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키네토스코프] `내부자들` 그리고 `우물 안 개·돼지`
by김병준 기자
2016.07.07 08:00:00
[이데일리 e뉴스 김병준 기자] 이 글에는 영화의 내용과 관련된 직접적인 기술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스포일러에 민감한 사람은 서둘러 창을 닫길 바란다. 또한 정보 전달이 아닌 주관적 해석에 입각해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예술을 대하는 상대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 넓은 아량을 부탁한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이탈리아의 영화이론가 리치오토 카뉴도는 영화를 ‘제7의 예술’이자 기존 예술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영상,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적 요소들 가운데 내러티브를 이끄는 영화 속 핵심 장치는 무엇일까? 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에서 나쁜 영화는 나올 수 있지만, 나쁜 글에서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이같은 연유로 나는 감독이 쓴 영화 속 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사’에 집중해 영화를 감상하는 편이다. 앞으로 대사를 통해 영화를 톺아보면서 감독이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자.
오늘은 몰디브에 가서 모히토 한잔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내부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해 11월19일 개봉한 ‘내부자들’은 기록만 놓고 본다면 전무후무한 영화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내부자들’은 전국에서 707만2057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중 박스오피스 1위(전체 35위)다.
감독판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의 관객 수(208만3975명)까지 포함하면 ‘내부자들’은 900만명이 넘는 사람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청불 등급으로 해당 스코어를 만들었다는 것이 더 놀라운 점이다. 향후 몇 년 어쩌면 몇십 년 동안 어떤 청불 영화가 이 엄청난 흥행 성적을 깰 수 있을까.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끼’ ‘미생’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윤태호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내부자들’은 굉장히 불편한 영화다. 정계, 재계, 검·경, 언론 등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자들 사이의 정경유착을 신랄하게 고발한 ‘정의로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윤태호 작가와 우민호 감독은 대한민국의 어두운 현실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들은 130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모자란 나머지 무려 3시간짜리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을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안상구(이병헌)와 이강희(백윤식)의 첫 만남 등 추가적인 이야기가 50분가량 포함돼 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50여분의 추가 분량은 작가와 감독의 의도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내러티브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확장판의 처음과 마지막에 추가된 영상 속에 있다. 도입부 안상구의 인터뷰 장면과 엔딩 크레딧 직전 이강희의 전화 신이야말로 작가와 감독이 ‘내부자들’을 통해 관객에게 말하고 싶었던 영화의 핵심이다.
본편과는 달리 감독판은 기자와 안상구의 인터뷰로 영화를 시작한다. 선택의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안상구는 뜬금없이 잭 니콜슨 주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1974년작 ‘차이나타운’을 언급한다. “영화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라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재촉하는 기자에게 안상구는 “진실이 궁금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이처럼 안상구의 입을 빌린 작가와 감독은 관객들에게 ‘내부자들’이 현실 같은 영화이자 영화 같은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부자들’을 통해 마주하게 될 진실이 무엇인지에 궁금증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소재는 ‘정의 구현’이다. 하지만 이를 논하기에 앞서 현재 대한민국에 정의 같은 달달한 것이 남아 있는지 의문이다. 각종 부정부패와 함께 ‘헬조선’으로 불리고 있는 2016년 오늘, 영화 ‘내부자들’은 대한민국의 불편한 ‘현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니, 끝에 단어 3개만 좀 바꿔보자.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로.
장필우(이경영), 오회장(김홍파) 등 정·재계 거물을 비롯한 안상구, 우장훈(조승우), 이강희 등 영화 속 캐릭터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 걸맞은 권력자가 되기 위해 각종 악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은 누구일까? 나는 이강희 논설주간을 이 영화의 최고 권력자로 꼽고 싶다. 모든 사건의 뒤에는 항상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1839년 영국 작가 에드워드 리턴은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고 말했다. 영화 중반 우장훈과의 독대에서 이강희 역시 이같은 의미가 담긴 대사를 날린다. 그는 “같은 말이라도, 누구는 ‘어떠어떠하다고 보기가 힘든데’ 누구는 ‘어떠어떠하다고 매우 보여진다’는 겁니다”라면서 “말은 권력이고 힘이야. 어떤 미친놈이 깡패가 한 말을 믿겠나”라고 우장훈을 압박한다.
