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로보어드바이저 대전 벌어진다

by권소현 기자
2017.02.06 07:56:43

초기단계 RA에서 벗어나 사후관리까지 해주는 RA 등장
4월말 테스트베드 끝나면 은행권 줄줄이 출시 예정
금융위 시행령 개정 추진…RA 수익원 기대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로봇에게 맡기는 자산관리’

시중 은행이 잇달아 로보어드바이저(RA) 자산관리 서비스를 준비 중이어서 대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RA를 적용한 신탁이나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퇴직연금 등은 있었지만 결국 한번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고도화된 RA는 아니라는 평가가 높았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진행하는 RA 테스트베드(시험대)가 마무리되면 로봇이 자산배분과 사후관리까지 책임지는 RA 서비스가 본격 선보일 전망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 농협은행은 4월 말 금융위원회와 코스콤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1차 테스트베드 결과가 나오면 줄줄이 자산배분 RA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RA는 투자자가 입력한 투자성향 정보에 따라 고도화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투자자에게 맞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주고 사후 관리를 해주는 서비스다. 대표적인 핀테크 기술로 꼽힌다.

이미 해외에서는 RA 시장이 상당한 규모로 형성돼 있다. 조사기관인 마이프라이빗뱅킹은 지난 2014년 말 190억달러였던 미국 RA 자산관리서비스는 올해 867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금융기관들이 잇달아 초기 단계 RA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RA 자산관리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신뢰성이나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금융위는 학계 및 업계와 태스크포스팀(TFT)를 구성해 작년 9월부터 RA 테스트베드에 들어갔다.

은행 중에서는 국민, 신한, 우리, 기업, 농협은행이 참여했다. TF는 금융기관과 RA 전문업체들이 제출한 알고리즘으로 실제 자금을 운용하면서 심사를 진행 중이다. 4월16일까지 1차 테스트베드를 가동한 후 심의위원회를 열어 4월 말경 수익률뿐 아니라 합리성, 규율적합성, 안정성, 보안성 등에서 적정한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일부 은행이 RA를 적용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보이긴 했지만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전문인력이 RA의 자산배분 결과를 활용해 고객에게 자문하거나 고객 자산을 직접 운용하는 1~2단계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RA가 사람의 개입 없이 자산배분 결과를 고객에게 자문하거나 고객 자산을 직접 운용하는 3~4단계까지 와 있다.



KEB하나은행이 자체 개발한 ‘사이버PB’는 고객이 직접 지점을 방문해야 하고 실제 투자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야 가능하다. 일부 은행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퇴직연금, 신탁 등에 RA 적용에 나섰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을 거치거나 특정 계좌에 한정돼 있었다.

일반 자산관리에 있어서 사람의 개입 없이 자산배분과 리밸런싱까지 로봇이 해주는 RA 서비스 포문은 신한은행이 열었다. 작년 11월 모바일을 통해 비대면으로 고객이 직접 설계하고 실제 투자까지 가능한 RA 서비스 ‘엠폴리오’를 선보였다. 핀테크 업체인 디셈버앤컴퍼니의 아이작펀드 자산배분 알고리즘을 적용한 이 서비스는 출시 석 달 만에 가입자 1만7000명을 끌어모았고 체험 삼아 설계해본 고객도 11만명에 달한다.

다음 주자는 우리은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4월 말 테스트베드를 통과하면 5월경 선보일 예정이다. KB국민은행은 자산관리플랫폼에 RA 시험버전을 운영 중이다. 지금은 고객 체험용이지만 연내 정식 서비스로 출시한다는 방침이다. IBK기업은행과 농협은행 역시 테스트베드가 끝나면 RA를 탑재한 자산관리서비스 출시 시기를 조율할 예정이다.

이번 테스트베드에 참여하지 않은 KEB하나은행 역시 자체개발한 ‘사이버PB’ 반응이 시원치 않자 RA 전문업체를 선정해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최근 크래프트테크놀러지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2차 테스트베드에 참여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이 업체의 기술을 모바일 자산관리 앱에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테스트베드 결과가 나오면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은행권 RA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은행들이 RA 경쟁에 나선 것은 자산관리 강화를 통해 비이자수익을 늘리기 위해서다.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는 비이자수익 중에 고객의 거부감이 가장 덜한 편이다. RA를 통해 고객의 특성에 맞게 자산배분을 해주고, 이후에도 시장 상황에 맞게 재배분(리밸런싱)해주는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수익률은 높이고 은행은 꾸준히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를 확보할 수 있다.

자산가에게 한정됐던 PB 서비스에 대한 일반 고객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이유다. 은행은 RA로 자산관리 서비스 문턱을 낮춰 소액, 젊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 신한은행 엠폴리오의 경우 투자금액이 최소 월 10만원이면 이용 가능하다.

여기에 알파고 등의 활약으로 RA 효용성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실제 RA 수익률도 나쁘지 않다. 출시 후 지난달 24일까지 누적 기준으로 공격형이 2.10%, 적극 투자형과 안정 추구형이 각각 1.7%, 1.0% 수준이다.

장기적으로는 RA 서비스 자체를 유료화할 수도 있다. 현행 규정상 수수료를 받을 경우 자문·운용인력이 아니면 자문과 일임 업무가 제한된다. 신한은행의 엠폴리오는 무료서비스이기 때문에 출시가 가능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테스트베드를 통과해 일정요건을 갖춘 RA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하도록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3월 중으로 시행령 개정이 이뤄지면 운용인력이나 자문인력 두지 않고 RA만으로 자문이나 일임서비스를 할 수 있다”며 “금융권마다 허용된 업무 하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은행의 경우 일임은 안되도 RA 자문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