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용익의 록코노믹스]로큰롤 DJ가 돈을 버는 방법

by피용익 기자
2017.10.07 09:15:00

[세종=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최초의 로큰롤 곡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은 대중음악계가 영원히 풀지 못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다만 로큰롤이라는 용어를 널리 알린 인물은 앨런 프리드라는 견해에 반대할 사람은 드물다.

앨런 프리드는 미국 미시시피주 클리브랜드 소재 WJW 라디오의 디스크자키(DJ)였다. 그는 1951년 7월11일부터 자신의 별명 ‘문도그’를 딴 심야 프로그램 ‘더 문도그 하우스 로큰롤 파티’를 진행하면서 흑인들이 연주한 리듬앤블루스(R&B)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템포가 빠른 곡을 소개할 때는 종종 ‘로큰롤’이라고 외쳤다.

프리드는 1952년 3월 21일 클리블랜드에서 ‘문도그 대관식 무도회’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데 이어 1954년에는 뉴욕으로 진출해 로큰롤 전도사로서의 활동 무대를 넓혀갔다. 프리드는 로큰롤이 음악 장르로 발전하기도 전에 로큰롤이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셈이다. 라이프 매거진은 1955년 4월 18일자 기사에서 프리드를 “로큰롤 열광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리드의 인기는 안타깝게도 타락의 길로 이어졌다.

라디오는 1950년대에 대중음악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저렴한 통로였다. 프리드 같은 인기 DJ가 틀어주는 음악은 음반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음반회사들은 이 점을 주목했다. DJ에게 뇌물을 주고 대가로 음악을 틀어주는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른바 ‘페이올라(payola)’라는 관행이다. 페이올라는 돈을 지불한다는 의미의 ‘pay’와 축음기 이름인 ‘Pianola’, ‘Victrola’, ‘Amberola’ 등을 합성한 단어이다. 한 마디로 ‘돈을 내면 음악이 나온다’는 뜻을 담고 있다.

페이올라는 오래된 관행이었지만 로큰롤이 대중화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현금 외에도 주식을 주거나 심지어 마약을 상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DJ들은 인기 가수의 노래에 공동 작곡가로 이름을 허위로 올리고 저작권료를 받아 챙기기도 했다. 척 베리의 인기곡 ‘Maybellene’의 공동 작곡자가 프리드였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결국 미국 상원은 페이올라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DJ와 음반회사의 뒷거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날로 기록된 1960년 2월 8일 첫 청문회에는 대표적인 인기 DJ였던 프리드가 소환됐다. 청문회 출석과 검찰 조사 과정에서 프리드는 음반회사 여섯 곳으로부터 총 3만650 달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페이올라 스캔들’로 불리는 이 사건은 미국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검은 거래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대중은 그동안 조작된 인기순위에 우롱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큰롤의 전도사 프리드는 하루 아침에 범죄자 신세가 됐다. 프리드는 벌금을 낸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그 이후의 삶은 악몽과도 같았다.

프리드는 DJ 자리를 얻기 위해 지방 도시를 전전했지만, 이미 범죄자로 낙인찍힌 그를 어느 방송국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프리드는 1965년 1월 20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요도증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떠들썩했던 페이올라 스캔들 이후에도 검은 거래는 근절되지 않았다. DJ들이 프로그램 편성 권한을 상실하고 PD들이 편성권을 갖게 되자 음반회사들은 방송국과 직접 거래하기 시작했다. 음반회사 입장에서는 더 쉬운 일이 됐다. 수많은 DJ들에게 뇌물을 주는 대신 몇몇 방송사 경영진을 직접 상대하면 됐기 때문이다.

페이올라 스캔들 이후 45년이 지난 2005년 7월 뉴욕 검찰은 세계적 음반회사인 소니 BMG에 벌금 1000만 달러를 부과했다. 소니 BMG는 PD들에게 여행상품권, TV, 노트북 컴퓨터, 운동화 등을 선물한 대가로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소속 가수들의 음원을 더 많이 방송하도록 했다는 혐의가 확인됐다. 그 해 11월에는 워너 뮤직 그룹이 같은 혐의로 500만 달러 벌금을 물었고, 이듬해 5월에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이 1200만 달러 벌금형을 받았다.

2007년 9월 미국 의회에서 열린 음악산업 관련 청문회에서 미디어 감시단체인 인더스트리 이어즈의 리사 페이저 베디아코 대표는 “페이올라는 더 이상 지역 방송국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대가로 몇 달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제 조직적인 기업 범죄가 됐다”고 주장했다.

한국에도 페이올라 같은 관행은 존재했다. 이미 1960년대부터 새 노래가 나오면 작곡가가 가수를 데리고 방송국 DJ들에게 ‘인사’를 다니며 ‘촌지’를 돌리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그래야 노래가 전파를 타고 음반이 팔렸기 때문이다.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한국판 페이올라는 1980년대 말 대중에 알려지면서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2002년에도 검찰 수사 결과 수많은 연예계 및 방송계 종사자들이 구속됐다. 이런 역사를 거치면서 많이 투명해지긴 했지만, 한국이나 미국이나 지금도 연예계와 방송계 간 뒷거래가 있다는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