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스타트업 몸값 껑충…더 초기투자로 옮겨가는 VC

by김예린 기자
2022.05.22 11:40:48

스마게 초기투자펀드2호 결성, KB·TS인베도 초기 발굴 박차
"중후기 밸류 부담스럽다…일찌감치 선점해 팔로우온"
상장·비상장 시장 조정기, 초기투자 힘주는 VC들 늘어나

[이데일리 김예린 기자] 중후기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가 높아지면서 초기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이 늘고 있다. 될성부른 떡잎에 일찍 투자해 팔로우온하면서 업체를 키워나간다는 전략으로, 투자 경쟁이 심화하는 VC 업계 단면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는 최근 초기 투자 전용 ‘스마일게이트로켓부스터2호펀드’를 결성했다. 70억원에 1차 결성을 완료한 상태로, 2차로 최대 30억원을 더 모집해 약 100억원으로 최종 클로징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엔젤투자자들을 모아 결성한 개인투자조합1호(20억원)와 스마게로켓부스터2호 펀드를 포함하면 초기투자에 집행하는 금액은 약 120억원이다. 향후 2~3년간 초기기업 발굴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2호 펀드로 최근 투자한 곳은 시드와 프리 시리즈A 단계 스타트업들로, 난임 인공지능(AI) 솔루션을 제공하는 카이헬스, 자율주행 데이터 플랫폼 파트리지시스템즈가 있다. 앤트(연구 데이터 기록 및 관리 솔루션)와 노틸러스(교육용 웹툰 플랫폼), 긱블(공상과학 영상 콘텐츠 미디어), 위커버(AI 의료)등에도 투자를 확정하고 절차를 밟는 중이다.

지난해 스마일게이트로켓부스터1호를 결성하고 모두 소진한 데 이어 이번에 2호 펀드를 결성한 것은 그룹 차원의 전략이다. 스마게인베는 지난해 초기투자팀을 설립하고 김영민 상무를 투입해 극초기 단계의 경우 초기투자팀에서 소규모로 투자한 뒤, 투자1·2·3본부에서 팔로우온 투자를 집행하는 방식으로 초기기업을 발굴해왔다. 김 상무의 진두지휘 아래 부스트이뮨과 진큐어, 비포플레이, 디에이엘컴퍼니, 엘알에이치알, 더데이원랩이 팁스에 선정되기도 했다.

KB인베스트먼트도 올해 초 초기투자팀 ‘KBFC’(케이비파운더스클럽)를 설립하며 투자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총 300억원 규모의 KBFC 펀드도 결성했으며, 현재 4명인 인력을 5명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마젤란기술투자를 거쳐 KB인베에서 시리즈A 투자를 주도해온 이지애 상무가 이끌고 있다.

중후기 투자에 특화된 TS인베스트먼트(246690)도 최근 초기기업 발굴에 팔을 걷어붙였다. 올해부터 티에스 14호 뉴딜 혁신성장 투자조합(1300억원)을 통해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 관련 초기기업 발굴에 나서, 근래 미니보험 오픈플랜과 스타일 매칭 플랫폼 이옷에 10억원씩 투자했다.



TS인베는 본디 M&A와 세컨더리에 강한 하우스로, 두나무와 크래프톤(259960), 프리시스 등에 투자했고 최근 골프용품 업체 볼빅과 전자레인지 부품 기업 디피씨, 전기배선업체 위너스, 온라인 쇼핑몰 공구우먼(366030) 등을 인수했다.

다만 창업 활성화로 초기기업들의 역량이 높아지고, 후기로 갈수록 밸류가 지나치게 높아진 만큼 일찌감치 투자해 선점효과를 노린다는 것. 14호 펀드 결성 초기인 내년 초까지 프리 A나 시리즈A 단계 기업들에 꾸준히 투자해 중후기까지 팔로우온할 계획이다. 지난 2019년 인수한 액셀러레이터(AC) 뉴패러다임인베스트먼트의 초기기업 발굴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 중이다.

VC들의 초기투자 움직임은 국내외 증시가 조정국면에 접어든 시그널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증시 상장사들의 주가가 급락하고 공모시장 분위기도 얼어붙어 대어로 꼽혔던 기업들이 줄줄이 IPO(기업공개)를 철회하고 있다. 투자심리 악화로 비상장 주식시장도 위축되면서 프리 IPO단계 기업들도 고밸류란 이유로 투자 유치에 적신호가 켜진 만큼 초기투자에 힘주는 VC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식시장 조정기가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많은 만큼, 초기투자에 드라이브를 거는 VC들의 움직임이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한 VC업계 임원은 “워낙 VC들의 경쟁이 치열하고 기업들 밸류도 높아져서 기존 투자자가 아니면 핸들링하기 어려워졌다. 다만 과거 인재들이 대기업 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엔 창업에 적극적인 만큼 정책자금과 민간자금이 벤처투자시장에 계속 몰릴 것”이라며 “밸류에 거품이 끼고 빠지더라도 초기기업의 경우 종국엔 우상향할 것이기에 소싱의 일환으로 초기투자 기반을 깔아두려는 전략”이라고 전했다.

이런 움직임을 두고 초기 투자에 특화된 중소형 투자사들 사이에서는 거대 자본력을 가진 VC들이 여기까지 내려오면 어떡하느냐는 불만과 함께 회의적인 시선도 감지된다. 국내 투자사 한 관계자는 “M&A나 세컨더리에 특화된 VC들은 워낙에 판단해야 할 조건이 까다롭고 데이터를 따지기 때문에 초기기업에 투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초기기업들은 수익성이나 성장성을 입증할만한 데이터가 적어 사람과 주변 인맥만을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접근법 자체가 다르다”고 전했다.

VC들의 투자 단계가 초기로 내려오는 흐름에 대응해 AC들도 경쟁력 확대에 힘쓰고 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최근 컴퍼니빌더 프로젝트로 ‘포트폴리오그로스팀’을 출범했다.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팀 빌딩부터 서비스 기획, 시장 분석, 재무·회계·법률 자문, 인력관리를 제공하고 있다. 퓨처플레이는 일찍이 컴퍼니빌더 정체성으로 차별화한 AC로 최근 여러 VC와 앤젤투자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노틸러스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태니지먼트를 인수해 올해부터 프로덕트 오너(PO) 육성 프로그램 등 휴먼 액셀러레이션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