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코로나 블루를 날리는 코믹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by윤종성 기자
2020.12.10 06:00:00
| 뮤지컬 ‘젠틀맨스가이드’ 공연 장면(사진=쇼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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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사랑과 살인에 대한 신사의 안내서? ‘스위니 토드’ 류의 스릴러인가, 사랑을 찾아가는 로맨틱 코미디일까.
배경은 1900년대 초반 영국 런던. 가난한 청년 ‘몬티 나바로’는 어머니 장례식 후 찾아온 한 여인을 통해 자신이 고귀한 귀족 가문 다이스퀴스 집안의 여덟 번째 후계자임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 시벨라가 부자와 결혼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 했던 몬티 나바로는 다이스퀴스 가문의 상속자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앞선 순위의 상속자들을 처리할 계획을 세운다.
그가 죽여야 하는 다이스퀴스들은 하나같이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 신도의 간절함 따위는 무관심한 채 하나님의 뜻만 되뇌는 성직자, 성을 구경하러 온 평민들에게 “좀 봐달라 해달라 그러지마, 왜 가난하고 그래”를 외치는 무례한 백작, 불륜에 빠져 허우적대는 금수저, 허명으로 사회사업을 하는 레이디, 재능은 하나도 없으면서 권력으로 무대에서 주인공을 도맡는 배우 등등. 몬티는 기회주의적인 예절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들을 사라지게 하는 킬러이며 시벨라와 피비 두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동시에 받는 여심 킬러이기도 하다.
‘젠틀맨스 가이드’는 20세기 초반의 스릴러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로 2014년 토니상에서 작품상과 극본상, 드라마데스크 어워즈, 드라마 리그 어워즈 등을 받은 작품답게 무거운 소재를 기막힌 서사구조의 코미디로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 뮤지컬 ‘젠틀맨스가이드’ 공연 장면(사진=쇼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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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핵심은 다이스퀴스들의 죽음. 한 명의 배우가 8명의 나쁜 다이스퀴스를 멀티로 맡아 세상을 떠날 때마다 겪는 마지막 진통을 완벽한 웃음으로 이끌어내는 재주가 웃음 포인트다. 불륜의 여인과 스케이트를 타다가 얼어붙은 강으로 곤두박질치거나, 자신이 기르는 벌떼에 쏘이거나, 연극 주인공을 맡은 다이스퀴스가 무대 뒤에서 춤추다 진짜 총을 맞고 죽게 된다는 식이다.
2014년 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을 처음 관람했을 때 ‘murder to love’라는 부제에 부담을 갖고 극장에 들어섰지만 ‘젠틀맨스 가이드’는 살인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몬티의 재치와 다이스퀴스의 몰상식한 캐릭터로 영리하게 배치해 박장대소하며 받아들이게 했다.
2020년 한국 공연의 첫 번째 묘미는 3명의 몬티(박은태, 김동완, 이상이)와 4명의 다이스퀴스(오만석, 이규형, 정상훈, 최재림)의 케미와 화려한 솔로 연기다. 박은태 몬티는 빠른 가사에 정확한 음정 처리로 모든 대사가 생생하게 들리게 하여 옴므 파탈 몬티의 음흉함과 재치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한편, 파티장에서 ‘난 베토벤보다 모차르트가 좋아’라고 하거나 가슴 속에 독약을 품고 초록빛 조명을 받으며 ‘지킬 앤 하이드’를 떠올리게 하는 등 자신의 전작을 패러디해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이규형과 오만석은 원년 멤버로서 남녀노소를 넘나드는 다이스퀴스 칼라를 빠른 시간 안에 변화무쌍하게 만들어내어 상대 몬티 역이 누구든지 안정된 코미디를 유지시킨다. 정상훈 다이스퀴스는 몬티, 관객 사이의 긴장과 이완 호흡을 놓치지 않고 웃음의 포인트를 다 살려내면서 드라마의 주인공이 다이스퀴스들임을 각인시키고야 만다. 최재림 다이스퀴스는 커다란 몸집의 중저음 사운드로 관객을 넋을 빼놓는다.
| 뮤지컬 ‘젠틀맨스가이드’ 공연 장면(사진=쇼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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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묘미는 공들인 번역. 코미디 특유의 ‘패터송’(빠르게 가사가 처리되는 코믹송)을 우리말 가사로 노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I don’t understand the poor’를 ‘왜 가난하고 그래’로 번역한 순간, 다이스퀴스의 무례함이 원곡 선율에 자연스럽게 실려 즉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또한 노래하는 배우들의 음정은 매우 안정적이어야 한다. 시벨라(임혜영, 김지우)와 피비(김아선, 선우)의 넘버들은 오펜바흐의 오페레타처럼 빠르고 코믹하면서도 우아하다. 그러기에 여주인공의 내숭 떠는 코미디가 음악으로도 생생하다. 다이스퀴스 가문의 초상화로 등장한 선조들이 ‘상스러워, 천박해’를 합창하는 앙상블 사운드도 웃음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담보한다.
우아미와 유쾌함이 가득한 ‘젠틀맨스 가이드’ 150분은 코로나 블루를 상큼하게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