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계, CEO 재신임 대세.. "전쟁 중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

by이진철 기자
2016.12.18 10:57:18

美금리인상·보호무역.. 글로벌시장 불확실성 위기상황
연말인사 혁신 인물보다 검증된 수장 선호.. 안정경영 초점

[이데일리 이진철 기자] 삼성, LG, SK 등 전자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 대부분 유임으로 가닥을 잡으며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경기침체 우려와 미국과 중국 등의 자국 산업 보호주의 강화로 글로벌 전자업계는 내년에도 한치의 양보없는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예고하고 있다.

전자업계는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오랜 격언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위기 상황에서 무리한 혁신 인사를 발탁하는 것 보다는 능동적인 대처가 빠른 검증된 수장을 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SK그룹 연말 사장단 인사를 앞둔 SK하이닉스(000660)는 박성욱 사장의 연임이 유력시되고 있다. 박 사장은 2013년부터 SK하이닉스를 이끌고 있으며, 과감한 투자를 통한 고부가가치 신제품 확대 등으로 반도체 업황 호조의 수혜를 누리는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올 상반기 D램 가격 하락에 따른 업황부진으로 실적이 직격탄을 맞았고, 최태원 SK 회장이 ‘변화’를 언급하며 비상경영을 선언하면서 박 사장은 한때 교체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하반기 D램 가격이 반등하고,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은 추월하는 등 실적을 회복하면서 유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천공장 M14팹의 2층 공사를 내년 상반기 마무리하고 하반기부터 4세대 3D 낸드플래시 메모리도 양산할 계획이다. 최근 미국 스토리지 전문업체 씨게이트와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등 수요가 증가하는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대응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따라서 엔지니어 출신으로 반도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실무형 CEO인 박 사장의 리더십이 유지되는 게 유리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사장단 연말 인사가 지연되고 있는 삼성은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겸임했던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자리를 누가 맡을 지 주목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1분기 액정표시장치(LCD) TV패널의 판가 하락과 신공정 도입으로 인한 수율 저하에 따른 실적부진 책임을 물어 박동건 사장이 삼성전자 DS부문 보좌역으로 물러나고 권오현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겸임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LCD 가격상승과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수요증가로 올 3분기 1조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경영이 정상화되면서 권 부회장은 대표이사 겸임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플렉서블 OLED 거래선 확대에 따른 대규모 증설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업장 관리에 정통한 내부 부사장급 승진으로 신임 CEO를 선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의 문책성 인사가 거론되고 있는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과 조남성 삼성SDI(006400) 사장의 거취도 주목된다. 고동진 사장은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서 열리는 수요 사장단회의에 최근 2주 연속 참석했다. 또한 내년 ‘갤럭시S8’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최근 임직원들에게 보안강화 관련 경영 서신도 보내 세간의 경질설을 일축하는 분위기다.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왼쪽), 조남성 삼성SDI 사장(가운데), 이윤태 삼성전기 사장(오른쪽)
조남성 사장은 갤노트7 배터리 문제가 발생한 후 천안사업장에 상주하며 생산라인을 직접 챙기며 사태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좀처럼 실적 부진을 탈출하지 못하고 중국 전기차 배터리 인증 지연 등의 악재까지 겹쳐 유임여부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신사업인 반도체패키징과 전장부품 사업확대에 나서고 있는 삼성전기(009150)는 이윤태 사장이 최근 CEO 직할로 PLP(패널레벨패키지) 사업팀을 신설하는 등 내년 사업준비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는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은 이달 초 단행된 LG그룹 인사에서 CEO들이 모두 유임됐다. LG전자(066570)는 조성진 생활가전(H&A)사업본부장(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기존 3인 대표체제에서 조 부회장 1인 최고경영자(CEO) 체제로 전환했다. 스마트폰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로 문책여부가 관심을 끌었던 조준호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본부장(사장)도 유임돼 내년 재기의 기회를 얻었다.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위 왼쪽),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위 오른쪽), 조준호 LG전자 사장(아래 왼쪽), 박종석 LG이노텍 사장(아래 오른쪽)
계열사 이동설이 돌았던 한상범 부회장은 변동없이 LG디스플레이(034220) CEO를 계속 맡게 됐다. 한 부회장은 4년째 LG디스플레이를 이끌며 중국과 일본 디스플레이 기업들의 견제 속에서도 18분기째 흑자기조 유지로 안정적인 경영수완을 인정받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연말인사 후 조직개편을 통해 5개 사업부를 3개로 통폐합하고 OLED사업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실적부진을 겪었던 LG이노텍(011070)도 박종석 사장이 유임돼 사업 일관성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박 사장은 그동안 카메라모듈, 전장부품, 패널부품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실행했다. LG이노텍은 원가경쟁력 차원에서 베트남 생산법인을 설립해 수익성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