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남궁 덕 기자
2018.01.19 08:34:41
당국, 하나금융 회장선임절차 견제구
금융계 “민간 금융사 인사개입은 관치”
실적과 미래 여는 안목이 연임 잣대
금융사 CEO, 3연임 4연임도 나와야
[남궁 덕 콘텐츠전략실장] 금융당국이 하나금융그룹 차기 회장 선임에 대해 감 놔라 대추 놔라하며 관여하다가 체면을 구겼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작년 11월29일 “금융지주회장 셀프연임은 안된다”고 포문을 열었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사들의 경영권 승계프로그램이 허술하다”고 속공을 퍼부었다. 하나금융은 “김정태 회장을 배제한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하겠다”고 수비진용을 갖췄다.
해가 바뀌면서 회추위는 16명으로 후보군을 압축하면서 전의(戰意)를 불태웠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인터뷰 일정을 연기하라고 압박했다.(당국은 ‘요청했다’고 표현한다) 이틀 후 회추위는 일정대로 하겠다고 반격의 칼을 들었다. 당국은 “금융인은 간섭 안된다는 우월의식 버려라”(최 위원장)고 대포를 날렸다. 이날 하루종일 논란이 거세지자 청와대가 “하나금융인선에 관여 안한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금융당국도 총신을 내렸다.
하나금융은 지난 16일 회추위를 열어 김 회장과 김한조 전 외환은행장 등 최종후보 3명을 선정했다. 22일 차기회장을 선출하는데 김 회장이 9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이다.
금융계는 누가 차기회장이 되던 이번 사태는 관치(官治)와 노치(勞治)의 합작품이라고 평가한다. 금융당국은 하나금융 노조가 아이카이스트 특혜대출의혹을 제기해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어서 일정 연기를 요청했었다고 설명한다. 잘못은 바로 잡으면 되는데, 그런 논리를 대는 건 구차하다. 당국은 진작 3연임에 대해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금융권 노조의 주장대로 김 회장을 전 정권에서 혜택 받은 수혜자로 몰아 적폐청산 차원에서 압박했다고 고백하는 게 차라리 낫다. 금융당국의 진정성은 김 회장의 3연임 이후에 드러날 것이다. 보복성 제재나 경영간섭을 받지 않게 된다면 금융당국의 진정성을 믿게 될 것이다. “관군과 싸우지 말라”는 격언이 있는데 김 회장이 당국에 밉보여 낙마한 라응찬 전 신한금융회장, 강정원 전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의 길을 걷을지, 제3의 길을 걸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금융은 경제의 혈류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의 자질은 실적과 미래여는 안목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고객이 맡긴 돈이 필요한 곳으로 잘 흘러가게 하는 게 금융이다. 김 회장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합병을 2년이나 앞당겨 마무리했고, 지난 6년간 회사를 키웠다. 하나금융의 지난해 순이익은 사상 최초로 2조원을 넘겨 전년 대비 40%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호 실적을 낸 건 시스템을 잘 갖춘 데다 미래를 보는 인재들을 키운 덕분이다. 그 역할은 CEO가 한다. 관치의 눈치만 본다면 누가 좋은 실적 내기 위해 몸을 던지겠는가. 임기 때 즐기고 바통만 잘 넘기면 된다.
우리도 3연임,4연임하는 금융사 CEO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들의 고액 연봉을 배 아파할 게 아니다. 알파고의 ‘딥러닝’ 능력처럼 능력을 입증한 CEO의 성공법칙이 빛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한다.
은행권과 달리 증권계에는 장수CEO가 많고, 그들은 매년 일을 내고 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김해준 교보증권 사장,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사장 등이 주인공이다 각각 11년, 9년, 8년째 CEO직을 수행중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업계 수익성 1위다. 자기자본 1조8860억원을 굴려 당기순이익 2530억원을 거두며 자기자본이익률(ROE) 14.0%를 기록했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에선 장수 CEO란 말을 쓰는 게 되레 생소할 것 같다. 잘하면 그대로 쭉 가니깐.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은 2005년,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2006년부터 각각 CEO를 맡고 있다.
다이먼 JP모건 CEO는 얼마 전 “민주당에 2020년 대선 이끌 후보없다”고 제1야당인 민주당에 쓴소리를 날렸다. 우리나라에도 정치권에 이런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금융사 CEO가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