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걱정 많은 당신, 심하게 까칠해진 당신 정신질환을 의심하라

by조선일보 기자
2008.02.20 09:48:00

한국인 17.1%가 정신질환
자신도 모르게 고통받고 있다

[조선일보 제공]

결혼 생활 6년째인 주부 김진희(35·가명)씨는 언제부턴가 외출하기가 꺼려졌다. '혹시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추락하지 않을까?' '지하철에 누가 불을 지르면 어떻게 할까'하는 걱정 때문. 친구들은 "온 세상 걱정 혼자 다 짊어지고 산다"고 말하지만 김씨는 정말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을 느낀다.

깔끔한 성격도 도가 지나치다.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나 과자 부스러기 하나도 눈에 거슬린다. 이런 성격 때문에 자주 부부싸움을 벌였고, 급기야 이혼 위기까지 내몰렸다. 김씨는 '범불안장애'와 '강박증' 진단을 받고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중소기업 마케팅 과장 윤영우(38·가명)씨. 일 잘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본인으로선 죽을 맛이다. 4년쯤 전부터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 그래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 가기가 싫고, 출근해선 부하 직원에게 신경질과 짜증을 자주 낸다. 신경도 엄청나게 예민해져 언제부턴가 "성격 까칠한 사람"이란 얘기를 듣게 됐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약해져 몸이 조금만 안 좋아져도 '혹시 암이 아닐까'란 걱정을 한다. 윤씨는 현재 세브란스병원에서 우울증 통원 치료 중이다.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정신을 잃고 발광(發狂)하는 사람만 정신병 환자가 아니다. 직장에서 매일 아옹다옹 다투며 일을 하는 동료, 심지어 살을 맞붙이고 사는 아내나 남편이 멀쩡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보건복지부 역학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17.1%에 해당하는 545만 명이 정신질환을 겪고 있으며, 알코올·니코틴 중독자를 제외하더라도 8.3%인 약 264만 명으로 추정된다. <본지 2월13일자 D7면 보도> 이중 정신분열병이나 알코올중독 같은 중증 정신장애로 병원이나 시설에 입원한 환자가 2006년 기준 6만5498명(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나머지 약 529만 명은 겉으로 봐서 정신 질환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어 실감하지 못하지만 충치 환자(526만 명)만큼 많은 정신질환자가 정상인들과 뒤섞여 생활하면서 갈등과 애증의 삼각함수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 건강보험공단의 '2006년 정신질환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는 총 181만 명이다. 이유 없이 불안을 느끼는 불안장애 환자가 75만 여명, 우울증이나 조울증 같은 기분장애 환자가 63만 여명이었다. 결국 약 360만 명의 정신질환자가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거나, 정신질환이 있는 줄 알아도 치료를 받지 않고 살고 있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홍진표 교수는 "머리나 배가 아파서 내과에 갔는데 이상이 없다는 사람 중 상당수가 정신질환일 것이다. 정신질환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정신병자 취급 받기 싫어서나, 심지어 가족이나 직장동료조차 정신과 왜 가냐고 말리는 경우가 많아 외롭게 병을 겪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신질환 치료를 소홀히 할 때 발생하는 개인적, 사회적 손실은 엄청나다. 가정 폭력과 이혼, 가정파탄은 물론이고 직장생활을 유지하지 못해 발생하는 생산성 손실도 크다. 경우에 따라선 방화, 살인, 자살, 성폭력 등 사회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따르면 정신질환의 직·간접 사회적 비용은 3조8298원 억으로 국내총생산(GDP)의 0.5%를 차지한다. 미국도 한해 1478억 달러가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으로 소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