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by김동욱 기자
2012.12.05 09:08:39

서대문 충정아파트 1937년 완공..현재까지 존속
2008년 재개발 구역 지정..주민반대로 사업 진척 없어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서울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를 나와 5분쯤 걸어올라가면 회색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5층 높이의 녹색 건물이 보인다.

건물 곳곳에 금이 가 있고 녹색 페인트칠은 흉물스럽게 벗겨져 있어 건물 자체만 보면 아파트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한때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였다. 서대문구 충정로 3가 250번지에 세워진 ‘충정아파트’ 얘기다.

이 건물이 언제 준공됐는 지는 확실치 않다. 구(舊) 건축물대장을 살펴보면 이 건물은 1937년 8월29일 준공된 것으로 돼 있다. 다만 대장에 ‘등기에 의한 등재’라고 기재돼 있어 그 이전에 준공된 것으로 보인다. 서류상 나이는 75살이지만 실제로는 더 오래된 것이다. 1930년에 지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건축물대장에 아파트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를 보면 당시 이 아파트는 일본인 소유주 도요타 다네오의 이름을 따 ‘도요타아파트’라 불렸다. 전체면적 3550㎡(1075평), 지하1~지상5층 규모로 고층건물이 드물었던 당시 서울을 대표하는 고급아파트였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에 넘어가 유엔군 전용 ‘트레머 호텔’이 되었다. 1961년 한국정부에 다시 넘어왔는데 당시 이승만 정부는 한국 전쟁 때 아들 6명을 잃은 김병조 씨에게 이 건물을 포상했다. 김씨는 ‘코리아관광호텔’로 운영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가 사기꾼으로 드러나자 국세청이 이 건물을 몰수했다. 이후 몇 명의 건물주를 거쳐 1975년 다시 아파트로 용도가 변경된 뒤 지금에 이르렀다. 이 아파트에서 과거 찬란했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건물 중정(中庭)에 세워진 거대한 굴뚝만이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짐작케 할 뿐이다.

현재는 47세대가 살고 있다. 아파트 평형은 전용면적 26(7.5평)~99㎡(30평)까지 다양하다. 호텔 구조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입주자는 대부분 전·월세 세입자다. 주택거래는 3년째 없다.

이 아파트를 포함한 충정로3가 일대는 2008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은 장기간 답보상태다. 올해 초에는 서울시가 서대문구와 이 아파트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아파트에 20년째 살고 있는 한 주민은 “10년 전 아파트 주위로 빌딩이 들어설 때 빌딩주인이 보상차원에서 녹색 페인트칠을 해준 게 유일한 정비였다”며 “1970년대 말부터 재개발 얘기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돼 아예 체념하고 산다”고 말했다.

▲충정아파트 전경 (사진=김동욱 기자)
▲충정아파트 내부 모습. 아파트는 중앙이 사각형으로 텅빈 중정으로 만들어졌다.
▲중정에 거대한 굴뚝이 세워져 있다. 당시 굴뚝이 중앙난방을 위한 보일러 구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