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못해도 명품(名品)?

by조선일보 기자
2009.07.17 11:38:00

가격 내린 명품백, 알고보니 저가 원단
명품업계, 생산단가 낮춰 소비자 눈속임

▲ ‘명품’치곤 상대적으로 싸다고 신기해하지 말 것. 다 그럴 만 하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죽 원단을 쓴다든지, 가죽을 쓸 걸 나일론으로 대신한다든지, 싸구려 지퍼를 사용한다든지 교묘하게 눈속임을 한다.
[조선일보 제공] '명품' 가방을 앞에 두고 '이거, 예상보다 가격이 괜찮은데~!'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디자이너에게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브랜드 로고가 떡 하니 박혔는데, 품질도 꽤 괜찮아 보이는데 꽤 살 만한 가격이라고 느껴진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단, 당신의 눈에 잘 안 띌 뿐이지. 가격만 디스카운트 되는 게 아니다. '디자인'도 디스카운트 된다.



경제 전문 포천지는 최근 "명품업계 컨설팅업체인 '럭셔리 인스티튜트' 발표에 따르면 올 시즌 신제품의 가격이 지난 시즌에 비해 대체적으로 20% 정도 낮은 수준에 책정됐다"면서 "가격이 낮아진 건 그만큼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줄 만한 여지를 축소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끈이나 징, 화려한 술 장식 등 디테일을 생략하고 마치 떡을 쭉 뽑아내듯 매우 단순한 디자인의 제품을 줄줄이 내놓았다는 설명이다. 패션 칼럼니스트 황정희씨는 "루이비통 같은 경우도 광고 비주얼에선 여러 장식이 달린 제품을 보여주지만, 실제로 상품성을 고려해 내세우는 건 가장 심플한 '스피디'가방 종류"라면서 "요즘 같은 상황에선 여러 공정이 필요해 가격이 올라가는 제품이 환영받기 어렵다는 걸 브랜드도 잘 알고 있다"고 분석했다. 디테일을 생략하기 좋은 곳은 바로 눈에 잘 안 띄는 내부. 업계 관계자는 "주머니를 두 개 달던 걸 하나로 줄이거나, 금장식 쓰던 걸 쇠장식으로 바꾼다든지, 스웨이드 안감을 나일론으로 대체한다"며 "요즘엔 아예 아웃렛 매장 전용으로 똑같은 디자인에 단가만 낮춘 제품을 제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황의건 패션 칼럼니스트는 "루이비통에서 비싼 가죽이 아닌 저렴한 PVC(폴리염화비닐)로 가방을 만들어 실리적인 마진을 많이 챙기자 다른 브랜드에서도 '저원가 고부가가치'의 가방을 너도나도 디자인하게 됐다"며 "특히 90년대 말 나일론 원단의 프라다 가방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원가를 줄여도 비싼 제품으로 팔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가방은 어떤 재질로 만들어지느냐가 가격 결정에 특히 중요한 포인트. 포천지는 "코치 같이 대중을 겨냥한 제품들은 인도 공장에서 생산한 자카드(jacquard·무늬를 넣어 짠 직물)원단으로 가방을 만들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탈리아 가죽을 고집하던 명품 업체들도 질은 좋으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한국산 가죽을 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탈리아산이 터치 감이나 여러 면에서 좀 더 낫긴 하지만, 한국산이 최대 40%까지 저렴해 생산 단가를 맞추는 차원에서 환영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퍼 역시 이탈리아에서 섬세한 수공을 거쳐 부착했던 과거와는 달리 홍콩제나 중국제 등 저렴한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