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조 라떼`가 에스프레소가 된다고? [물에 관한 알쓸신잡]
by이명철 기자
2021.08.14 11:30:00
| 부영양화 현상으로 물 위에 녹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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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녹조(綠潮)는 물속의 식물플랑크톤이 급격하게 성장해 수면 위에 모이면서 물 색깔이 녹색으로 변하는 현상입니다. 원래 수질 분야 전문용어로 예전에는 우리에게 그리 친숙한 단어가 아니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한 탓에 이제는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됐습니다.
녹조 현상의 원인은 수질 오염 때문인데 구체적으로는 호수나 하천이 부영양화(富營養化)돼 물속에 영양분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부영양화는 우리가 영양분이라고 할 때 쓰는 영양이라는 단어 앞에 부자 부(富)를 붙인 것입니다. 해석하면 영양분이 많은 상태가 됐다는 의미지요. 언뜻 생각하면 물이 썩었다는 의미로 썩을 부(腐)를 쓸 것 같지만 물속에 영양분이 많다는 의미로 부자 부(富)를 씁니다.
물속에 영양분이 많으면 좋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비롯한 동물, 그리고 식물은 영양상태가 부족한 것보다는 여유 있고 충분한 것이 더 선호되니까요.
농사를 짓는 땅도 영양분이 많을수록 좋은 땅이라고 하고 퇴비와 비료를 뿌려 땅을 기름지게 합니다.
물속에 영양분이 많으면 왜 문제가 될까요? 땅에 영양분이 많으면 식물이 잘 자라듯이 물속에서도 영양분이 많으면 물속의 식물 역할을 하는 식물플랑크톤이 증가하게 됩니다.
식물플랑크톤이 많아지면 이걸 먹이로 하는 동물플랑크톤이 많아지고, 동물플랑크톤을 잡아먹는 물고기 수도 증가하겠죠. 결국 1차 생산자인 식물플랑크톤이 늘어난다는 것은 물속에 있는 모든 생물의 개체수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상에서는 1차 생산자인 식물이 잘 자라 동물의 개체수가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물속은 육상과 달리 생물의 개체수가 왕성하게 늘어나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나타납니다.
먼저 식물플랑크톤의 과다한 성장으로 산소 부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식물플랑크톤은 식물과 같이 낮에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배출하지만 밤에는 광합성의 반대 과정인 호흡을 통해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이 때문에 밤에 일시적인 산소부족이 나타나 물고기가 폐사할 수 있습니다.
부영양화에 따른 녹조 현상이 일으키는 문제는 오히려 물속에 있는 생물들이 죽고 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물속에서 왕성하게 성장했던 식물플랑크톤, 물고기가 죽은 뒤 바닥에 가라앉으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고 이 과정에 산소가 필요합니다.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의 양은 제한됐기 때문에 많은 양의 사체를 분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산소가 부족해지면 물이 썩기 시작하는데 물 색깔은 검게 변하고 메탄과 같은 악취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녹조라떼’로 불리며 녹색을 띠었던 물 색깔은 어느새 에스프레소처럼 검은 색깔로 변하게 되죠. 녹조현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 비료에 담긴 질소와 인이 농경지에서 물로 흘러들어가 영양분이 될 수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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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물속의 영양분은 어디서 왔을까요? 식물플랑크톤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질소와 인입니다. 이 두 가지가 충분하면 대개 식물은 잘 자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땅에서 사용하는 비료도 질소와 인에 칼륨을 더해서 비료의 3요소라고 합니다.
질소와 인은 농경지에서 사용하는 비료와 우리가 목욕과 세탁할 때 사용하는 세제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결국 물속에 있는 영양분은 육상에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논과 밭에 뿌렸던 비료가 비가 올 때 강으로 쓸려 들어간 것이고 우리가 사용한 세제가 하수를 통해 강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죠.
영양분이 많은 부영양화된 물은 기름진 땅과 같습니다. 식물플랑크톤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조건을 잘 갖춘 셈이죠. 이러다 보니 물에서 녹조를 없애기란 쉽지 않습니다. 마치 기름진 땅에서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녹조를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시도하고 있지만 신통한 대안을 찾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 위에 떠 있는 녹조를 걷어 내거나 사멸시키는 것도 금방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물로 흘러 들어가는 영양분을 줄여줘야 합니다.
농경지에 뿌린 퇴비가 빗물에 쓸려 하천으로 유입되는 것을 줄이고 하수에 포함된 영양분을 줄이는 방안도 고민해야 합니다. 이러한 대책은 원인을 치료하는 것이다 보니 금방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끈기를 가지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