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채 뒷전]①코로나에 돈쓸 곳 넘치는데…지방채 대신 쌈짓돈만
by최정훈 기자
2020.09.09 06:13:00
코로나發 경제 위기에 지방채 빗장 풀었지만…지자체 ‘무관심’
지자체들 “계획은 있지만 실제 발행은 미지수”…조례에 막히기도
행안부 “지방채 발행하려는 지자체, 협의·승인 적극 지원”
“지방의회 승인 받아야 해 정치적 부담 느껴 발행 주저해”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지역 경제가 붕괴할 위기에 놓이자 2차 재난지원금 등 생계자금을 요구하는 주민의 목소리가 커지며 지방자치단체가 딜레마에 빠졌다. 재원 마련을 위해 지방채 발행이 필수지만 발행 자체가 주민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미 지방채 발행 제한을 완화해 지자체가 코로나19 경제 위기 대응에 활용하도록 했다. 지자체들은 고민에 빠지면서 실제로 코로나19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방채를 발행한 곳은 서울시 외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이데일리 본드웹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올해 전국 지자체의 지방채 발행규모는 약 7조 8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이달까지 발행된 규모는 모집공채만 3조 51억원이다. 서울이 1조 33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대구광역시 1조 1300억원 △부산광역시 4061억원 △광주광역시 850억원 순이었다. 특히 이 중 재난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발행된 지방채는 서울시가 발행한 1500억원이 전부다.
현행 지방재정법상 지자체는 전전연도 예산액의 10% 범위 내에서 행안부의 동의 없이 지방채를 발행할 수 있다. 2018년 전국 지방채 관련 세입 예산인 210조원 중 21조원까지 행안부 동의 없이 발행할 수 있는 것. 다만 경상성(일회성) 지출이 아닌 투자성 지출에 한해서 발행할 수 있다. 투자성 지출이란 토목, 건설, 증축 등 인프라 조성과 관련된 사업 비용을 의미한다. 또 재해예방·복구사업이나 천재지변으로 발생한 세입 결함을 보전할 때도 지방채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지방채를 활용해 대응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는 발행 제한을 완화했다. 행안부는 풍수해 등 재난 상황에 활용하는 재난관리기금 조성에 지방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재난관리기금은 재난지원금 등 현금성 복지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즉, 지방채를 활용해 현금성 복지사업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여기에 지난 4월 지방재정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지자체 장이 지방채 발행 한도액을 초과해 발행할 때 행안부 장관의 승인 없이 자율적으로 발행할 수도 있어 지방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실제 재난관리기금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방채를 발행한 지자체는 서울시 말고는 없는 상황이다. 지방채를 실제 발행한 대구, 부산, 광주는 모두 SOC사업과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비하기 위한 토지 매입 비용으로 발행했다. 이들 지자체는 모두 재난기금 조성을 위한 지방채 발행 계획은 가지고 있지만 실제 발행할지는 미지수라고 입을 모았다.
부산시 관계자는 “지금까지 발행한 지방채는 SOC사업인 도로건설이나 지하철 관련 등으로 지방채를 발행했다”며 “재난관리기금 조성으로 지방채를 발행 계획은 가지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발행할지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중앙정부서 제한을 완화했어도 부산의 경우 기금 조성 목적으로 지방채를 발행하려면 조례를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대구시 관계자도 “대구가 발행한 1조 1300억원은 낮은 이율을 활용하기 위해 차환하기 위한 목적과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 등 목적”이라며 “재난관리기금 조성 목적 발행 계획은 잡혀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실제 발행 계획은 아직 없는데 이는 미리 발행해봤자 이자만 나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광주광역시 또한 기금 조성 목적으로 발행 계획은 가지고 있지만 실제 발행하진 않았다.
지자체가 지방채 발행을 꺼리는 건 단순히 재정건전성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지자체들의 채무비율이 낮아지고 있어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곤 지방채 발행을 검토할 만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행안부도 지자체의 재정컨설팅에 나서며 지방채 발행에 대한 협의가 필요한 땐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코로나19와 수해 상황이 겹쳐 지방채를 한도를 넘어 발행하겠다고 지자체 장이 판단하면 최대한 빨리 협의해줄 방침”이라며 “전전연도 예산의 10%인 지방채 한도를 넘어 발행해야 해 승인이 필요할 때도 재난 상황이라면 사유를 고려해 신속하게 협의 또는 승인 절차를 진행할 계획”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자체가 여전히 발행을 꺼리는 원인으로는 정치적 부담이 꼽힌다. 지자체가 지방채를 발행하면 지방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한다는 비판에 휩싸이기 때문. 지방의회 승인을 받는 과정서 상대편 정치 세력에 비판을 받고 선거에서는 주민의 부담을 키웠다는 딱지도 붙는 다는 것. 이에 지방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요건에도 실제 발행은 꺼리는 상황을 맞이했다는 지적이다.
권경환 경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각 지자체 별로 사정이 다 다르긴 하지만 재난지원금과 같은 현금성 복지사업에 지방채를 발행하기는 지자체장 입장에서 부담될 수밖에 없다”며 “지방채 발행 현황이나 재정건전성 등도 중요하지만 지자체장의 의지도 중요해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