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異야기]10평에서 나온 ‘루게릭병 환자들의 희망’

by박기주 기자
2015.08.19 08:10:00

김경숙 코아스템 대표 인터뷰
줄기세포 연구 중 루게릭병과 인연
계속되는 자금난에 그만둘까 고민도
어려운 환자에게 도움되는 ''연구공동체''가 되는 것이 목표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희귀질환만 해도 8000개고, 세상에 약이 전혀 없는 질병이 너무 많아요.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를 하면서 치료제가 없는 질병을 찾다 보니 루게릭병이 눈에 들어왔죠”

김경숙 코아스템 대표
올해 세계 최초로 출시된 루게릭병의 줄기세포치료제 ‘뉴로나타-알’을 개발한 김경숙 코아스템 대표이사(사진)의 말이다. 루게릭병은 많은 영화에서 비극의 질병으로 묘사되는, 운동신경세포만이 선택적으로 사멸하며 고통을 겪는 희귀 난치 질환이다.

기존 루게릭병은 2~3개월의 수명연장 효과가 있는 ‘리루졸’이 유일한 치료제였지만, 신체기능 저하 속도를 70% 이상 늦출 수 있는 ‘뉴로나타-알’의 개발에 따라 루게릭병 환자들에겐 또 다른 희망이 생겨났다.

김경숙 대표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환자를 직접 치료하기보다는 의학 기술을 연구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 기초연구원에서 연구를 했다”며 “임상팀과 줄기세포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하고 연구를 하다가 루게릭병 치료에 사용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논의한 것이 이번 치료제 개발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논의에서 시작한 코아스템의 설립 연도는 2003년. 올해 본격적으로 치료제가 출시되기까지 10년이 넘는 기간이 지났다는 것을 고려하면, 개발 과정이 절대 순탄치 않았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10평이 채 되지 않는 사무실에서 시작한 코아스템은 줄줄이 연구과제 선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 과정에서 초기 자금을 모아 창업을 했던 몇몇 인원은는 다른 회사를 차려 나가거나 학교로 돌아가고 김경숙 대표만이 회사에 남았다. 하지만, 바이오산업을 육성하려고 하던 충청북도에서 극적으로 투자를 받은 코아스템은 연구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김 대표는 “초기에 루게릭병 치료제를 만든다고 했을 때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고, 연구과제 선정에서 다 떨어졌었다”며 “충북에서 유일하게 지원을 해주면서 응급임상과 연구자 임상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극적으로 지원을 받아 연구는 이어갔지만, 코아스템의 위기가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정부에서 나오는 연구 지원금으로만 운영해 나가다보니 직원들에게 줄 임금이 부족한 경우도 있었고,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김경숙 대표 자신은 외부 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서 근무하는 등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도 했다.

또한 원료에 대한 납기일을 늦추고 직원들의 월급을 주기도 하고, 김 대표가 개인적으로 대출을 받아 임금을 지급하는 등 자신이 정한 기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했다.

김경숙 대표는 “사업을 하면서 제일 절박했을 때가 자금이 부족했을 때였다”며 “직원들에게 월급은 생계를 유지하는 돈인데 미룰 순 없고 자금은 없어 마음이 타들어갈 때가 잦았고, 그럴 때면 정말 왜 이 짓을 하고 있어야 하나 고민도 됐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에도 김 대표를 지지해준 건 직원들이었다. 회사 자금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한 직원은 자신의 적금을 해지해 운영에 사용하라고 내놓기도 했고, 3~4시까지 밤새워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역경의 시절을 거쳐 루게릭병 줄기세포 치료제 ‘뉴로나타-알’이 탄생했고, 코아스템은 752대 1이라는 뜨거운 공모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코스닥 시장에 데뷔했다.

후배 연구자 및 창업자들에게 조언 한 마디를 구하자 김 대표는 ‘안정성 높은 치료제’를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숙 대표는 “약은 안정성과 유효성을 꼭 평가하면서 가게 되는데, 유효성보다는 안정성을 염두에 두고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며 “약표가 떨어지면 한 번 먹을 거 두 번 먹고 세 번 먹으면 되지만, 안정성이 문제가 되면 작은 회사는 단칼에 시장에서 도태된다”고 말했다.

루게릭병 치료제를 개발한 코아스템은 이제 또 다른 희귀질환의 치료를 위해 뛰어들 계획이다. 김 대표는 “우리가 배운 지식과 기술들을 이왕이면 어렵게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데 사용하는 연구공동체가 되는 것이 코아스템의 비전”이라며 “이제 시작이고, 부지런히 가다 보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의사였다가 사업가로 변신했는데,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

△집에서 내가 연구를 하는 것은 찬성했지만, 사업을 하는 건 크게 걱정하고 말렸다. 코아스템이 단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회사였으면 집에서 계속 말렸을 테지만, 연구를 통해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설득해 사업에 나설 수 있었다. 사실 투자자들의 우려가 있는 발언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개발이 의미가 있고 수익은 한참 뒤의 얘기다. 사업적인 일은 부사장 등 다른 파트너와 업무가 나눠져 있다.

-약을 개발할 때까지 10년 이상이 걸렸다.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갈등이 있었을 것 같은데.

△직원들에게 감사한 게 “월급 더 주세요” 하는 요청을 받은 적이 없었다. 사실 초창기엔 나도 내 월급을 가져가지 못해 따로 병원에 나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래도 가정생활이 불안하면 연구에 집중할 수 없다고 판단해 직원들의 월급을 주지 않은 적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대출을 받아 운영을 하기도 했는데, 그 사정을 아는 팀장 하나는 적금을 깨서 주기도 했다. 그 과정을 겪으니 더욱 이걸(코아스템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개발 기간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지금은 오피스텔 세 곳을 쓰고 회의실도 있지만, 처음엔 한 곳밖에 없었다. 그나마 실험 시설과 연구자 임상 시설이 다 차지하고 있으니,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10명이 다닥다닥 모여 일을 했다. 지금은 용인에 공장까지 있고, 한양대학교에 양산용과 임상시험용 연구개발까지 진행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모두가 고생해 회사가 커가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루게릭병도 희귀질환이고, 다음 연구과제도 대부분 희귀질병이다. 왜 굳이 희귀질환 치료제인가.

△줄기세포 치료제의 상업적 측면을 봤다. 다른 치료제가 없는 질병이고, 줄기세포가 그 질병에 어느정도 작용을 할 것이라고 하는 가설이 있으면 우리는 바로 연구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따져보니 대부분 난치성이고 희귀질환인 게 많았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가 다른 질병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고 보면 그것이 벤처기업으로서는 최적의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뉴로나타-알’의 적응증 확대를 연구하고 있다.

-줄기세포 치료 분야, 어떻게 해야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업체가 많아져야 산업 전체가 살아난다. 관련 업체가 많이 나오는 것이 경쟁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연구가 나와야 우리의 연구도 더 촉진되는 것 같다. 희귀질환만 해도 8000개인데, 그거 우리가 다 못한다.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업체가 더 많아져야 한다.

-여성 CEO로서 어려운 점은 없나.

△저는 골프도 못 치고, 술자리 등 대관 업무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문민정부 오면서 그런 것 없어도 서류로 증명하는 문화가 정착된 것 같고, 그래서 코아스템도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대신 좀 빡빡할 수 있지만, 투명했기에 기술성 평가를 받고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김경숙 대표는

△1965년생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한양대 의학 박사 취득 △한양대 병원 전공의 △양평길병원 임상병리과장 △한양대 의생명과학연구소 연구부교수 △선한이웃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