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종화 기자
2023.11.18 11:00:00
'경제 실정' 좌파정권에 환멸한 젊은층 지지에 돌풍
"우리나라 돈은 똥만 못해" 아르헨 경제 달러化 공약
'울버린' 헤어스타일로 기성 정치인과 차별화
1차 투표선 장년층 결집에 2위로…우파 연합으로 역전 모색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대선 1차 투표 결과가 공개됐다. 예상을 뒤엎고 현 여당(조국을 위한 연합)의 세르히오 마사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달리던 자유전진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는 2위로 밀렸다. 1차 투표에서 누구도 당선 확정에 필요한 45% 득표율을 얻지 못하면서 아르헨티나 대선은 19일 결선 투표에서 승부가 가려지게 됐다.
밀레이의 지지자 마우로 살바토레(23)는 “우리에겐 분명 가능성이 있다”며 “쉽지 않을 것이지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지치고 정말 변화를 원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AP뉴스에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극우 경제학자 정도로 여겨졌던 밀레이가 대권을 두고 각축을 벌이는 데는 살바토레와 같은 청년층 지지세 덕이 컸다. 이달 아틀라스인텔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밀레이는 16~24세 유권자 사이에서 56% 지지율을 얻어 34%를 얻은 마사를 멀찍이 앞섰다. 특히 20대 남성 가운데선 밀레이의 지지율이 압도적이다.
아르헨티나 청년들은 수십년 동안 아르헨티나 정치를 양분해 온 페론주의·키르치네르주의(좌파 포퓰리즘)과 반(反)페론주의 구도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특히 지난 20년 중 16년을 집권하면서 국가부도 위기와 연간 100%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페론주의에 대한 분노가 크다. 이번에 밀레이와 결전을 치르게 된 마사가 페론주의 세력의 대표 주자다.
대학생 파쿤도 사스트레는 “밀레이는 다른 후보와 달리 매우 정직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있고 무엇을 할 건지 명확한 모범을 갖고 보여준다”고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에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좌파 사회운동가 후안 그라부아는 “그들(밀레이의 지지층)은 밀레이가 이긴다고 모든 게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며 “그들은 모든 걸 불태우고 새로 시작하고 싶어 한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말했다.밀레이도 자신에 대한 기대감을 알고 있다. 자신을 기성 정치인과 차별화하려고 시도하는 이유다. 헤어스타일만 봐도 이런 의도를 알 수 있다. 밀레이는 긴 구레나룻에 더벅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단정하게 잘 정리된 다른 정치인과는 다르다. 밀레이의 스타일리스트 릴리아 르모인은 영화 엑스맨의 주인공 울버린을 본따 ‘안티히어로’(전형적인 영웅상에서 벗어난, 불량스런 영웅) 이미지를 연출하려 했다고 가디언에 설명했다.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에서 라틴아메리카를 연구하는 벤저민 게단은 “밀레이의 지저분하고 덥수룩한 헤어스타일은 다분히 의도적이다”며 “기성 정당과 정치 엘리트, 전통적 정치인 헤어스타일에 대한 거부가 밀레이의 정치 브랜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WSJ은 밀레이처럼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아웃사이더 이미지를 연출한 예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를 들었다.
머리모양만큼이나 언행도 파격적이다. 중앙은행을 없애고 달러를 공식통화로 삼겠다는 게 밀레이의 대표 공약이다. 달러를 공식통화를 삼으면 지금처럼 중앙은행이 페소화를 남발,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게 밀레이 주장이다. 그는 자국 통화를 향해 “페소는 아르헨티나 정치인이 찍어내기 때문에 똥만도 못하다. 그 쓰레기 조각은 퇴비로도 못 쓴다”고까지 말했다. 이런 발언이 알려지자 페소화 가치는 하루만에 10% 폭락했다. 반대파에선 아르헨티나엔 달러를 공식통화를 삼을 만큼 달러 보유량이 부족할 뿐더러 ‘최종 대부자’(발권력을 동원해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로서 중앙은행이 없으면 경제위기 상황에서 통화 주권을 발휘할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다른 공약도 파격적이다. 정부 지출과 각종 보조금을 삭감하겠다며 전기톱을 휘두르는 모습은 밀레이의 또 다른 상징이 됐다. 리버테리언(자유지상주의자)을 자처하는 그는 마약과 장기 매매, 총기 소유를 허용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아웃사이더 이미지와 달리 밀레이가 살아온 길만 보면 오히려 엘리트에 가깝다. 버스 기사에서 버스회사 사장이 된 아버지 노베르토 밀레이는 금융·부동산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부를 일궜다.
축구 골키퍼를 꿈꾸던 밀레이는 1980년대 아르헨티나에 금융위기가 닥치자 경제학으로 진로를 틀었다. 당시 밀레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을 올리는 아르헨티나 슈퍼마켓을 보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적개심을 품기 시작했다. 경제학도로서 밀레이는 처음엔 전통적인 케인스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무정부 자본주의자’ 머리 로스바드의 글을 접하면서 리버테리언으로 전향했다. 이후 케인스 경제학으론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혼란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밀레이는 1990년대 카를로스 메넴 당시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참여하며 경제학자로서 이력을 쌓기 시작했다. 메넴 정부는 달러·페소 환율을 1대 1로 고정하는 사실상 아르헨티나 경제의 달러화(化)를 시도했다. 처음엔 인플레이션이 잡히면서 경제가 안정화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성공을 목격한 경험이 밀레이에게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다만 메넴 정부의 달러화 정책은 이후 강달러에 페소 가치까지 덩달아 높아지고 수출이 급감하면서 결국 또 다른 경제 위기를 불러오는 것으로 끝났다.
이후 밀레이는 HSBC와 아르헨티나 재벌기업 코포라시온아메리카에서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특히 코포라시온아메리카가 소유한 방송에 자주 출연하며 유명해졌다. 그는 토크쇼에서 중앙은행 모양 피나타(사탕이 담긴 인형)을 몽둥이로 내려치거나 자기 성생활을 얘기하는 등 기행도 마다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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