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냅타임] “10년째 운영한 베이비박스 사라지길 바라죠”

by김민지 기자
2018.12.01 08:00:18











“저는 딸이 아주 많아요. 나만큼 딸 많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지난 2007년 동장군의 추위가 다 가시지도 않은 어느 늦겨울 새벽 3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한 남자가 아기를 대문 앞에 두고 왔으니 잘 키워달라며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부리나케 대문을 열자 생선 박스 안에 차가운 아이가 놓여 있었다. 아이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이미 추운 밖에서 한 시간여나 흐른 뒤였다.

서울 관악구의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이 교회 이종락 목사는 10여 년 전을 떠올렸다. 하마터면 소중한 생명을 잃을 뻔했다는 생각에 버려진 아기를 안전하게 보호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2년간 시행착오를 거쳐 2009년 고귀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올해로 10년을 맞이한 베이비박스에는 매달 평균 17~18명의 아기가 남겨진다고 한다.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가 엄마와 아이를 상징하는 손하트를 하고 있다. (사진=스냅타임)



이 목사는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며 조그만 뒤뜰로 향했다. 그곳에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는 하늘나라로 간 ‘한나’라는 베이비박스 아이를 그 나무 밑에 묻었고 ‘한나 나무’라고 불렀다. 이를 계기로 이 목사는 9명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다.

이 목사는 “한 아이를 키우기도 어려운데 여러 명을 한번에 돌보기란 죽을 만큼 힘들다”며 “하지만 아이들이 밝게 웃고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은 나의 생명도 내던질 줄 알아야 할 만큼 책임감이 뒤따른다”며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베이비박스는 교회 외부와 내부를 연결한다. 아기가 놓이는 부분에는 항상 불이 들어오고 온열 장치가 있어 따뜻하게 유지된다. 문이 열리면 교회 내부에 벨이 울려 교회 관계자가 아기를 즉시 보호 조치한다.

이 목사가 '한나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스냅타임)





베이비박스 아이의 사연은 하나같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그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낳고 탯줄을 그대로 둔 채 하혈을 하면서 온다”며 “그들은 그 어려운 환경에서 임신과 출산을 했는데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이곳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혼모가 아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최대한 설득한다. 그는 “아기를 끌어안고 흘리는 눈물과 아기를 포기하고 흘리는 눈물은 다르다”며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돌아온다고 항상 미혼모에게 전한다”고 했다.

이어 이 목사는 “아기를 유기한 미혼모를 그대로 돌려보내지 않고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며 “미혼모가 다시 아기를 데려가기로 하면 분유, 기저귀 등 육아용품과 생활비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이 교회의 베이비박스를 찾은 아기 210명 중 35명이 이 목사를 비롯한 교회관계자들의 진심 어린 상담으로 엄마의 품에 돌아갔다. 교회에서는 베이비박스 미혼모들과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인 수련회를 간다. 교회는 현재 63개 미혼모 가정이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있다.

베이이박스를 통해 행복한 가정으로 입양된 아이들은 커서 이 목사를 찾아온다고 했다. 이 목사는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의 모습과 듬직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냥 행복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는 항시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다. (사진=스냅타임)



정부와 우리 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재 구청 등에서 협력을 받고 개인이나 기업들로부터 물품과 후원비를 받고 있지만 아이를 보호하고 시설을 운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012년 입양특례법을 개정하면서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의 수가 9배 이상 늘었다.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해야 입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목사는 “일반가정에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처벌해야 하지만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가정에는 부당하다”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기는 국민이기에 모두 보호를 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1020’ 미혼모 자식, 혼외자식,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자식,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자식 등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는 다양하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입양특례법 재개정 촉구에 정부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이 목사는 특별법을 직접 발의해 현재 보건복지부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있다.

‘임산부 지원 및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은 임신부터 출산까지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하고 엄마가 결격사유가 있어 도저히 키울 수 없거나 아이가 엄마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면 가명으로 출생신고를 하는 법이다. 이 특별법이 제정되면 베이비박스가 사라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이 목사는 “특별법을 제정하면 미혼모가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기를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과 제도를 조성할 수 있다”며 “이게 통과되면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의 수도 적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민지 한종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