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애 "실패하면 어떤가요?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되죠"
by안혜신 기자
2014.11.10 08:29:59
손지애 美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방문교수 인터뷰
언론인·행정가·교육자 등 화려한 경력 소유자
일과 가정, 선택의 개념 아냐
韓 여성 능력 뛰어난데..두려움 많아 안타까워
| [이데일리 한대욱 기자] 손지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방문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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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CNN서울지국장, 주요20개국(G20)정상회의 준비위원회 대변인, 아리랑국제방송 사장….’
한 가지만으로도 버거울 듯한 경력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심지어 이 모든 경력을 50세가 채 되기 전에 두루 경험했다. 그렇다면 이 인물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생각은? 아마도 ‘그 여자 보통 독한 게 아니겠네’ 일 것이다.
이런 편견을 모두 뛰어넘는 여성이 있다. 바로 손지애(51)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방문교수다.
지난달 30일 이데일리·이데일리 TV 주최 제3회 세계여성경제포럼(WWEF2014) 참석차 한국에 들어온 손지애 교수를 서울 서초구 새빛섬에서 만났다.
직접 만난 손 교수는 일반적으로 성공한 여자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인 ‘독함’이라는 이미지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히려 소탈함과 친근함이 느껴졌고, 모든 질문에 유쾌하고 쾌활하게 답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세 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는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의 어머니가 되기도 했다.
손 교수는 지난 8월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내고 있다. 내년 봄 학기부터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미디어를 활용한 문화 외교’를 강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강의 준비에 정신이 없지만, 모처럼 세 딸을 데리고 ‘엄마’ 역할을 하는 보람에 푹 빠져있다.
“대학교 4학년에 취직을 했고 30년을 직장인으로 살았는데 3개월 전부터 생활의 90%를 엄마로 지내고 있어요. 아주 새로운 경험입니다. 집에 있는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를 새삼 느끼고 있어요.”
손 교수는 26세에 결혼해 27세에 첫 아이를 낳았다. 첫 아이를 출산한 지 딱 한 달 만에 직장에 복귀했다. 그리고 20여 년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숨 가쁘게 살았다. 그런 손 교수에게는 직장인과 엄마의 역할 중 무엇이 더 어려운지 궁금했다.
“저에게는 엄마가 더 어렵네요. 일은 열심히 한다면 어느 정도 결론을 예상할 수 있지만, 육아는 마음처럼 되지 않아요. 아이들이 각자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손 교수는 우리나라 여성 리더의 대표격인 인물이다. 그렇다 보니 수도 없이 사람들 앞에 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여성들과 만나는 일은 언제든 항상 기분 좋은 떨림을 가져온단다.
“항상 여성들과의 만남은 설레요. 우리나라 여성들은 다이나믹하고 하고자 하는 일도 많기 때문이죠. 그런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기대감은 저를 즐겁게 만듭니다.”
우리나라 30대 여성은 대부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경력상으로 한창 일해야 할 나이지만, 결혼과 출산이라는 현실 앞에서 고민해야 한다.
손 교수는 대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치열한 직장생활을 30년이 넘게 해온 인물이다. 특히 손 교수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기자라는 직업은 그 어느 직업보다도 남성적인 문화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여기자로 살아남고, 동시에 가정을 꾸리면서도 지국장은 물론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비결이 자연스럽게 궁금했다. 손 교수는 일과 가정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한 것일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밖이었다.
“왜 꼭 선택을 해야 하나요? 그런 질문이 가장 당황스럽고 가슴이 아파요. 30년 전 제가 처음 사회로 나왔을 때도 일이냐 가정이냐를 선택해야 했어요. 3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여전히 선택이라는 단어를 쓰죠. 여성은 일과 가정, 두 가지 행복을 모두 누릴 권리가 있어요.”
손 교수는 여성들이 좀 더 바깥세상에, 타인에 무심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이든 가정이든, 혹은 둘 다가 되든 본인이 더 원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나갈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일과 가정 중 하나만을 꼭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사회에서 ‘일하기도 어렵고 애 키우는 것도 어렵다’는 압박을 자꾸 주니 여성들이 해보기도 전에 둘 중 하나만을 선택을 해야한다고 지레 겁을 먹는거죠.
일과 가정 중 꼭 하나만을 선택을 할 필요는 없어요. 특히 타의에 의해서 결정할 필요는 더욱 없죠. 더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하면 됩니다.”
손 교수는 어느 나라보다도 다재다능한 한국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성차별을 경험하며 힘들어하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손 교수 역시 이러한 차별을 무수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저도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하고도 7년간을 ‘손 기자’가 아닌 ‘미스 손’이라는 호칭으로 불렸어요. 커피도 엄청 탔죠.”
똑같이 일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남자 기자가 아닌 자신에게 너무도 당연하게 ‘커피를 타오라’고 시키는, 그리고 그것이 차별이라는 인식조차 희미했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손 교수는 이를 악물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도 먼저 하겠노라고 손을 들었다. 그렇게 가져온 일은 밤을 새우더라도 책임감 있고 완벽하게 처리해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남성들도 손 교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차별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실력’이라는 스스로 생각을 입증한 것이다.
그렇기에 손 교수는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적극성으로 봤다. 여성은 주어진 일을 충실하고 깔끔하게 해낸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이상의 일을 넘보는 적극성이 다소 부족한 약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여성은 자신이 맡은 일은 굉장히 잘 해요. 하지만, 그 일이 끝나고 나면 돌아서 버리죠. 주어진 일 이상을 넘보는 일종의 욕심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자신이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가장 기본이고, 그 이상으로 조금 더 크게 봤으면 좋겠어요.”
언론인과 행정인, 최고경영자, 그리고 교육인까지 화려한 경력이 손 교수를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이 없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스스로 실패를 무서워하지 않았고, 과감하게 도전했고, 그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방식은 손 교수가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해주고싶은 조언과 일맥상통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충분히 능력이 좋고 뛰어납니다.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같이 물어보면 부족하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죠. 무엇인가를 도전하고 추진하는데 있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패 좀 하면 어때요? 무슨 일이든 본인을 믿고,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그러다가 만약이라도 넘어진다면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