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의 문화재 읽기]유아의 머리 돌로 납작하게 만든 가야인…왜?

by김은비 기자
2020.09.07 06:00:00

가야의 특이한 풍습 ''편두''
4세기 특정 계층에서만 이뤄져
주술적·성형 목적으로 행해져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1976년 가야인들의 무덤이 대거 있는 경남 김해 예안리고분군 발굴 조사에서는 성과 연령이 판별 가능한 인골 210개체가 발견됐다. 특이한 점은 이 중 10개의 인골은 위아래로 머리가 길고 납작한 형태로, 인위적으로 머리를 변형시킨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지금껏 문헌 자료상으로만 전해지던 가야의 가장 특이한 풍습 ‘편두’에 대한 증거자료가 발견된 것이다. 편두는 뼈가 성장하는 단계인 유아기 때 돌, 천 등을 머리에 둘러 두개골을 인공적으로 변형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 3세기 중국의 진수(陳壽, 233~297)가 쓴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어린아이가 출생하면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려 하기 때문에 지금 진한 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는 기록이 있다. 문헌 자료상에는 문신과 편두, 발치 등 다양한 가야의 풍습이 전해졌다. 하지만 실증 자료의 부족으로 그간 가야의 풍습에 대해는 알려진 바가 많이 없었다.

국립김해박물관은 최근 ‘2019 가야학술제전 학술총서’를 발간했다. 책은 지난 2019년 박물관이 개최한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의 성과를 보완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문헌기록과 김해 예안리 유적 발굴 후 40년간 다뤄지지 못한 가야인의 ‘편두’ 풍습에 대해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를 했다.

편두는 누가, 왜 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편두 혹은 변형 두개는 태어나서 얼마 안되는 시점에서만 가능했다. 뼈가 자리를 잡기 저에 압박을 가해야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든 각 사회에서 특별히 선택된 사람에게 이루어졌던 행위로 보인다. 예안리 고분에서도 210개의 인골 중 5%에 해당하는 10개의 인골에서 편두의 흔적이 발견된 것도 이를 증명한다.



(사진=국립김해박물관)
예안리유적에서 편두 인골이 출토된 무덤의 출토품을 보면 목짧은 항아리, 화로 모양그릇 받침 등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일반민 중에서 하층 또는 약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편두를 했을 것으로 추론된다. 또 4세기에만 한정된 시기와 계층에서 행해진 것으로 봐 기존과 다른 출신이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선택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주술적 목적으로 행해진 무속인 또는 노예나 특수한 풍습을 가진 별다른 계통의 사람, 죽음을 무릅쓴 일종의 성형을 한 사람 등 특수한 신분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편두의 풍속은 사실 가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세계 각국에서 이뤄졌던 풍습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각지 편두의 분석 결과를 보면 생후 5∼7개월, 심지어 1개월도 안된 영아의 두개골에서도 머리를 감쌌던 붕대의 흔적이 확인됐다. 뼈가 자리를 잡기 전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1주일에서 3개월 정도 10∼20회 정도 반복했다고 한다. 예안리 고분의 인골 10개도 성별로 보면 남성이 2개체, 여성이 8개체(유아 1개체, 10대 1개체, 20∼30대 2개체, 40∼50대 4개체)이다.

아쉬운 점은 김해 예안리유적 편두 이외에는 현재까지 새로운 자료가 추가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왜 편두를 행했는지에 대해 객관성을 담보하긴 힘들다. 타 지역 출토 자료와 비교 검토를 통해서 가야인들의 편두 풍습에 대해 연구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김해 예안리 99호분 유골(사진=국립김해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