이어 검찰에서 풀려난 이강희는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끝에 단어 3개만 좀 바꿉시다.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로”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영화 속에서 그가 가진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속담처럼, 그는 서술어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이다. 이는 영화 속 허구가 아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신문방송학에서는 이를 ‘프레이밍’이라고 부른다. 캐나다 국적의 사회학자 고프만이 제창한 프레이밍은 미디어가 보도하는 뉴스가 특정한 프레임(틀)에 의거해 해석된 뒤 전달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컵에 남아 있는 절반의 물’을 대하는 가치 판단이 제각기 상대적이라는 점에서 출발한 이 이론은 여론이 대중의 시야를 제한한다는 증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내부자들’이 강조하고자 한 프레이밍은 장자의 ‘정저지와’와도 일맥상통한다. 장자는 그들이 사는 곳에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좁은 프레임 속에 갇혀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을 봐서는 안 된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우리는 ‘볼 수 있다’와 ‘매우 보여진다’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각국의 독립 언론, 비영리 단체 등을 대상으로 다양성, 독립성, 자가검열, 투명성 등 87개 항목에 걸친 설문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180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평가하고 순위를 발표한다. 올해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는 28.58점으로 70위에 이름이 올랐다.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에 대해 RSF는 “대한민국 정부는 매체와 매우 긴장감 있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언론의 비판을 참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양극화된 미디어에 간섭하는 등 언론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나라보다 순위가 더 낮은 강대국들도 있다. 하지만 옆집 ‘엄친아’들과의 비교에 앞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RSF가 평가한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는 2013년 50위, 2014년 57위, 2015년 60위로 매년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올해는 결국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 가장 순위가 높았던 2006년(31위)과 비교해 현재 국내 언론의 자유도 수준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불투명한 언론의 프레임 안에 갇혀버린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일 수 있다. 영화 속 이강희의 발언을 빌려 더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우물 안 개·돼지가 돼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특정 사건이나 이슈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겠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특정 프레임 안에 여러분을 강제로 초대할 생각은 없다. 다만 본인이 우물 안에서 프레임 속의 하늘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평해 보길 바란다.
안상구로 시작한 ‘내부자들’은 안상구, 우장훈, 이강희, 장필우, 오회장을 이야기한 뒤 결국 이강희로 막을 내린다. 영화의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엔딩에서 작가와 감독은 대체 왜 이강희를 선택했을까? 그리고 이강희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의 대사 속에 답이 있다. 영화만큼 잔혹한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은 마지막 대사를 살펴보자.
“여보세요. 네. 콩밥도 먹을만하고 생각할 시간도 많고 나쁘진 않습니다. 오징어 씹어보셨죠? 근데 그게 무지하게 질긴 겁니다. 계속 씹으시겠습니까? 그렇죠? 이빨 아프게 누가 그걸 끝까지 씹겠습니까? 마찬가집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술자리나 인터넷에서 씹어댈 안줏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적당히 씹어대다가 싫증이 나면 뱉어버리겠죠. 이빨도 아프고 먹고 살기도 바쁘고. 맞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 적당한 시점에서 다른 안줏거리를 던져주면 그뿐입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싶은 이에게는 고민거리를, 물고 싶은 이에게는 물 거리를, 욕하고 싶어하는 이에게는 욕할 거리를 주는 거죠. 열심히 고민하고 울고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좀 풀다 보면 제풀에 지쳐버리지 않겠습니까. 예? 오른손이요? 까짓 거 왼손으로 쓰면 되죠”
윤태호 작가와 우민호 감독은 약 2분30초 분량의 이 대사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3시간에 육박하는 영화를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강희의 마지막 대사를 꼭꼭 씹어서 읽어보자. 무엇이 느껴지는지는 여러분 각자에게 숙제로 남기겠다. 하지만 아직 왼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