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에 발목잡힌 건강관리 시장 해법은

by전재욱 기자
2018.03.29 07:43:45

보험연구원 `그레이존 해소` 심포지엄
日 규제 해소 사례 공유…4년간 111건 정리
`규제 교통정리해 리스크 줄이되 국민 혜택 모색해야`

보험연구원이 28일 연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와 그레이존 해소 방안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보험사가 고객에게 혈액을 채취 받아 혈당을 점검하면 의료법 위반일까. 퇴원하고 통원치료를 받게 된 환자가 집으로 병원 밥을 배달받으면 병원의 영리활동 금지조항에 해당할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물린 보험 건강관리 시장은 ‘질병을 사후 치료하는 것보다 사전에 예방’하는 게 주요 목적이다. 명분은 좋은데 마냥 성장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규제 산업이라는 보험업 특징에 더해 신사업이라서 새 규제가 적용되는 탓이다. ‘해도 되는지’ 애매한 영역에서라도 우선 교통정리를 해나가자는 요구가 뒤따른다.

28일 보험연구원이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연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와 그레이존 해소 방안’에서는 보험산업 발전 과정에서 적절한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두고 의견이 오갔다.

질병을 예방하려면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고,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규제 리스크를 없애야 한다는 데에 참석자들은 의견을 모았다. 그레이존(gray zone) 해소 제도를 중점적으로 다뤘고 일본 사례가 대표적으로 꼽혔다. 그레이존은 법이나 규제 위반인지 애매한 중간지대를 일컫는다.

보험연구원에서 나온 양승현 연구위원은 일본은 2014년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제정해 그레이존 해소제도를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규제 리스크를 낮춰 경제 활성화를 유도하는 차원이다. 사업자가 사업 소관부처에 문의하면, 규제 소관부처와 논의해 규제 적용 여부를 판단한다. 사업과 규제 등 두 가지 저촉 여부를 동시에 판단할 수 있다. 사업자는 리스크를 줄이고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다.



앞서 보험사가 혈당을 점검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도 그레이존 해소 제도에서 정리했다. 우리의 의료법에 해당하는 일본의 의사법만 두고 보면 이 행위가 법 위반인지 판단하기 모호하다. ‘의사가 아니면 의료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레이존 해소를 통해 △이용자 본인이 혈액을 채취해야 하고 △검사결과에 의학적 판단을 내리지 않고 △기준치만 제공하면 의료법위반이 아니라고 정리했다.

통원치료 환자에게 병원식을 제공해도 되는지, 헬스장에서 의사 진단서를 바탕으로 운동·영양 조언을 해도 되는지, 보험사가 기업 직원의 의료비 청구서를 분석해 진찰을 권유해도 되는지에 대한 문제도 그레이존 해소 제도를 통해 정리했다. 여태 일본 경제산업성이 법 제정 이후 없앤 그레이존은 신청건수 기준으로 111건(지난해 말 기준)이다.

양 연구위원은 “한국도 그레이존을 해소할 유사한 제도가 있지만 일본 사례에서 배우 것은 취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토론자들도 그레이존을 적절하게 해소하자는 데 큰 틀에서 의견을 모았다. 김동진 교보생명 전략기획팀 부장은 “이해관계자인 의사에게도 역할을 줘서라 건강관리 서비스를 넓은 의료행위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여의치 않으면 의료법을 건들기보다 특별법을 제정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주식 금융위원회 보험과장은 “보험사만 이익을 보는 구조로 가면 선순환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보험사 상품개발 과정에서 국민이 혜택을 보는 방향이 무엇인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