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도 털렸다…에콰도르 무법천지 만든 '마약왕'[글로벌스트롱맨]

by박종화 기자
2024.01.13 11:00:00

'에콰도르 최대 갱단 수장' 아돌포 마시아스
미국·멕시코로 마약 수출하며 조직 급성장
교도소 수감 중에도 대선후보 암살 개입 의혹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지난 9일 에콰도르 최대도시 과야킬에 있는 TC텔레비시온 방송국. 뉴스를 방송 중이던 이 방송국에 산탄총과 기관총, 수류탄, 다이너마이트 등으로 무장한 복면 괴한들이 난입했다. 누군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속에서 진행자에게 총구를 겨눈 괴한들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당시 방송국에 있던 알리나 만리케는 AP통신에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며 “이젠 이 나라를 떠나 아주 멀리 가야할 때”라고 말했다.

에콰도르 군경이 출동하면서 괴한들은 진압됐지만 에콰도르의 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폭력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지금까진 방화와 테러, 폭동으로 최소 16명이 숨졌고 180명 가까운 사람이 갱단에 인질로 잡혀 있다. 과야킬에서 교사로 일하는 마리아 오르테가는 “내가 전에 알던 세상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고 말했다. 한때 남미에서 가장 평화로운 ‘적도의 나라’로 불렸던 에콰도르는 이제 없다.

이 혼란에 불을 댕긴 주범은 ‘피토’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에콰도르 최대 갱단 ‘로스 초네로스’의 수장, 아돌포 마시아스다. 피토는 지난 7일 과야킬 인근 교도소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는 보안이 더 엄격한 교도소로 이감을 앞두고 있었다. 교도관이 탈옥을 도왔다는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탈출 경위도 모른다. 피토가 사라지자마자 에콰도르 교도소 곳곳에서 폭동과 탈옥이 발생했고 갱단도 거리를 습격했다.

피토는 1979년 에콰도르 서부 마나비주에서 태어났다. 로스 초네로스도 마나비에 있는 초네라는 지역에서 시작했다. 과거 마나비는 평범한 해안지역이었지만 1990년대 이후 마약산업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에콰도르 인근 코카인 산지인 콜럼비아와 페루에서 마약 단속이 심해지자 범죄조직들은 치안력이 약한 에콰도르 해안 지역을 미국·멕시코로 마약을 수출하기 위한 중간 경유지로 주목했다. 이 과정에서 로스 초네로스 등 갱단이 마약산업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웠다. 멕시코 마약조직으로 악명 높은 시나노아 카르텔은 마약 수입을 위해 로스 초네로스 성장을 지원했다. 그 결과 로스 초네로스는 1만 2000명 넘는 조직원을 거느린 거대 범죄단체로 컸다.

로스 초네로스가 성장하는 동안 에콰도르 사회는 병 들어갔다. 2022년 에콰도르의 살인율(인구 10만명당 살인 피해자 수)은 4년 전과 비교해 4배 이상 늘었다. 또한 2022년에만 77톤이 넘는 코카인이 에콰도르에서 압수됐다.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우리나라의 폭력과 사망률은 전쟁터 수준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감되는 에콰도르 최대 갱단 로스 초네로스의 수장 아돌포 마시아스(가운데).(사진=AFP)


로스 초네로스에서 자금 세탁을 담당하던 피토는 2011년 살인과 인신 매매, 마약 거래 등 혐의로 징역 34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3년에도 보트를 타고 교도소를 탈출했는데 당시엔 3개월 만에 체포됐다.

재수감 후에도 피토의 위세는 꺾이지 않았다. 교도소에 수영장을 조성하고 파티까지 열었다. 또한 그의 방안에선 무기와 마약까지 발견됐다. 이름만 교도소지 ‘피토의 호텔’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교도관으로 위장한 채 피토의 애인까지 교도소를 무시로 드나들었다. 지난해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뮤직비디오에까지 출연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감방에서 싸움닭을 쓰다듬는 피토의 모습을 비추며 가수는 ‘보스 중의 보스’라고 치켜세웠다.

교도소는 피토의 경제적·조직적 기반이기도 하다. 현재 에콰도르의 교정시설 중 4분의 1 이상이 사실상 로스 초네로스 등 갱단 통제하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 초네로스는 다른 수감자에게 자금을 상납받는 방식으로 부를 불렸다. 에콰도르 경찰당국은 로스 초네로스가 교도소에서만 1년에 1억 2000만달러(약 1600억원)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로스 초네로스는 또한 그곳에서 범죄 정보를 교환하고 조직원을 모집하고 있다. 에콰도르 교도소를 연구한 호르헤 누녜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교수는 “감옥은 갱단의 근원지”라며 “사람들을 계속 감옥에 가둔다면 범죄 조직에 계속 먹이를 주는 것”이라며 에콰도르 일간지 엘우니베르소에 말했다.

2020년 로스 초네로스 수장이던 호르헤 잠브라노가 쇼핑몰에서 의문의 총격을 받고 살해되면서 피토는 옥중에서 보스 자리에 오른다. 경찰은 여기에 피토가 개입됐을 것이라고 의심했지만 확증을 찾지 못했다. 1인자 자리에 오른 피토는 유력 정치인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정부와 갱단의 유착을 비판한 야당 대통령 후보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 비야비센시오는 “내가 피토와 로스 초네로스를 계속 언급한다면 그들은 나를 해칠 것”이라면서도 “나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비야비센시오는 투표를 열흘 앞두고 암살당했고 피토는 그 배후로 기소됐다.

지난해 감옥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 속 아돌포 마시아스.(사진=유튜브 캡처)


피토의 탈옥 이후 노보아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범죄세력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지난 10일 연설에서 “우린 국가 평화를 위해 싸우고 있으며 2만명에 달하는 테러 단체와 맞서고 있다”며 “우리는 이 사회가 천천히 죽어가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스 초네로스 등을 테러단체를 지워하고 군대까지 투입해 이들을 소탕하고 있다. 또한 외국에도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호소했다.

이런 노력에도 아직 피토의 행방은 묘연하다. 피토를 잡으면 에콰도르는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마약 범죄 자체를 뿌리 뽑지 않는 이상 피토 하나를 제거하는 데 그칠 수 있다. 에콰도르 언론인 마우로 나란조는 “언젠가 로스 초네로스가 사라진다면 다른 조직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라틴아메리카 싱크탱크 인사이트크라임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