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50만명 수험생 다독인 시인의 언어

by김미경 기자
2024.01.10 07:10:00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양광모|100쪽|푸른길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필적 확인 문구다. 지난해 11월16일 전국 수험생 50만4000여 명은 오전 8시35분 시험 시작과 함께 일제히 문구부터 답안지에 적었다. 이는 양광모(61) 시인의 시 ‘가장 넓은 길’ 중 한 구절로, 이 열네 글자가 불안한 수험생들의 마음을 위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필적 확인 문구는 대리 시험 방지를 위해 매 과목 답안지에 수험생 자필로 적도록 하는 일종의 본인 확인 절차다. 대규모 부정행위가 적발됐던 2005학년도 수능 이후 도입됐다. 매년 달라지는 이 문구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도 주로 수험생에게 희망과 감동, 위로를 줄 수 있는 시의 구절을 사용한다.



지난해 수많은 수험생들의 마음을 다독였던 시구의 주인공인 양광모 시인의 시선집이 나왔다. 출판사 푸른길에 따르면 이번 시선집에는 시인이 오랫동안 곱씹어 온 삶의 방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시인이 일상에서 건져 올린 다독임의 순간들이다.

그는 대학 입학시험에서 4수를 했다고 했다. 짧은 직장생활 끝에 세 번의 사업을 실패하고, 지방자치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생각처럼 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기대와는 다른 결과에 속상할 때도 있었다. 시인은 그럼에도 “길 위에 주저앉아 있지는 않”(‘그 길’)겠다고 다짐하며 몸을 일으켰다고 했다. 생의 어느 날에 몹시 비에 젖어 길을 헤매게 되더라도, 시인은 “가슴에 해바라기 한 송이 노랗게 피우며 살 일”(‘해바라기’)이라고 썼다.

발을 딛고 나아가는 과정이 꼬불꼬불하거나 울퉁불퉁하더라도, 우리가 걸어가는 방향대로 길이 생긴다는 마음이 시집 전반을 아우른다. 시의 힘은 이렇게 살아숨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