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7.07.22 15:23:03
[조선일보 제공] 지난 7월 10일 중국에서 쥐 20억마리가 떼를 지어 출몰해 정부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외신이 전파를 탔다.
중국 후난성(湖南省)의 둥팅(洞庭)호 주변 22개 마을이 폭우가 쏟아지고 난 뒤 20억마리에 달하는 쥐떼의 습격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6월 말 폭우로 양쯔강이 범람하여 둥팅호의 수위가 올라갔고, 서식지가 물에 잠긴 쥐떼가 한꺼번에 호수 주변 마을을 향해 살 곳을 찾아 나온 것이다.
주민들은 쥐떼를 몰아내기 위해 벽을 쌓고 도랑을 파고, 참호를 설치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쥐가 수천, 수만 마리씩 무리지어 다니면서 민가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주민의 건강이 위협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쥐떼의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쓰촨성(四川省)에서는 바퀴벌레떼가 나타나 다시 한 번 대륙을 놀라게 했다. 쓰촨성의 한 공무원 기숙사에서 살충제로 죽은 바퀴벌레의 무게만 100㎏ 이상이었다. 중국 대륙에 쥐떼와 바퀴벌레떼가 잇따라 나타난 것은 집중호우와 높은 습도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곤충과 동물의 집단 출현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각종 개발로 자연이 파괴되면서 서식 환경이 바뀐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표적인 곤충은 메뚜기다. 펄 벅의 ‘대지’에는 메뚜기떼의 공포스러운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남쪽 하늘에 검은 구름처럼 지평선 위에 걸려 있더니 이윽고 부채꼴로 퍼지면서 하늘을 뒤덮었다. 세상이 온통 밤처럼 캄캄해지고 메뚜기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그들이 내려앉은 곳은 잎사귀는 볼 수 없고, 모두 졸지에 황무지로 돌변했다. 아낙네들은 향을 사다가 지신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렸고, 남정네들은 밭에 불을 지르고 고랑을 파며 장대를 휘두르며 메뚜기떼와 싸웠다.’
이러한 메뚜기떼의 습격은 책이나 영화에만 나오는 픽션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과 아프리카의 이집트·중남미의 멕시코, 페루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수십억 마리의 메뚜기떼 공습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이 메뚜기떼의 습격을 받는다는 외신의 보도는 종종 있었으나, 올해는 작년에 비해 메뚜기떼가 해외에서 일찍 날아와서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2000년 중국 신장(新疆)성에서는 닭과 식성이 좋은 오리 수만 마리를 풀어 메뚜기 소탕에 나섰지만 수적으로 역부족이었다. 2004년에는 이집트·알제리·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등에 아프리카에서 이동해온 메뚜기떼가 출현, 천문학적인 피해를 일으켰다. 이들은 아프리카 메뚜기로 기후조건이 맞으면 개체수가 급증하여 계절풍을 타고 중동지방은 물론 멀리 인도까지 이동한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메뚜기떼의 습격에 일방적으로 당할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이슬람 최고기구인 알 아즈하르가 메뚜기를 잡아먹는 것이 종교적으로 인정된다는 이슬람법적 해석을 발표하여 메뚜기를 식용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세네갈의 한 라디오방송국에서는 메뚜기 50㎏을 잡아오면 쌀 50㎏을 공짜로 주겠다는 광고를 내기까지 했을 정도다.
이동성 메뚜기는 기후조건이 맞으면 평소보다 많은 수의 알을 낳아서 개체수가 증가한다. 또한 알은 휴면능력이 있어서 부화조건이 맞지 않으면 그 수가 누적되었다가 적당한 기온과 습도가 되면 모두 부화하여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곤충학자들은 말한다.
과거 우리나라도 황(蝗), 즉 메뚜기의 피해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2대 왕인 남해차차웅 15년(AD 18년)에 ‘가을 7월에 누리(메뚜기)의 피해가 있어 백성들이 굶주렸으므로 창고의 곡식을 풀어 그들을 진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만 고구려는 8번, 백제는 5번, 신라는 19번의 메뚜기 피해를 입었다고 기록해두었다. 대부분 가뭄과 함께 메뚜기 때문에 재난을 받고 나라에서 구휼을 했다는 내용이다.
2004년 여름. 미국 곳곳에서 괴상한 매미떼가 들끓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신시내티에 매미 50억마리 출현’ ‘워싱턴, 17년 만에 매미떼에 피습’. 매미들은 점점 더 좁은 장소로 모여들었다. 반경 수십 미터 거리에서 10만마리 이상의 매미가 고막을 찢을 듯 울어댔다. 매미떼에 수액을 빨린 나무들은 말라버렸고, 조사에 나선 과학자는 매미 소리에 귀가 상했다.
