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왔다하면 팔려"…그들이 ‘낡은 빌라’ 사는 이유
by황현규 기자
2020.05.15 06:13:00
정부지원·대형건설사 진출까지
가로주택정비사업 호재에
사흘안에 다 팔리는 ‘낡은 빌라’
“투자 목적 매매는 주의해야”
[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구축 빌라는 나오자마자 팔려요. 하루 문의 전화가 수십통 오는데, 괜찮은 매물은 바로 바로 팔려요.”(서울 성북구 종암동 S공인중개사무소)
“재건축 사업이 어려워지니까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관심이 쏠린 거죠. 대형 건설사까지 들어온다고 하니까 투자자들 관심이 더 커졌어요.”(강북구 K공인중개업소)
‘낡은 빌라’시장이 때 아닌 전성기를 맞고 있다. 아파트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구축 빌라 재건축 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덩치 큰 아파트 재건축은 규제 강화로 사업이 더딘 반면 소규모 저층 주거단지를 대상으로 하는 가로주택정비사업(소규모 정비사업)은 정부의 지원으로 활성화하고 있어서다.
1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이달 둘째주 성북구 장위 11-3구역에서만 노후 빌라 매매 계약 2건이 성사됐다. 두 물건 모두 지은지 20년 정도 된 빌라로, 시장에 매물로 나온 지 이틀 만에 팔렸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업소 설명이다. 해당 매물을 중개한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도물량을 공개하자 마자 바로 팔렸다”며 “그것도 전화상으로 가계약부터 했다”고 전했다.
매매가 이뤄진 A빌라(3층·2룸) 가격은 3억 3000만원으로 대지지분은 21㎡다. 1억 5000만원 보증금에 전세 상태로, 매입자는 1억8000만원만 투자한 것이다. 같은 시기 B빌라(5층·1.5룸·대지 면적 20㎡)도 2억 9000만원에 팔렸다.
| 마포구 아현2구역 재개발 공사현장 모습(사진=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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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빌라 완판’을 기록한 11-3 구역은 가로주택정비사업 시행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해당 구역은 현재 조합설립을 추진 중이다. 인근 11-2구역의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진행 중인만큼 무난하게 정비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장위동 뿐 아니라 종암동의 노후 주택·빌라도 매매 시장에 나오는 즉시 팔리는 분위기다. 종암 C빌라(대지면적 25㎡)도 시장에 나온지 일주일만에 2억 4500만원에 매매가 이뤄졌다. 개인이 아닌 법인이 매수한 빌라로, 다주택자가 투자 목적으로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빌라가 있는 종암동 일대도 현재 조합 설립을 준비 중이다.
최근 낡은 빌라가 부동산투자처로 떠오른 것은 정부의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소규모 재건축 지원 영향이다. 지난 6일 정부는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대한 용적률 규제 완화, 주차장 설치의무 완화, 분양가 상한제 규제 완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큰 도로와 인접한 낡은 빌라나 단독주택 일대를 신축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소규모 정비사업이다. 사업 진행속도도 민간 재개발 사업보다 2배 이상 빨라 주민들도 큰 부담없이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내 가로주택정비사업장은 총 60곳으로, 지난해 4분기보다 5곳 증가했다.
대형 건설사들이 가로주택정비사업에 관심을 보이면서 ‘브랜드 아파트’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낡은 빌라’ 호재로 작용했다. 이미 현대건설(000720)과 호반은 사업에 진출했고, 대림산업(000210), 대우건설(047040), SK(034730)건설 등도 사업 을 준비 중이다. 장위동 주민 박모(55)씨는 “대형 건설사들이 진입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수익성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겠냐”며 “낡은 주택에서 브랜드 아파트로 이사갈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가로주택정비사업을 노린 ‘투자’ 목적의 낡은 빌라 매입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아직 사업 자체가 초기 단계라 수익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다”며 “소규모 정비사업인 탓에 주변 인프라가 제대로 개발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변 인프라의 한계로 새로 지어진 아파트의 수익성이 기대보다 낮을 수 있다”며 “실거주 목적이 아닌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로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