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에 ‘김밥천국’ 점주들, “2000원도 버겁다”

by최은영 기자
2017.08.06 11:23:16

비주류 상권 1500원 김밥 사라진다
가맹본사 “찌개류 등 완제품으로 제공해 일손 줄이는 방안 검토”
가격 올리거나 인력 줄이거나···최저임금 우려 현실로

서울의 한 ‘김밥천국’. 기사 내용과는 무관.(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최은영 유통전문기자]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6.4%나 오른 7530원으로 결정되면서 물가 상승, 인력 감축 등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시간당 1060원 역대 최대 인상폭에 시간제 근로자 고용이 많은 식당·편의점·PC방·주유소 등의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분식집 등 객 단가가 낮은 업종을 중심으로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김밥전문점 ‘김밥천국’의 점주들이 최저시급이 인상되는 내년부터 김밥 가격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의 주요 상권을 중심으로 기본 김밥 가격이 1500원에서 2000원으로 오른데 이어 지방이나 서울 외곽 수도권 등에서도 가격 인상 대열에 동참하고 나선 것이다.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서 ‘김밥천국’을 운영하고 있는 오 모 씨는 “올해 초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계란 파동에 라면 등 원재료 가격이 줄줄이 올라 기본 김밥을 제외하고 라면 등 일부 메뉴의 가격을 소폭 인상했는데, 이번에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내년부터는 김밥을 비롯한 모든 메뉴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단골손님들께 미리 양해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씨는 이어 “낮에 3명, 밤에 2명 등 총 5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는데 이번 최저임금 인상과 별개로 올해 초 임금을 올렸더니 매달 100만~150만 원 정도 수익이 줄어들더라”면서 “지금 1500원짜리 기본 김밥을 팔면 재료값만 1000원 가까이 든다. 최소 500원 이상, 많으면 1000원까지도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내년 초 분위기를 보며 인상폭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망원동에서 ‘김밥천국’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임대료 탓에 이미 인력을 줄였다. 이 점주는 “작년엔 아르바이트생을 1명, 올해는 김밥 마는 아주머니를 또 1명 줄였다. 일손이 달릴 때에는 배달 직원이 김밥을 썰기도 한다. 정말 최소 인력으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내년에 최저임금까지 오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김밥천국’은 1990년대 1000원짜리 김밥으로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 등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줬던 분식집이다. 그동안 ‘김밥천국’의 김밥 가격은 지역과 상권에 따라 1500~2000원에 책정됐는데 내년부터는 1000원대 김밥을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점주들은 “김밥 한 줄에 2000원도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김밥천국’이라는 상호는 현재 누구나 쓸 수 있도록 돼 있다. 2001년 한 사업자가 상표 출원했지만 특허청은 어느 한 사업자가 독점할 수 없는 상호라며 등록을 거절했다. 현재 정다믄, 신우에프앤디, 나누리프랜차이즈 등에서 ‘김밥천국’의 간판 디자인을 달리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가장 많은 가맹점을 보유한 곳이 ‘정다믄’으로 280개 매장을 두고 있다.

‘김밥천국’ 가맹 본사 측은 “현재도 가격은 점주가 직접 책정하도록 하고 있는데,기본 김밥의 가격을 2000원 이상으로 올리면 ‘바르다 김선생’ 등 프리미엄 김밥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며 “김치찌개 등을 본사에서 직접 만들어 가맹점의 인력비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대응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밥천국’이 한창 생겨날 때에는 24시간 운영하는 점포가 많았는데 최근 몇 년간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밤 장사를 포기하는 매장이 늘고 있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올해 2분기(4~6월) 물가 상승률은 0%대에 머물렀지만 외식물가 상승률은 2% 중반을 기록했다. 특히 소주와 김밥 등 서민들이 즐겨 찾는 외식품목이 1년 전보다 각각 12.5%, 5.2%로 소비자 물가 상승품목 1, 2위를 차지했다. 김밥 이외에 간단하고 저렴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외식품목 짬뽕(3.5%), 자장면(3.4%), 떡볶이(3.4%) 등도 차례로 9~11위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