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임원 늘리라"는 文…강원랜드·한수원·산은 등 160곳 외면

by최훈길 기자
2019.04.26 07:53:58

[공공기관 경영평가 리포트]②여성인재 육성
360곳 전수조사, 44% ‘女 임원 목표제’ 미달
한전·마사회 1명, 강원랜드·한수원·산은 0명
‘女 임원 목표제’ 추진 기재부 산하기관도 0명
여성임원 '0명' 과기부 산하기관이 29곳으로 최다

청와대는 25일 고민정(사진·39) 부대변인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고 대변인은 대통령 비서실에서 가장 젊은 여성 비서관”이라며 “여러 세대, 다양한 계층과 소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최훈길 이석무 이연호 김형욱 박종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여성 인재 육성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청와대 대변인으로 고민정 부대변인을 승진 인사한 것도 여성인재 발탁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이 여성 인재 육성에 앞장서야 한다며 임기 내에 공공기관 여성임원 비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전체 공공기관 중 절반은 정부가 요구한 여성임원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다. 심지어 임직원수가 수천명이 넘는 대형 공공기관에서 마땅한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여성임원 선임을 외면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유리천장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여성인력 육성과 발탁에 유리한 공공기관이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데일리가 25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공공기관 360곳(부속기관 포함)을 전수조사한 결과, 160곳(44%)의 여성 임원 비율이 정부가 설정한 ‘여성 임원 목표 비율(작년 기준 13.4%)’에 못 미쳤다.

이는 최근 공시된 임원 현황을 토대로 ‘기관장·이사·감사’ 현원 중에서 여성 임원을 조사한 결과다.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공공기관이 87곳, 한 명에 그친 곳이 64곳이나 됐다. 비상임 임원까지 포함해 조사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여성 임원이 없는 곳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29곳)이 가장 많았다.

과기부 산하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관장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관계자는 “이공계 졸업 여학생이 적기 때문에 임원도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임원 수가 10명 이상인 214개 공공기관 중 67개는 지난해 여성 임원 목표 비율(13.4%)을 미달했다. 이 중 여성 임원이 없거나 1명에 불과한 곳은 56곳에 달했다.

강원랜드(035250), 한국수력원자력, 서울대치과병원, 한국환경공단, 인천항만공사, 한국에너지재단,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나노기술원,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해양수산연구원, 정동극장, 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 한국산학연협회, 한전원자력연료 등 16개 공공기관의 경우 10명이 넘는 임원 중에 여성이 한 명도 없다.



한국전력(015760)공사, 한국가스공사(036460), 서울대·전북대·강원대·경북대·전남대병원, 도로교통공단, 한국마사회, 한국주택금융공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등 40개 공공기관은 여성 임원이 1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한전은 69조2369억원, 강원랜드는 4조2019억원 수입을 기록한 공기업으로 직원수는 물론 임원 규모도 다른 공공기관보다 많은 곳이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이사회는 상임이사 4명, 비상임이사 10명(지역추천 6명+공모 4명)으로 구성되는데, 2016년을 끝으로 여성 임원은 없는 상태”라며 “그동안 여성 지원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한전 관계자는 “이사(임원)가 되려면 25~30년 정도 근무해야 하는데 여성 숫자가 적어서 자연스레 임원 후보자도 적은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대졸 여학생 지원이 많은 금융 공공기관도 여성 임원 비율이 저조했다. 산업은행, IBK기업은행, 서민금융진흥원, 한국예탁결제원은 여성 임원(등기이사 기준)이 한 명도 없었다. 산업은행은 임직원이 3326명(이하 작년 말 기준)으로, 기업은행은 1만2871명이다. 이들 모두 금융위원회 산하기관이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여성 임원 목표제’를 추진 중인 부처의 산하기관도 여성 임원 수가 목표치에 미달했다. 한국수출입은행, 한국투자공사의 여성 임원은 0명이었다. 한국조폐공사, 한국재정정보원은 각각 1명에 그쳤다. 이들 모두 ‘공공기관 여성 임원 목표제’를 관장하는 기획재정부 산하기관이다.

여성 임원이 전무한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은행 내에 여성 임원이 없는 것은 원래 여성 입사자가 적기도 했지만 중간에 퇴사 등을 해서 대상자가 없기 때문”이라며 “4~5년 정도 지나면 현재 팀장급인 여성들이 임원 대상이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성 임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이 적극적인 독려와 함께 공공기관장 의지가 없으면 여성 임원 수가 획기적으로 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단절이 되기 쉬운 데다 수십년 간 지속된 ‘유리천장’ 조직 구조·분위기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통령, 국무총리, 기관장이 여성 임원 선임 등 균형인사에 대한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해야 한다”며 “여성 특별 승진도 강화해 공공부문부터 적극적인 유리천장 타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원 수가 10명 이상인 214개 공공기관 중 67개가 지난해 여성 임원 목표 비율(13.4%)을 미달했다. 이 중 여성 임원이 없거나 1명에 불과한 곳은 56곳에 달했다. 임원 수는 공시된 기관장, 상임·비상임 이사, 감사를 모두 더한 것이다.[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