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포럼2013]"여성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야"

by김재은 기자
2013.11.19 09:02:26

기조연사 알랭 드 보통 사전 인터뷰
"궁극적인 남녀 평등 위해 예술 필요"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그는 감상적인 사람만은 아니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등 사랑시리즈에서 보여준 섬세함과 감수성은 단지 즐거운 한 단면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는 ‘고통’에 더 관심을 보였다.

그는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단다. 위대한 진실의 대부분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지만, 진실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탓이다. 그는 건축, 사랑, 심리, 여행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통해 ‘현명하게 잘 살기’ 위한 여러 가지 길을 제시해주고 싶어 한다.

그는 궁극적인 남녀평등을 위해 ‘예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남녀평등과 예술은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왠지 특이하지만, 조금은 재미없을 것 같은 그는 바로 한국 여성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이다.

이데일리는 오는 28일 세계여성경제포럼(WWEF)2013에서 알랭 드 보통을 기조강연자로 초청했다. 여성포럼에 가장 잘 어울리면서도, 여성들이 하지 못하는 얘기를 들려줄 것 같아서다. 역시나 그는 사전인터뷰를 통해 그만의 색깔을 가득 담은 장문의 답변을 보내왔다.

알랭 드 보통
=우선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한국에서의 인기는 기대하지 못했던 것으로, 굉장한 영광이다. 한편으로는 당혹감에 다른 한편으로는 자긍심으로 얼굴이 붉어질 정도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영혼은 그 구조 면에서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만약 내가 내 자신과 관련한 진실에 대해 감성적인 사람이라면, 동시에 나는 여러분과 그 외 다른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 관한 진실에 대해서도 감성적인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 엇비슷한 사람들이지만, 자신이 매우 다른 사람이라고 믿고 그렇게 주장하는 데서 존재의 비극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 내 작품들은 정서적 측면에선 자전적이지만, 내용 측면에서도 자전적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내가 쓴 모든 내용은 ‘내가 느끼고 상상한 것들’이지만 이러한 생각과 감정이 소설에 묘사된 것과 정확히 동일한 장면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다. 즉, 사랑 이야기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이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

남성의 삶은 ‘강함’에 대한 강렬한 요구로 인해 제한적인 측면이 있는데, 이는 대체로 폐쇄적이고 말수가 적은 삶을 의미한다. 물론 강하다는 게 훌륭할 수도 있지만, 극히 사적인 순간에 커다란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고통과 문제를 드러낼 때 좀 더 흥미로운 사람이 되는데, 바로 이 때문에 여성과 함께 있을 때 좀 더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여성들은 남성과 여성, 즉 모든 인간의 경험의 중심에 존재하는 고통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역설이 가능하다. 즉, = 물론 감성적인 사람은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과 흥미로운 대상에 대해 열린 상태가 된다. 물에 비친 햇살에 대해 감성적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입술에 비친 매력적인 미소에 대해 감성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옆에 있는 사람과 비슷한 정도의 고통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게 마련이지만, 여기에는 고통에 대해 쓰고, 그리고, 묘사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나는 이것이 고통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삶에서 고통을 뿌리째 뽑아버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것을 어떠한 맥락에 배치함으로써 그것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은 가능하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 이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될 수 있다.

= 이 포럼에 초대받았을 때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세계는 수천 년간 남성의 지배를 받았다. 우리는 남성들이 책임자 위치에 있을 때 어떠한 모습을 보이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여성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에 대해서는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나는 여성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여성들이 왜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움츠러드는지에 대해, 단순히 남성 때문이 아니라 다른 여성들 때문에 때로는 자기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는 곧 모계 사회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화를 다루는 방법과 상황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방법을 이해하고, 사과하는 법을 배우고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 등이 감성 지능의 영역에 속한다. 물론 모든 여성의 감성 지능이 뛰어나고 모든 남성의 감성 지능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남성은 적어도 55세가 되기 전까지는 감성 지능이 현저히 떨어진다(55세가 넘으면 감성 지능이 높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여성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남성이 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을 단지 추측만으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에 대해 듣고 배워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소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타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우리는 예술을 통해 이성의 감정을 이해할 수도 있고, 신비로운 이성의 왕국을 여행할 수도 있다.

= 물론, 여성과 남성이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도우미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자녀를 돌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여성들을 본 적이 있다. 이러한 여성들은 자긍심이 낮은 이들로, 돈을 벌지 않기 때문에 자신은 하찮은 사람이라고 불평하곤 한다. 이는 결코 이상적인 세상이 아니다. =두 아이를 돌보는 것이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아이들은 실용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는 극도로 취약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정서적인 지원을 위해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단순히 아이들 곁에 있거나 아이들의 걱정과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이 나의 존재를 자연스럽고 친근한 것으로 인식하고, 나중에 커서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나를 믿고 나의 의견을 경청하는 사람들이 됐으면 한다. =기성 종교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현명하게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혼동과 의심이 자라나고 있다. =나는 항상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계속 머물 수 있는 분명하고도 간단한 방식으로 나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생학교는 내가 5년 전 런던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여기에는 현명하게 잘 살기 위해, 죽음, 가족, 직장, 돈 등 삶의 여정에서 부딪칠 수 있는 문제들과 관련한 다양한 과정이 개설돼 있다. 내 작품들 덕택에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 2014년에는 멜버른, 파리,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리우데자네이루에 학교를 열 예정이다. 서울에 이러한 학교를 설립하는 일도 추진 중이다. 아직 자세한 내용을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서울에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훌륭한 한국 파트너와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