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주' 투자 가능..사학연금 SRI 잣대 허술

by박정수 기자
2018.09.17 07:35:30

사학연금 “문제 없다고 보고 제약 두지 않았다”
정부에서도 명확한 운용 대상 제한 정해두지 않아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공적 연기금이 허술한 잣대로 사회책임투자(SRI) 확대에 나서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책임투자를 맡기는 위탁운용사에 모호한 기준을 제시해 문제 기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연기금은 이른바 ‘죄악주’ 투자도 가능하게 했다.

정부 정책과제에 따라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차원에서 SRI 활성화에 나섰으나, 본연의 취지는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사학연금은 위탁사에 제시한 투자지침에서 △관리종목 및 불공정매매, 시세 조정 등 문제의 소지가 있는 종목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채권(BW), 교환사채(CB) 등 주식 관련 증권 △기업어음(CP) △파생결합증권 △시간 외 대량매매 △기업공개(IPO) 참여 등을 운용 대상 제한으로 지목했다.

아울러 자본총계 100억원(코스닥 70억원) 미만, 직전 결산연도 연간 매출액 300억원(코스닥 150억원) 미만, 하루 평균 거래대금 3억원 미만 등도 운용 대상 제한에 포함했다. 하지만 사학연금은 술, 담배, 도박 등과 관련된 죄악주들은 투자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이 술, 담배, 도박 등과 관련된 주식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사학연금 지침대로라면 위탁사의 ‘죄악주’ 투자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한 위탁사 관계자는 “연기금에서 지침을 내린 대로만 투자하면 되므로 사학연금의 경우 사행성 기업의 투자는 가능하다”며 “여타 연기금과 상이한 지침이기는 하다”고 말했다.



사학연금 관계자는 “위탁사 선정시 운용사들의 트랙 레코드를 점검하므로 문제가 없다고 보고, 제약사항을 두지 않았다”며 “정부에서도 명확하게 운용 대상 제한을 정해두지 않았는데, 이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사학연금의 SRI 투자금액은 약 1500억원 수준이다. 앞으로 4년간 매년 500억원 수준의 SRI 투자를 통해 2022년까지 총 3600억원까지 SRI 투자를 늘리고, 국내주식 간접투자의 9% 수준까지 SRI를 채우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죄악주로 분류되는 기업 중에도 한화(000880), S&T중공업(003570), 파라다이스(034230) 등 우량 기업이 많은 만큼, 사학연금이 투자 수익을 고려해 기준을 애매하게 제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도 하도급 거래, 협력업체 지원 활동 등을 책임투자 평가지표에 넣고 있지만, 갑질 등으로 문제됐던 기업 다수가 책임투자펀드에 들어 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보유한 종목 가운데 책임투자펀드가 투자하는 종목(150개)을 보면 상위 30개사 가운데 10곳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받은 종목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연기금들은 죄악 산업에 투자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우리는 모호한 기준을 세우고 있다”며 “책임투자를 강화하는 추세인 만큼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도입해 공공성에 어긋남이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