바다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지난 6월 말 여름휴양지로 유명한 지중해 바닷가에 해파리가 떼를 지어 나타나서 비상이 걸렸다. 해파리떼는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그리스에 이르는 남유럽 바다를 뒤덮었다. 해파리는 해수면에서 햇빛을 차단, 바닷물을 오염시키고 해수욕객을 독침으로 쏘아대 각국 정부는 힘을 합쳐 해파리 퇴치에 나서고 있다. 유럽 언론은 북유럽의 대규모 참치잡이로 해파리의 천적이 줄어들자 개체수가 급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새들의 습격도 심상치 않다. 2005년 1월 미국 뉴욕주의 오번이라는 소도시에 6만4000여마리의 까마귀떼가 나타났다. 도시 부근에서 겨울을 보내던 까마귀떼가 과거에 비해 개체수가 많아지고 덩치도 커져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새가 사람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오는 히치콕 감독의 공포영화 ‘새’를 연상케 한다. 시 당국은 까마귀떼를 소탕하기 위해 전등과 레이저를 비추고 마이크로 소음을 내고 폭죽을 터뜨리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이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 세계적으로 곤충과 동물의 습격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학부장은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고 지구온난화가 맞물리면 이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생태계 균형이 깨져서 생기는 이런 현상에 대한 지구적 차원의 연구와 예방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곤충의 습격’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2006년에 이어 올해 5월 말에도 충북 영동 지역의 과수 농가에서 갈색여치떼가 기승을 부렸다. 갈색여치는 귀뚜라미와 비슷한 모양으로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메뚜기목 여치과 곤충이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충주 지방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기 시작하더니 영동 지방에서 급격히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사과와 복숭아, 포도를 재배하는 과수원에 피해를 주었다. 지난해에는 영동군 영동읍 일부 지역에 보이던 갈색여치의 습격이 올해는 영동군·보은군·청원군·옥천군으로까지 확대되면서 피해가 확산됐다. 갈색여치들이 사과나 복숭아 열매를 갉아먹거나 복숭아를 씌워 놓은 봉지를 뜯어버리는 바람에 농민의 걱정이 쌓여 가고 있다.
영동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갈색여치떼가 급격히 늘어나 농가에 피해를 주는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갈색여치의 습성이나 생태를 연구한 자료가 없고, 해충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생물학과 김태우 박사는 “갈색여치는 우리나라 중북부지방에 서식하는 곤충이다. 영동군에서는 곤충을 잡아먹는 까치와 같은 천적을 많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갈색여치의 알은 휴면능력이 있는데, 올해 낳은 알이 꼭 내년에 부화하는 것이 아니라 2~3년간 있다가 부화조건이 맞으면 부화를 한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알의 수가 누적되기도 하는데 따뜻한 봄에 다수가 부화해서 개체수가 급증했을 수 있다는 추측도 있다. 농업생태연구소의 방혜선 박사는 “겨울 기온이 높아지면서 갈색여치의 알이 겨울을 보내면서 부화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다. 충북 영동 지방에는 활엽수가 많아서 갈색여치가 살아남을 환경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갈색여치는 알에서 부화해서 낙엽을 먼저 먹고, 자라나서는 나무를 타고 위로 가면서 잎을 갉아먹고 자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화호 인근 100여 농가는 흑다리긴노린재의 습격으로 1억원 가량의 피해를 봤다. 시화호 환경연구소의 김호준 팀장은 “기후보다는 간척지 개발로 인한 시화호의 생태계가 변화하면서 흑다리긴노린재가 급증했다”면서 “김포매립장 인근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화성시와 수자원공사가 협력하여 항공방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척사업을 하면서 갯벌의 염분이 빠져나갔고, 소금기가 없어진 간석지에 산조풀과 띠 같은 흑다리긴노린재가 좋아하는 식물이 자라나면서 개체수가 급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5월에는 띠에서 1차 번식을 하고, 산조풀이 개화하는 6~7월에 2차 번식을 하여 8월 초 벼가 한창 자라나고 있을 때 벼이삭의 즙액을 빨아먹어 반점미로 만드는 피해를 일으킨다.
신항만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경남 진해시의 한 마을은 2002년 이후로 여름철이 되면 준설토 투기장에서 발생한 엄청난 수의 바다 해충 습격에 시달려오고 있다. 물가를 좋아하는 습성을 지닌 깔따구떼와 물가파리떼가 급증해 수천 마리씩 몰려서 동네를 날아다니는 바람에 마을 주민들의 불쾌감이 극에 달했다. 여름철 무더위에도 창문을 열지 못했으며, 피부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과 위생상의 문제로 마을 주민은 홍역을 치렀다. 준설토 투기장에 뻘층을 흡입해서 메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준설토는 모래나 흙이 아닌 어류와 어패류 등이 썩어서 생긴 유기물 성분으로 깔따구와 물가파리 유충들이 영양분을 공급 받고 서식하기 좋은 조건이다. 게다가 바닷가여서 물기도 많고, 더운 날씨가 해충이 활동하기에 좋은 조건이 마련됐다.
진해시 보건소 방역담당 관계자는 “바다 해충을 방제하기 위하여 준설토 투기장에 일반 약보다 효능이 강한 곤충성장억제제를 2005년에 2차례, 2006년에 4차례 살포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45일간 약효가 발생하는 방제약품을 살포해 어패류의 양식에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서울대 응용생물학과 이승환 교수는 “인위적으로 해충들이 살기 좋은 조건이 조성되어 이러한 피해가 일어났다. 깔따구와 물가파리는 자연적 조건에서는 분해자의 입장인데, 시간이 지나 짠물과 민물이 만나는 공간이 민물로 바뀌거나 완전히 매립되기 전에는 이와 같은 현상이 계속될 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