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심재철 “靑, 예산 지침 어겼다” 뜯어보니
by최훈길 기자
2018.09.23 09:30:18
심재철 기자회견 “靑,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
靑 “예산지침 준수, 심재철 주장 황당하다”
기재부 “행정 절차상 사적 유용 말이 안 돼”
감사원 “1600쪽 결산 보니 사적 유용 없어”
|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왼쪽)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모습. 심 의원은 “정보 관리를 실패해 놓고 의원실에 무단 유출을 했다고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 대변인은 “불법적으로 얻은 정보를 마음대로 뒤틀고 거짓으로 포장해서 언론에 제공하고 있다”며 “자숙해주십시오”라고 밝혔다.[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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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청와대를 비롯한 주요 부처들이 예산 지침을 어기고 업무추진비를 사용이 금지된 곳에서 사적으로 유용한 사례를 무수히 발견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심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비서실의 (예산 집행 관련) 불법 사실을 확인했나’는 질문에 “확인했다. 차차 공개할 것”이라고 답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재정정보원은 심 의원 보좌진들을 정보통신망법·전자정부법 위반 혐의로 지난 17일 검찰에 고발했다. 재정정보원이 관리하는 30여개 정부 기관의 47만건에 이르는 비인가 행정정보를 무단으로 열람·다운로드 받고 반환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심 의원은 이같은 비인가 행정정보를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청와대, 정부부처가 불법적으로 예산을 사용했을까.
청와대 예산을 중심으로 팩트체크를 해봤다. 심 의원이 특정 정부부처명을 거론하지 않아 부처에 대한 사실 확인은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선 심 의원이 밝힌 ‘예산 지침’에 대해서 살펴봤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1월 중앙부처에 배포한 ‘2018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을 확인했다. 집행 지침에는 각 기관이 클린카드를 발급받아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도록 했다.
집행지침에 따르면 △법정공휴일 및 토·일요일 △관할 근무지와 무관한 지역 △비정상 시간대(23시 이후 심야시간대 등)에 클린카드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유흥업종, 안마시술소 등 위생업종, 골프장 등 레저업종, 카지노 등 사행업종, 성인용품점 등 기타업종은 ‘의무적 제한업종’으로 클린카드 사용이 금지됐다. 청와대가 이 같은 예산 집행지침을 어겼다는 게 심 의원 주장의 핵심이다.
실제로 한 언론은 지난 18일 ‘심 의원 측이 내려 받은 카드청구내역승인 내용 중에 단란주점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점이 사용 내역에 올라가 있다. 이는 일부 업종의 거래제한 코드가 풀린 클린카드가 불법적으로 사용된 것’이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지난 18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대통령비서실은 기획재정부의 예산집행 지침을 준수해 정부구매카드를 사용하고 있으며 카드 사용내역 확인 결과 유흥주점이나 단란주점에서 사용한 내역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예산 집행지침을 어기는) 그런 게 있을 수가 없다”며 “황당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업무추진비 등 예산 집행과 관련해 “유흥주점에서 쓴 것이 하나도 없다.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며 “매일 아침에 그 전날에 쓴 것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회견 전에 한 번만이라도 우리한테 사전에 물어보셨다면 소상히 설명했을 것”이라며 “그런 사전 확인도 없이 말씀을 툭툭 던지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산 집행지침을 마련한 기재부도 “행정부 절차가 있는데, 업무추진비를 그렇게 수차례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클린카드를 쓰는 행정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기재부 예산 집행지침에 따르면 업무추진비를 집행하면 집행목적, 일시, 장소, 집행대상 등을 증빙서류에 기재해 사용 용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각 기관의 회계, 감사부서 담당자는 클린카드 사용에 대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기관별로 자체 세부지침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이후 감사원으로부터 사용 내역도 감사 받는다. 청와대, 정부부처 모두 감사 대상이다. 심 의원의 주장대로 공무원이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면 감사원 감사를 통해 징계를 받든지, 형사고발을 당하게 된다.
감사원에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 사례가 적발된 게 있는지 확인해봤다. 감사원은 지난 6월 ‘2017회계연도 국가결산검사 보고’ 자료를 공개했다. 청와대 및 정부부처의 예산집행 내역을 감사한 1600여쪽에 달하는 자료다. 이 자료는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됐다.
이데일리가 확인한 결과 이 결산 자료에는 심 의원이 주장한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이 적발됐는지’ 묻는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감사원이) 지적한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적 유용’이 아니라 ‘전산 착오’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지난 21일 심 의원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과 관련해 “(청와대가) 한방병원에서 썼다고 허위로 기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청와대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부인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호텔의 국제업종코드인 7011은 한국에선 한방병원 업종코드(7011)다. 한국의 신용카드사가 해외승인 내역을 통보받아 입력할 때 호텔로 코드를 정정해야 하는데, 전산 착오로 그렇게 자동전환 되지 않았다는 게 청와대 해명이다.
이 같은 예산내역을 관리하는 재정정보원의 관계자는 ‘재정정보원이 혼선이 없도록 코드를 자동전환 해야 하지 않나’는 질문에 “업종코드를 관리하는 주체는 카드사”라며 “카드사에서 받은 정보를 임의로 수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다만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카드사에 업종코드를 제대로 넘겨달라고 해 정비 작업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지난 21일 “유출된 자료를 중심으로 예산집행 실태를 정밀 재검토하고 필요 시 감사원 감사를 요청할 계획”이라며 “정부는 문제가 있을 경우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중히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 부처의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에 문제가 있는지는 조만간 감사원을 통해 재점검될 것으로 보인다.
종합하자면 현재로선 심 의원의 주장대로 청와대가 예산 지침을 어겨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심 의원 및 의원실에 ‘청와대 예산집행 내역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문의했지만 설명을 들을 수 없다. 심 의원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법률 검토를 끝내고 적절한 시점에 공개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