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엘, 청국장으로 전범기업 100년 기술 제쳐...1조 시장 석권 시간문제

by김지완 기자
2023.01.04 12:40:08

비엘, 지난달 23일 FDA에 폴리감마글루탐산 NDI 등록 신청
안동 청국장에서 추출한 균주로 일본 낫또 유래 균주 압도
염증 인자는 불활성화시키면서 면역 기능 활성화
"3월경 등록 승인 예상...원재료·완제품 투트랙 공략"

[이데일리 김지완 기자] ‘바실러스 서브틸러스’. 우리나라에선 고초균으로 불린다. 1997년 11월 20일 네이처(Nature)에 바실러스 서브틸러스 유전자 청사진이 공개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네이처에 바실러스 서브틸러스 유전자 청사진이 실린 이유는 인류가 발견한 가장 우수한 유익균이기 때문이다. 바실러스 서브틸러스는 면역글로불린(IgM·IgG·IgA)을 활성화해 나쁜 세균·바이러스 등을 막아낸다.

이도영 비엘 연구개발본부장(상무, 이학박사)이 자사 폴리감마글루탐산에 대해 설명 중이다. (사진=김지완 기자)


비엘(142760)은 세계 1위 기술력을 앞세워 글로벌 1조원 규모의 폴리감마글루탐산 시장을 정조준했다. 폴리감마글루탐산은 바실러스 서브틸러스균이 생산한 물질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비엘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각)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폴리감마글루탐산을 신규 건강기능식품원료(NDI)로 등록 신청했다. NDI(New Dietary Ingredients)는 새로운 건강식품 원료의 미국 내 사용을 허가하는 제도다. 심사기간은 통상 75일이 소요된다, 비엘은 오는 3월경이면 폴리감마글루탐산의 FDA NDI 등록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관측했다.

바실러스 서브틸러스균은 생명력이 강력해 150도 이상 가열해도 죽지 않는다. 또, 여타 미생물과 달리 대장까지 도달하는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바실러스 서브틸러스는 주로 된장, 청국장, 낫또 등에서 많이 발견된다. 된장국을 먹으면 우리 속이 편해지고 배변이 잘되는 것이 모두 바실러스 서브틸러스 활동 덕분이다.

일본은 일찍이 바실러스 서브틸러스에 주목하고 이를 연구해왔다. 전범기업인 아지노모토는 ‘폴리감마글루탐산’(γ-PGA)으로 건기식을 만들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판매 중이다. 아지노모토는 1868년에 설립돼 세계 29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특히, 폴리감마글루탐산이 속한 아미노산 분야에선 세계 1위 기술력을 자랑한다. 아지노모토의 연간 매출액은 1조엔(10조원)에 이른다.

이도영 비엘 연구개발본부장(상무, 이학박사)은 “연구자 입장에선 폴리감마글루탐산은 신기한 물질”이라며 “인체 면역세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선 체내 염증이 증가하거나 염증 인자 자극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 몸에 염증이 생기면 NK세포, T세포, B세포, 수지상세포, 대식세포 등의 면역세포 활동이 강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며 “하지만 폴리감마글루탐산은 인체 염증 인자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면역 기능을 강화시킨다”고 부연했다.

놀라운 건 비엘이 이미 20년 전부터 아지노모토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 본부장은 “아지노모토가 낫또에서 추출한 폴리감마글루탐산 분자량이 70만달튼”라면서 “우리가 청국장에서 추출한 폴리감마글루탐산 분자량은 200만달튼”이라고 비교했다. 1달튼은 수소원자 1개의 질량을 의미한다.

비엘은 초고분자량 폴리감마글루탐산을 찾기 위해 전국 수백 종의 청국장을 수집했다. 비엘의 이런 노력 끝에 경북 안동에서 고분자량의 폴리감마글루탐산 생산균주를 발견했다.

비엘이 발견한 생산 균주는 지금까지 발견한 폴리감마글루탐산 가운데 가장 생산성이 뛰어났다. 분자량도 알려진 미생물 생산 폴리감마글루탄산 중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학계에선 이를 두고 기존 ‘바실러스 서브틸러스’와 구분해 ‘바실러스 서브틸러스, 청국장’(Bacillus subtilis, chungkookjang)이란 학명을 붙였다.

단순히 분자량이 많다고 해서 면역기능이 강화되는 건 아니냐고 반문하자, 이 본부장은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으로 돌연변이된 세포를 제거할 땐 인터페론 감마가 직접 작용한다”면서 “실험결과, 폴리감마글루탐산 분자량 200만달튼에서 인터페론 감마가 가장 활발하게 작용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분자량 200만달튼의 폴리감마글루탐산을 주입한 생쥐에게서 면역세포 자극 물질인 인터페론 감마 레벨이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조군은 100만개, 무주입(PBS). (자료=비엘)


그는 이어 동물실험 결과지를 내밀었다. 이 자료에서 비엘의 분자량 200만달튼의 폴리감마글루탐산은 분자량 70만달튼의 폴리감마글루탐산 대비 약 3배 이상의 인테페론 감마가 활성화됐다. 인터페론 감마는 바이러스 복제를 직접적으로 억제하며, 면역세포를 자극한다. 인터페론 감마 자극으로 T세포, NK세포 같은 면역세포가 활성화돼 면역력이 증강되는 것이다.

비엘은 한발 더 나아가, 암세포를 주입한 마우스에 분자량 200만달튼의 폴리감마글루탐산을 주입했다. 그 결과 피부암과 자궁경부암 크기가 현저히 감소했다. 비엘의 폴리감마글루탐산에 암세포 파괴능까지 있단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비엘은 분자량 200만달튼의 폴리감마글루탐산을 주성분으로 한 건기식 ‘면역88 골드’를 국내에서 판매 중이다. 면역88 골드의 연 매출은 100억원에 이른다.

비엘의 폴리감마글루탐산 FDA NDI 제출은 미국 건기식 시장을 본격 공략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확하게는 우수한 제품력을 앞세워 아지노모토의 폴리감마글루탐산 시장 패권 도전으로 보는 것이 맞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세계 폴리감마글루탐산 시장 규모는 식품, 의약 등을 합쳐 8억1000만달러(1조원)로 추산된다.

비엘 관계자는 “폴리감마글루탐산에 대한 효능은 미국 건기식 업계에서도 널리 알려져 시장 침투가 용이할 전망”이라면서 “미국 로컬 건기식 업체에 폴리감마글루탐산 원료를 공급하는 것과 에이전시 계약을 통한 아마존·훌푸드·코스트코 등에 완제품을 공급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시장 침투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많은 업체와 계약 관련 논의가 진행돼, NDI 승인 직후 매출 발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