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전략포럼2010)후지모토 "샌드위치? 韓 이미 변신중"(下)

by이정훈 기자
2010.06.06 19:08:18

"미세조정형 비중 확대..대기업들 변화 진행중"
"도요타 실패 큰 교훈 삼아야..환율 양날의 칼"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당신의 대표적인 저서 `모노즈쿠리`를 보면 아키텍쳐 포지셔닝을 강조하고 있다. 포지셔닝 전략면에서 최근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부진과 한국 업체들의 상대적 약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이번 일련의 도요타 사태를 보면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긴 했지만 금융버블을 겪고 있는 미국 시장에 대해 너무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미국에서 주로 이익을 낸 차종은 고급차와 트럭 기반의 SUV차량이었다. 도요타는 미국 내에 너무 많은 SUV 공장을 지으면서 엄청난 금융부채를 지게 됐다. 또 일본에서 고급차종을 다량 생산해 버블이 있던 미국에 수출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시장에서는 이런 고급차와 대량 차량에 대한 수요층이 붕괴됐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요타는 미국 금융위기의 최대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바꿔 말하면, 고급차나 하이브리드와 같은 하이엔드 친환경 차량 등 미국내에서 도요타가 강점을 가진 `미세조정형(인테그럴) 아키텍쳐`-부품 설계를 서로 조정해 제품마다 최적화 설계를 해야만 전체 성능이 나오는, 따라서 기술력이나 진입장벽이 높은 제품-가 바로 자신들의 재무 위기를 야기한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반면 현대차와 같은 한국 기업들은 미국 고급차 시장에 상대적으로 덜 의존적이었다. 더 단순한 차량 디자인과 세계시장에서 더 다변화된 제품 믹스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 업체들은 미국 위기 영향을 덜 받았다. 게다가 한국 업체들이 제품 제조나 디자인의 질적 측면에서 지난 1990년대에 비해 큰 개선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위기 이후 우호적인 환율도 실적 개선을 도왔다. 이런 이유들로 볼 때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처럼 일본과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한국의 몇몇 산업들은 조화로운 생산능력을 만들어내고 전략적 포커스를 미세조정형 아키텍쳐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맞춰가는 노력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미 한국의 일부 대기업들은 이런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당신은 `모노즈쿠리`의 핵심으로 인적자원 양성을 뜻하는 `히도즈쿠리`를 거론했다. `히도즈쿠리`의 중요성은 무엇이고 기업들은 이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일본 주요 수출업체 최고경영자들은 엔화 절상 등의 이유로 높아진 비용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점차 비정규직 직원들을 늘리려 하고 있지만, 오히려 장기 근속자나 다양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거나 팀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인력을 더 채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이야말로 미세조정형(인테그럴) 제품에서의 조화로운 생산능력을 발휘하는 원천이 되며 여기에 일본의 전통적인 비교우위가 있다고 본다.

설령 기업이 수출업체로서 생존하지 못해도 리드타임과 질(質)적인 면에 주안점을 둔 이들 인력들은 국내시장에서 생존 가능할 것이다. 기업들은 이 목적에 맞는 똑똑한 사업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는 그리스와 같은 소비린 위기를 일본도 겪을 수 있다. 이 경우 엔화 가치는 급락하고 일본인들에게는 재앙일 수 있겠지만, 이런 기업이 될 수 있다면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탄탄한 수출업체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적자원을 키워낸다는 `히도즈쿠리`는 그런 제조업 분야를 지속시키는데 핵심이다. 정부는 인적자원을 양성하는데 더 많은 재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짧게만 보고 장기적인 지원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도 있다.

-제조업 강국으로서 일본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겠다. 이런 모노즈쿠리의 전통을 재정립하기 위해 일본 기업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 또 앞으로 해야할 일들이 매우 많다. 그러나 이런 짧은 서면 인터뷰에서 다 얘기하기 어렵다. `세계전략포럼 2010`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을 때 몇몇 제안을 해보겠다.



-앞서 언급한 일본 제조업 부진이 한국 기업들에게는 반사이익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보면 한국 기업들도 일본 기업들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 기업들에게 (일본 제조업처럼 위상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어떤 조언을 할 수 있겠나.

▲여기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국가간) 무역은 스포츠와 다르다. 스포츠라면 한국 축구팀이 한-일전에서 승리한다면 일본팀은 지게 된다. 그러나 서로의 상대적인 이익에 기반한 견실한 무역이라면 두 나라 모두에게 이익을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윈-윈 게임이다. 결국 이 질문은 상대적인 보수(wage) 수준에서 두 나라 기업들이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가와 관련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두 가지 충고가 가능할 것이다. 하나는 생산능력을 높이고 제품 질을 개선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계속 하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런 생산능력과 경쟁력에 맞는 제품과 산업이 무엇인지 잘 선택하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모든 산업분야에서 무역흑자를 낼 순 없다.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국과 일본간 무역역조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주요 제조업이 여전히 일본으로부터의 소재와 부품 수입에 의존해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나. 해법이 있다면.

▲이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간 무역적자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여기서 큰 의미가 있진 않다. 다시 말해서, 국민들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무역적자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상대적 보수와 같은 더 나은 삶의 기준에서 전반적인 무역균형이 달성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해법도 결국 앞서 얘기한 답변과 같다. 생산능력을 높이고 제품 질을 개선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계속 하라는 것, 그리고 그런 생산능력과 경쟁력에 맞는 제품과 산업을 잘 선택하라는 것이다.

-작년부터 현대차와 도요타만 놓고 보더라도 한국과 일본 통화가치가 엇갈리면서 두 회사 이익에 영향을 줬다. 그런 면에서 최근 원화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한국 수출기업들에겐 좋지 않은 신호인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기업들간 경쟁과 두 나라 사이의 무역관계는 별개로 봐야 한다. 현대차와 도요타는 계속 좋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할 것이고 이는 세계 자동차시장 고객들에게도 좋은 소식일 것이다. 다만 금융위기 이후 원화 환율은 한국 수출기업들에게 아주 우호적이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인플레이션을 높이고 국민들의 소득을 제약하는 요인이 됐다. 항상 이렇듯 환율 관점에서는 호재와 악재가 공존하는 법이다. 만약 조만간 원화가치가 올라간다면 이는 한국 수출기업들에게 어려움이 될 수 있지만 한국의 평균소득수준은 일본과 더 근접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 국민들에게 좋은 소식일 수도 있다. 한국 부품업체들도 1990년대 일본이 그랬듯이, 생산능력을 제고함으로써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한국과 일본 기업들 모두 생산능력을 높이는 한에서 양자간 윈-윈이 될 수도 있다. 글로벌 경제에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협소한 시각일 수 있다.
 
다카히로 소장의 보다 자세한 메시지는 이데일리가 창간 10주년 기념으로 주최하는 `세계전략포럼 2010(WSF 2010)`중 `세계 제조업,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라는 주제강연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강연은 포럼 첫째날인 6월8일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오후 5시15분부터 6시10분까지 55분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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