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0명 중 6명, 태풍·폭우 와도 출근…“무급휴가 사용도 강요”
by이영민 기자
2024.07.28 12:00:00
직장갑질119, 직장인 1000명 설문조사
15.9%는 자연재해 때 지각으로 불이익
"변화하는 환경 속 안전한 근무환경 필요"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올해 여름에도 직장인의 과반수는 재난 상황에서 정시출근을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직장인은 지각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경험하기도 해 기후변화에 맞는 안전한 직장 문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수도권 일대에 호우경보가 발령된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인근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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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사단법인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직장인의 61.4%는 태풍·폭염·폭설·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정부가 재택근무나 출퇴근 시각 조정을 권고한 상황에서도 정시 출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15.9%는 자연재해 상황에서 지각했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겪거나 동료가 불이익을 경험한 것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5월 31일부터 6월 10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자연재해 상황 출근 경험’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인의 상당수가 재난 상황에서 위험한 출근길에 나서고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 직장인은 사용주로부터 무급휴가 사용을 강요받기도 했다. 보육교사 A씨는 지난해 8월 태풍이 예보돼 휴원명령이 내려졌을 때 원장으로부터 교사 개인의 연차를 차감하고 하루 쉬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아이들이 없어도 처리해야 할 서류와 업무가 있어서 출근하겠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체육시설에서 일하는 직장인 B씨도 이달 들어서 소장으로부터 비 오는 날마다 쉬라는 지시를 받았다. B씨는 “(소장은)근로계약서에 ‘비·눈으로 인한 휴식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조항을 이용해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서 혼자 남은 상황이다”며 “이번 달은 장마 때문에 12일도 일하지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직장인이 재난상황에서 위험한 출근과 비자발적인 휴업을 강요받아도 이들을 보호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다. 공무원 경우 ‘국가공무원 복무규정’과 ‘지방공무원 복무규정’은 천재지변, 교통 차단 또는 그 밖의 사유로 출근이 불가능할 때 공가를 승인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반면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는 현행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령에 천재지변이나 자연재해에 따른 휴업 등에 관한 별도의 규정이 없어 태풍이나 호우주의보 상황에서 출퇴근 시각을 조정할지, 쉬게할 경우 유급휴일을 적용할지는 사업주의 재량에 달렸다.
이에 대해 조주희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기후변화로 매해 폭염이나 폭우 등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가 심해지고 있지만, 노동자 대다수는 위태로운 출근을 계속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현행 노동관계법령에 의하면 사용자가 허용하지 않는 한 천재지변 등 재난 상황이라도 지각·결근은 ‘근로자의 귀책사유’일 뿐이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도 노동자의 책임이다”며 “변화하는 환경에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안전·재난문자 발송보다 실질적인 제도와 법령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