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바닥론 톺아보기]①"제조장비 수주 급증하네요"…IT '봄바람'

by김정남 기자
2017.04.15 08:09:29

최근 韓 경제 ''바닥론'' 기저에 IT 초호황 자리해

지난 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내 홍보관에서 시민들이 갤럭시 S8 등 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올해 1분기 9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잠정치)을 올렸다고 공시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강경래 김정남 기자] 디스플레이 장비업체 에스에프에이(056190)는 지난달 23일(3959억원)과 24일(1105억원) 두 차례 걸쳐 총 5064억원의 장비를 공급하기로 계약했다고 공시했다. 거래처가 명시되지 않은 ‘블라인드공시’였다.

그 공급처는 삼성디스플레이로 추정된다. 삼성은 미국 애플에 공급하기 위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애플은 올해 9월 출시할 예정인 아이폰8을 시작으로 OLED 채택을 본격화한다. OLED 시장이 점차 커지면서 국내 장비업체들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달 23일 공시한 금액은 이 회사가 단일 규모로 수주한 액수 가운데 사상 최대였다.

에스에프에이는 지난해에도 삼성디스플레이 외에 중국의 비오이(BOE)와 차이나스타(CSOT) 등 전방산업 디스플레이업체들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관련 장비를 대거 납품했다. 매출액은 1조3197억원. 창사 이래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에스에프에이 관계자는 “올해도 국내와 중국 등지에서 장비 수주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면서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 실적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최근 우리 경제에 ‘경기 바닥론’이 조심스레 거론되는 기저에는 IT 초호황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최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호황 국면은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15일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올해 1~2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장비 등 특수산업용기계 투자는 전기 대비 12.4% 증가했다.

특수산업용기계는 반도체 제조용기계, 디스플레이 제조용기계, 건설·광산용 기계, 공작기계, 산업용로봇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수산업용기계 투자는 지난해 3분기 이후 두자릿수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만 해도 -8.8%로 고꾸라졌지만, 그해 2분기 7.1%로 올라섰고 이후 분기별로 21.8%→12.2%→12.4%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 설비투자지수 증가율은 지난해 4분기 8.0%(전기 대비)로 반등했고, 올해 1~2월도 3.0%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테면 삼성디스플레이가 기존 액정표시장치(LCD) 라인을 OLED 공정으로 전환하는데만 해도 에스에프에이 외에 로체시스템즈(071280), 톱텍(108230), AP시스템(265520), 참엔지니어링(009310) 등 협력사들의 수혜가 점쳐진다. 스마트폰과 TV 등의 수요가 강해지는 가운데 차세대 공정 전환을 위한 투자 압력도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권휼 동부증권 연구원은 “에스에프에이는 대규모 수주 잔고와 고객사 신규 투자 등을 고려했을 때 이익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한은이 지난 13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6%로 전격 상향 조정한 것도 이런 기류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설비투자의 특징은 보완투자가 아닌 신규투자라는 점”이라면서 “투자 증가세가 예상보다 훨씬 큰 점이 경기 회복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 한은은 올해 상반기 설비투자 증가율 전망치를 당초 3.0%에서 9.5%로 무려 6.5%포인트 올렸다. 이 정도의 상향 조정 폭은 이례적이다.

수출 외에 수입이 생각보다 늘고 있는 것도 설비투자와 관련이 있다. 한은은 지난 1월 당시 올해 상반기 상품수입 증가율을 4.3%(전년 동기 대비)로 봤는데, 이번달 이를 6.2%로 상향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장비의 수입이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반도체 제조용기계, 디스플레이 제조용기계, 건설·광산용 기계, 공작기계, 산업용로봇 등으로 구성된 특수산업용기계 투자가 확 늘고 있다. 단위=%(전기 대비). 출처=한국은행·통계청


다만 최근 회복세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착시효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정도를 제외하면 자동차 조선 등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종 자체의 중장기적인 전망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반도체 투자와 생산, 수출이 느는 현상적인 측면은 나쁘지 않다”면서도 “메모리반도체가 아닌 시스템반도체 쪽은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있고, 반도체 업종의 특성상 낙수효과도 크지 않다”고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수출의 반등이 내수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잘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