인들보다 위쪽에 있는 그네를 타려는 여인으로 눈이 가는 것은 붉은색 치마가 주는 주목성 때문이다.

유만공의 ‘세시풍요’(歲時風謠)에서도 그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단오 옷은 젊은 낭자(娘子)에게 꼭 맞으니(戌衣端稱少娘年) 가는 모시베로 만든 홑치마에 잇빛이 선명하다(細苧單裳茜色鮮). 꽃다운 나무 아래서 그네를 다 파하고(送罷秋天芳樹下), 창포뿌리 비녀가 떨어지니 작은 머리털이 비녀에 두루 있다(菖根簪墮小髮偏)(출처:한국세시풍속사전). 마치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묘사한듯 한 생생함이 있는데 ‘잇빛이 선명하다’에서 잇빛은 잇꽃빛깔의 줄임말로 홍화에서 만들어지는 붉은빛을 의미한다. 신윤복의 단오풍정에서 붉은 치맛자락을 추켜올려 그네를 타려는 여인에게 눈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리라.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것은 비단 머릿결만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창포비녀를 만들어 액을 물리치고 여름내 더위를 먹지 않게 하기 위한 벽사의 의미도 있었다. 붉고 푸른 새옷을 입고, 창포뿌리를 깎아서 만든 비녀에 벽사의 붉은색을 바르거나 수복(壽福)이라는 글자를 새겨 머리에 꽂거나 패용함으로 잡귀를 물리치고 집안의 액도 소멸한다고 믿었는데 단오는 태양의 날로써 양기가 왕성하기 때문에 이때 부적을 쓰면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토속신앙에 기인한다. 뿐만 아니라 쑥이나 짚으로 호랑이 모양을 만들거나 혹은 사람 모양을 만들어 대문 앞에 걸어 놓고, 쑥잎을 붙여 머리에 꽂거나, 익모초처럼 쓴 약초를 말려 걸어 놓는 등의 행위들은 재앙에 대한 인간의 나약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 하다.

부적을 쓰고, 비녀에 진사를 바르는 등은 모두 붉은색과 연관이 있는데, 벽사의 색으로 알려진 붉은색은 잡귀를 물리치고, 경사에 마가 끼지 않도록 하며, 사악한 것을 물리쳐 보호를 하는 색으로 그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푸른색은 경계의 색으로써 액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을 하는 역할을 하곤 하는데 이는 우리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게르만족이나 켈트족의 풍습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종교의식을 치르거나 전쟁에 나갈 때 대청으로 얼굴과 온몸을 파랗게 칠해 상대 군인들을 공포심에 떨게 하였다고 한다. 영화 ‘브레이브하트’를 보면 스코틀랜드의 영웅 윌리엄 월레스(맬깁슨 역)가 잉글랜드와의 전투에서 얼굴을 파랗게 칠하고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적군에게는 공포심을 심어 주고 아군에게는 켈트족의 단결과 전투의지를 독려하여 승리로 이끌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이처럼 컬러는 무언(無言)의 강한 메시지를 담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한번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