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으로 본 배우 셋…'미친 존재감' 백석광·박정복·윤정섭

by김미경 기자
2016.10.06 06:36:21

백석광…무용수 출신, 몸 움직임 좋아
배역·배우 시너지, 햄릿·사도세자에 딱
박정복…데뷔 1년 만에 5편 주연
굵고 낮은 목소리, 섬세한 연기
윤정섭…단역서 주역 승승장구
예술가 순수한 영혼으로 무대에 헌신

공연계에서 소신과 신념을 갖고 연기하는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서른 셋 동갑내기 배우 3인 백석광(왼쪽부터), 박정복, 윤정섭. 무대 위 늘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믿고 보는 배우들이다(사진=국립극단·프로스랩·연희단거리패).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한마디로 내 분신 같은 존재”(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연극을 대하는 태도가 좋다. 부단히 발전하는 모습도 존경스럽고”(소리꾼 이자람), “데뷔작 연극 ‘레드’에서 인상적인 연기로 단숨에 신예로 떠올랐다”(제작사 신시컴퍼니).

사심(私心)이 맞다. 챙겨본 작품 중 아직 후회한 작품이 하나도 없다. 진정성 있는 연기만큼이나 성품도 올곧다. 기자도 관객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배우들도 칭찬일색이다. 서른셋 동갑내기 배우 백석광·박정복·윤정섭 얘기다. 피와 땀으로 이룬 이들의 노력 앞에 ‘운’은 그저 양념일 뿐이다. 믿고 보는 3명의 배우가 요즘 나란히 무대에 나서고 있다.

백석광은 35년 전 유럽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희대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연극 ‘로베르토 쥬코’(16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연쇄살인마 쥬코 역을 맡아 광기와 분노를 표출하는 중이다. 박정복은 연극 ‘날 보러와요’(12월 11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2관) 20주년 기념무대에 올라 서울대 출신의 시인 지망생 김 형사로 열연 중이다. 윤정섭은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의 서울공연을 마치고 부산 등 지역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이들의 매력을 낱낱이 파헤쳐봤다.

연극 ‘로베르토 쥬코’에서 희대의 살인마를 연기하는 백석광(사진=국립극단).
“연기뿐 아니라 몸 움직임이 좋은 배우다.” 무용수 출신 백석광이 자주 듣는 말이다. 초등학생 때 무용을 시작한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2004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특출났다. 하지만 텍스트에 매료된 그는 무용원을 중퇴하고 같은 학교 연극원 연출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밀양연극제에 선 그를 본 연출가 이윤택이 ‘혜경궁 홍씨’(2014) 사도세자 역으로 발탁한 이후 존재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윤택에 따르면 백석광은 ‘당대의 전형성을 띨 수 있는 배우’다. 당대성이란 배역과 배우가 서로 연상작용을 일으켜 내는 시너지로, 백석광은 연산·사도세자·햄릿 같은 역할에 적절한 배우란다.

대사를 할 때마다 쏙 들어가는 보조개와 강아지 같은 큰 눈망울이 매력이다. 하지만 연기할 때 이 같은 외모는 광기와 이중성을 더욱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쥬코 역도 다르지 않다. 독백을 늘어놓는 장면이나 때론 어린아이 같은 몸짓으로 섬뜩한 다중인격의 쥬코를 그려낸다. 그는 “대학시절 작품을 읽었을 땐 인물이 가진 어둠과 강렬함에 매료됐는데 지금은 다층적이고 모순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며 “쥬코라는 바이러스가 한 사회의 인식틀을 마구 흔들어놓는다”고 말했다.

백석광은 지금까지의 여러 시도가 연극이란 목적지를 향해 달려오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센 역할을 주로 해왔던 만큼 다음에는 바보나 호색한처럼 삼류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2016 국립극단 시즌단원’이라 다양한 무대서 볼 수 없다는 점. 소리꾼 이자람과는 8년째 연인관계다.





연극 ‘날 보러와요’에서 서울대 출신의 앨리트이자 시인지망생 김형사를 연기하는 박정복(사진=프로스랩),
박정복은 지난해 초만 해도 거의 무명이었다. 2015년 연극 ‘레드’의 켄 역할로 데뷔한 이후 ‘올드위키드 송’ ‘헨리 4세’ 등 1년 만에 무려 다섯편의 주역을 꿰찼다.

고교 3학년 때부터 연극배우의 꿈을 키운 박정복은 한예종 연극원 연기과에 입학, 예술고등학교와 학원에 출강했다. 저예산 단편영화 20∼30편에 주인공으로, 또 드라마와 상업영화에서 단역을 맡으며 경제적으로는 안정됐지만 치열하지는 않았단다.

전환점은 2013년 말 공연한 뮤지컬 ‘고스트’였다. 당시 그를 눈여겨본 제작사 신시컴퍼니가 지난해 연극 ‘레드’에 출연제의를 해오면서 전투적으로 무대에 설 것을 다짐했다고 했다.

굵고 낮은 목소리서 묻어나는 진중하고 섬세한 연기가 강점이다. 농담이 오고가는 유쾌한 연기도 제법 어울린다. 게다가 노래도 수준급. 연극·뮤지컬을 넘나들며 주가를 높이고 있다. 최근엔 스타성을 입증받아 연예기획사 SM C&C에 둥지를 틀었다. 김 형사로 출연 중인 연극 ‘날 보러와요’에서는 시인 지망생으로 나와 앨리트 모습속 엉뚱한 매력을 선사한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서 화가 이중섭을 연기한 윤정섭(사진=연희단거리패).
자신을 숨기고 인물을 들여다볼 줄 아는 배우다. 무대 위 눈빛부터 다르다. 팔색조란 얘기다. 극 중 인물만 남고 무대 위 그는 없다. 그런 윤정섭도 학창시절에는 연기에 흥미를 갖지 못했단다. 연기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안양예고 연기과 3학년 때 스승 김철홍을 만나면서부터다.

용인대 연극과에 입학 후 바로 연희단거리패 대표이자 간판 배우인 김소희를 만나 우리극연구소에서 준비과정을 거쳤고 2007년 연희단거리패 15기 단원으로 입단했다. 2008년에 ‘세 자매’란 작품으로 데뷔신고식을 치른 뒤 같은 해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작인 ‘햄릿’에서 4대 햄릿으로 발탁됐다. 야구로 치면 2군에서 한국시리즈 선발투수를 맡은 격이다.

이때부터 ‘이윤택 키드’에서 극단 간판 배우로 성장해왔다. ‘리차드 2세’ ‘갈매기’ ‘아버지와 아들’ ‘길 떠나는 가족’ 등 굵직한 작품에서 주요 배역을 맡으며 연극계 기대주로 우뚝 섰다. 김소희 대표는 “무대에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배우”라고, 연출가 이윤택은 “겸손한 성품, 예술가의 순정한 영혼을 간직한 배우”라고 칭찬했다.
연극 ‘로베르토 쥬코’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연극 ‘길떠나는 가족’의 한 장면(사진=연희단거리패).
연극 ‘날 보러와요’의 한 장면(사진=프로스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