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근로 바뀌면 주 92시간 근무라고?’…선진국에선 어떻게 하길래
by최정훈 기자
2022.06.25 12:00:00
주 52시간제 개편 추진에… ‘주 92시간 근무’ 반발 확산
“선진국 제도 따라가…주 단위 관리방식 찾기 어렵다”
1달 단위 일본·6개월 단위 독일·연장 근로 제한 없는 미국
고용부 “주 92시간 실현 불가능”…진짜 문제는 ''노사 합의''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제를 개편 방향이 연일 화두에 오르고 있다. 일주일의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 근로시간을 월 단위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정부의 제도 개편이 주 92시간까지 과로하게 만들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
정부는 주 52시간 근로제의 개편 방향을 발표하면서 선진국의 근로시간 제도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도 “해외 주요국을 보더라도, 우리의 ‘주 단위’ 초과근로 관리방식은 찾아보기 어렵고, 기본적으로 노사 합의에 따른 선택권을 존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선진국은 연장근로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2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23일 법정 근로시간 40시간과 연장 근로시간 12시간으로 구성된 주 52시간 근로제 중 연장 근로시간을 월(月) 단위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번 제도 개편 방향은 지난 2018년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면서, 제도의 틀은 70년 전에서 바뀐 것이 없어 IT업계 등 산업계의 최신 업무 방식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마련됐다.
우리나라 현행 연장 근로시간은 1주일 단위로 관리된다. 즉, 1주일에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할 수 없다. 만일 주 52시간 개편을 통해 연장 근로시간이 한 달 단위로 관리할 수 있게 되면, 주 평균 12시간을 유지하면서 한 달 동안 48~60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일본의 법정 근로시간은 우리나라와 같은 주 40시간이다. 다만 연장근로는 1주 단위인 우리나라와 달리 한 달과 일 년으로 구분되어 있다. 한 달 연장근로는 45시간, 1년은 360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한도 내에서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가 서면협정을 체결하고 행정관청에 신고하면 연장근로나 휴일근로가 가능한 구조다.
다만 일본은 예견할 수 없는 업무량 폭증을 대비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어, 임시로 서면협정 상의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할 수도 있다. 또 연장·휴일근로에 대해 25%~50% 범위에서 할증임금을 줘야 하고, 만일 1개월간 60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50% 이상 할증해야 한다.
독일은 법정 근로시간을 하루 8시간을 초과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주일의 근로시간을 제한하고 있진 않지만, 일요일 근로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에 연장근로가 없으면 주 48시간 근로가 법정 근로시간 한도로 우리나라보다 8시간 많다.
독일의 연장 근로시간도 우리나라보다 관리 단위가 넓다. 6개월 또는 24주 이내에 1일 평균 근로시간이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1일 10시간까지 근로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연장 근로시간까지 포함한 1주의 최장 근로시간은 60시간이다.
특히 노사의 단체협약를 체결하면 1일 10시간을 초과해서 근로할 수도 있다. 기관이나 업종, 업무 특성 등을 고려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12개월을 평균한 1주 근로시간은 48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의 법정 근로시간은 1주 35시간으로 우리나라보다 5시간이 짧다. 연장 근로시간을 관리하는 단위는 1년이다. 법정 연간 근로시간 한도는 220시간이다. 다만 노사 간 단체협약을 통해서 연간 근로시간 한도를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다만 프랑스는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1주일 최장근로시간을 규정한 부분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프랑스는 1일 10시간, 1주일 48시간 이상 근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12주동안 평균 주당 근로시간이 44시간을 넘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노사의 근로시간에 대한 단체협약이 있다면 한도를 넘길 수 있다.
영국은 연장근로를 포함해도 1주일에 48시간을 넘을 수 없다. 그러나 노사 합의가 있으면 통상 60시간 이내로 초과 근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해 17주를 기준으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평균만 48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된다. 특정 업무에서는 26주까지 또 단체협약 등을 통해서 52주까지도 넓혀 성수기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연장근로 한도 자체가 없다. 법정근로시간은 우리나라와 같은 40시간이다. 다만 초과 근로를 하면 1.5배의 할증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특히 근로시간 한도 위반에 대한 제재규정도 없다. 고의로 가산임금을 주지 않았을 때의 벌칙 규정만 있다.
”
정부의 발표 이후 노동계를 중심으로 이번 개편 방향이 ‘주 92시간 근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연장 근로시간 단위를 바꾸면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고착화되고 과로사가 폭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해 고용부는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고용부는 “만약 연장근로 총량관리 단위가 1개월까지 가능하도록 정해진다 하더라도,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라며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하는 경우, 근로자 건강보호조치가 병행돼 1주 최대 근로시간이 92시간까지 가능해진다는 것은 정부가 생각하는 방향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계산”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이어 “월 단위 연장근로의 총량을 특정주에 몰아서 모두 사용한다는 것도 매우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임은 물론, 연장근로 총량 관리는 노사합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오히려 근로시간 제도 개편에서 우려해야 할 점은 연장 근로시간 단위의 확대가 아니라 노사 합의라는 지적도 나온다. 선진국의 근로시간제도는 노사 합의를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낮은 노조 조직률 등으로 인해 근로자대표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근로시간 조정을 노사가 협의해서 할 수 있게 하려면 근로자대표가 명확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법에는 근로자대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며 “과반수 노조가 없거나 아예 노조가 없는 경우 근로자대표가 모호해져 사용자가 마음대로 시간을 조정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